Tasting Room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맛’이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예외다. 늘 새로움을 좇는 디자이너 부부가 맛을 만드는 레스토랑을 이끌어가고 있다. 튀고, 재미나는 ‘엔터테인먼트’를 음식에 담아내고 싶다는 이들이다. 테이스팅 룸의 식탁 위엔 신나는 이야깃거리가 한 상 차려져 있다.
[Gourmet Report] 두 디자이너가 빚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소울 푸드
다양한 식재료가 버무려지면서 생긴 화학적 반응을 통해 탄생한 ‘맛’은 흡사 예술가의 작품과도 같다. 디자이너가 만드는 맛은 요리일까 작품일까. 서울 청담동에는 스타 셰프 마케팅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이곳 청담동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자기장을 만들며 손님을 맞는 곳을 찾았다. 동네 주민에서부터 젊은 직장인들, 나이든 중장년층 손님까지 레스토랑의 요란하지 않은 편안함에 이끌려 찾는다는 곳, 테이스팅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Gourmet Report] 두 디자이너가 빚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소울 푸드
디자이너 부부, 맛이라는 그림을 그리다

레스토랑 ‘테이스팅 룸’의 오너 김주영 사장이 건넨 명함에는 의아하게도‘디자인&디벨롭먼트’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테이스팅 룸은 건축설계를 하는 남편과 조명 디자이너인 아내의 또 다른 합작품이다.

뉴욕 유학시절 남편은 FCI(French Culinary Institute)에서 요리를 배우고, 아내는 와인을 공부해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귀국 후 긴 숙성기간을 가지며 레스토랑 밑그림을 준비한 후 2년 전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테이스팅 룸은 뉴욕의 로프트형 스튜디오 느낌과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스타일이 섞여 있다. 하얀 파벽돌 인테리어와 세월의 자연스러운 흔적이 느껴지는 빈티지한 우드 테이블, 소품들이 내추럴하게 어우러져 들어서는 순간 경직된 마음의 고삐가 ‘탁’하고 풀리는 기분이다.
벨기에산 베이컨과 시금치가 듬뿍 올라간 플랫 브레드. 1만9000원.
벨기에산 베이컨과 시금치가 듬뿍 올라간 플랫 브레드. 1만9000원.
2층 공간은 천장까지 닿는 높은 책장에 빼곡히 책이 꽂혀 있고 기다란 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브라이덜 샤워나 생일 파티 등 단체 손님을 위한 프라이빗한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두 벽면이 야외 테라스처럼 개방된 공간으로 디자인돼 여름밤 바비큐 파티를 위한 예약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하 1층은 셀러, 1층은 레스토랑 테이스팅 룸, 2층엔 라이브러리, 3층은 디자인과 건축 사무소다. 아담한 건물 한 채 안에 부부의 이상과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즐거움을 담은 소울 푸드
리코타 치즈와 바질로 맛을 낸 토마토 스튜에 홈메이드 미트볼을 넣은 시칠리아식 팬 스튜 요리. 2만2000원.
리코타 치즈와 바질로 맛을 낸 토마토 스튜에 홈메이드 미트볼을 넣은 시칠리아식 팬 스튜 요리. 2만2000원.
“고급 재료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재료로 재미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진귀한 식재료나 새하얀 접시 위의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기대하고 테이스팅 룸을 찾았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김 사장은 ‘험블 푸드(humble food)’를 콘셉트로 손님들에게 요리를 선보인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마치 할머니가 그릇에 툭 하고 올려놓은 것 같은 투박한 맛과 멋을 주고 싶다고 한다. 패션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무심한 듯 멋 부리지 않은’ 그 스타일을 말하는 것일까.

메뉴판을 훑어보니 호기심이 강하게 인다. 해남 주꾸미와 올리브오일 스파게티가 만났고, 꿀호떡 플랫 브레드를 곁들인 고소한 콩고물을 얹은 아이스크림은 모양도 맛도 궁금해 안 시킬 수 없는 메뉴다.

매달 새로운 메뉴를 두 가지씩 개발해 손님들에게 선보인다는데 시행착오와 장고 끝에 드디어 메뉴판에 입성한 메뉴들이 과연 어떤 맛일지 인기 요리 몇 가지를 주문해봤다.

벨기에산 베이컨과 시금치가 듬뿍 올라간 플랫 브레드는 라지 사이즈 피자가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크기다. 샐러드가 나온 듯 빵 위 두툼한 시금치의 높이에 놀라는 것은 이 메뉴를 시킨 모든 손님들의 공통된 의견일 정도. 식전 빵 정도로 생각하고 주문한 플랫 브레드가 큼직한 크기의 나무 도마 위에 한가득 올라와 서빙돼 어떻게 먹어야 하나 난감해하자 이내 종업원이 다가왔다.
소프트 셸 크랩이 올라간 오징어 먹물 리가토니 파스타. 바삭한 맛과 쫄깃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다. 2만3000원.
소프트 셸 크랩이 올라간 오징어 먹물 리가토니 파스타. 바삭한 맛과 쫄깃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다. 2만3000원.
능숙한 솜씨로 피자커터를 사용해 수북이 올라온 시금치 토핑을 꾹꾹 눌러가며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접어 먹으라고 설명해준다. 샌드위치 두께 정도로 접힌 플랫 브레드를 한 입 먹으니 입 안 가득 상큼한 맛과 함께 고소한 파르메산 치즈의 풍미가 어우러진다. 유명 외식업체에서도 이 음식을 카피할 정도로 인기 있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다음으로 소프트 셸 크랩을 얹은 오징어 먹물 리가토니 파스타를 맛봤다. 두툼하고 넓적한 리가토니 면의 쫀득한 맛과 고소한 오징어 먹물 소스가 어우러진 데다 바삭한 맛의 크랩 튀김이 잃었던 봄철 식욕을 돋운다.

여성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스튜 요리도 나왔다. 그런데 무쇠 냄비째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린다.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조리한 뒤 곧바로 손님상에 오르니 그야말로 집에서 엄마가 막 만들어 주신 ‘집밥’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아기 주먹만한 홈메이드 미트볼이 풍덩 빠져있고 길쭉한 바게트 빵이 세로로 꽂혀있다. 리코타 치즈의 부드러운 맛과 고소한 달걀노른자를 휘저어 한 숟가락 맛보니 ‘영혼의 수프’가 절로 떠오른다.

열전도율이 높은 무쇠 냄비에 담겨 나온 덕분에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뜨끈한 스튜를 먹을 수 있다. 음식이 냄비째 그대로 나온 재미에 마지막 한 술까지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동시에 느껴지는 테이스팅 룸의 철학이 담긴 한 접시의 요리다.
[Gourmet Report] 두 디자이너가 빚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소울 푸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이답게 맛은 기본이고 재미를 추구한다는 부부의 레스토랑 경영철학은 와인 메뉴판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글라스와 보틀 단위로 파는 와인 메뉴판과 달리 ml 용량과 가격이 적혀 있다.

이유를 물으니 유명하고 대중적인 와이너리의 와인이나 프랑스 와인보다는 매년 한정된 양만을 생산하는 소규모 와이너리의 독특한 와인들만을 취급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번 오픈한 와인을 ml 단위로 소량씩 판매하면 시간이 지나 변질되지 않나 노파심에 물으니 하루에 한 와인을 10병 정도 딸 만큼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며 웃는다. 테이스팅 룸의 진가를 알아보는 손님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재미와 이야깃거리가 담긴 맛은 테이스팅 룸에서 계속되고 있다.
[Gourmet Report] 두 디자이너가 빚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소울 푸드
위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17-12

전화
02-512-2977

오픈 11:00~ 3:00, 6:00~12:00

가격대 샐러드 1만7000원 선, 플랫 브레드 1만9000원 선, 파스타 2만 원 선.

기타 발레파킹 가능(2000원)


글 이지혜·사진 이승재 기자 wisd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