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라투르를 비롯해 샤토 무통 로트칠드 등 프랑스 1등급 와인이 5개라는 정도는 이미 상식이다. 그렇다면 와인은 몇 가지 등급이 있을까. 그 기준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번 호에는 와인 등급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와인재테크] 와인 등급의 역사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와인에는 1등급 와인 다섯 가지가 반드시 포함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가 됐다.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Ch. Lafite-Rothschild), 샤토 마르고(Ch. Margaux), 샤토 오브리옹(Ch. Haut-Brion), 샤토 무통 로트칠드(Ch. Mouton-Rothschild). 이렇게 다섯 가지 와인이 투자의 기본적인 대상이 된다.

그런데 1등급 와인이 있으면 2등급 와인도 있을 텐데 도대체 몇 등급까지 있을까, 그리고 이런 기준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거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 3세의 치하에 있었던 1850년대의 프랑스로 돌아가야 한다.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로 시작된 와인 등급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1세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프랑스를 복구하기 위해 한창 힘을 쏟고 있었는데, 마침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힌트를 얻어 파리에서도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1855년에 파리 만국박람회가 개최된다.

프랑스의 각종 특산품을 내놓는 이 자리에 와인이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프랑스의 대표 특산품인 고급 와인에 대해서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와인이 고급 와인인지 이름만 들으면 다 알 수 있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무리였다. 그래서 친절하게 고급 와인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런데 와인이라는 것이 지역 특산품이기 때문에 여러 지역의 와인을 한꺼번에 놓고 등급을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좋은 와인이 많이 나기로 가장 유명한 보르도지방, 그리고 그 지방에서도 특히 메도크 지역에만 국한해 와인의 등급을 정하게 됐다.

메도크 지역에는 대략 6000여 개의 샤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샤토의 와인들에 등급을 매길 필요가 없었다. 이 모든 와인이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와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수출할 극품 와인만 출품하면 되기 때문에 메도크 지역 전체 와인 생산자 중 상위 1%에 해당하는 61개 샤토만을 대상으로 정하고, 그 와인들 내에서 등급을 정해 1등급 4개, 2등급 15개, 3등급 14개, 4등급 10개, 5등급 18개 등이 결정됐다.

그러니까 5등급 와인이라는 것이 등급이 가장 낮은 와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등급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메도크 지역 최고의 와인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와인재테크] 와인 등급의 역사
[와인재테크] 와인 등급의 역사
[와인재테크] 와인 등급의 역사
2등급에서 유일하게 1등급으로 승격한 샤토 무통 로트칠드

그런데 여기서 잠깐! 1등급 와인이 현재는 5개인데, 1855년에는 4개였다. 중간에 변경이 있었던 것이다. 샤토 무통 로트칠드는 원래 와인의 등급이 결정되던 1855년에는 2등급이었으나 1973년에 1등급으로 승격이 됐다.

이를 제외하고는 등급이 변경된 와인은 한 개도 없다. 1973년은 샤토 무통 로트칠드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다. 그해의 라벨을 피카소가 그렸고, 피카소가 그해 죽었으며, 118년 만에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급했다. 1855년에 2등급으로 결정된 이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샤토 무통 로트칠드에서는 샤토 입구에 이런 문구를 내걸었다고 한다.

‘Premier ne puis, Second ne daigne, Mouton suis(1등은 될 수 없고, 2등을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다. 난 무통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1973년 1등급 승급 이후에 그 문구는 아래와 같이 변경됐다.‘Premier je suis, Second je fus; Mouton ne change(난 1등이다. 비록 2등이었으나;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샤토 오브리옹이다. 이 와인은 사실 메도크 지역의 와인이 아니다. 그라브 지역의 작은 마을 페삭 레오냥이라는 별도의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인데 워낙 품질이 좋아 이 와인만 메도크 지역 와인에 포함시켜 등급을 매긴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이건 마치 무등산 수박경진대회를 개최하는데 무등산 인근 지역이 아닌 태백산에서 생산된 수박을 워낙 품질이 좋으니까 무등산 수박 틈에 끼워 넣어서 품평회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시 사람들의 샤토 오브리옹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와인재테크] 와인 등급의 역사
등급과 와인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브랜드의 가치

어쨌든 처음 등급을 산정할 때 등급산정위원회에서는 등급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염려해 이 등급분류가 공식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단서조항을 붙였지만 현재까지 가장 공식적인 근거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 등급을 분류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와인의 품질이다. 그 품질을 참고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과 구매서류 등을 광범위하게 검토했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그 와인의 가격이다. 비싼 와인이 높은 등급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요즘도 2등급 와인 생산자들은 자기들 와인이 1등급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거나 어떤 해는 더 낫기도 하다고 주장하며 등급체계의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등급 샤토 코스데스투르넬 와인은 샤토 라투르에 비해 3분의 1 내지 4분의 1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렇게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소비자들이 같은 품질이라도 샤토 라투르에 대해서는 3배 내지 4배의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품질 말고도 와인 가격에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럭셔리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메커니즘 즉, 브랜드 가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브랜드 가치가 등급 결정 이전부터 존재했고, 그것이 등급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장벽은 무너지라고 존재하는 법! 샤토 코스데스투르넬은 21세기 들어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시설 일체를 교체했고, 1등급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앞으로 몇 해 안에 변경된 생산시설에서 나오는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을 텐데 자못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