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을 창조했을까. 아니면 인간이 신을 만들어냈을까.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앞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테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실제로 신앙심과 무관하게 종교의 역사, 적어도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두 가지 답이 다 가능하다.
[Thoughts on] 믿고 알 것인가, 알고 믿을 것인가?
종교적으로 보면 기독교는 유대교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기독교의 성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그중에서 구약성서가 바로 유대교의 역사다(신약성서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인류의 ‘종교적 본능’은 일신교보다 다신교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인류 문명의 고향인 고대 서남아시아 세계의 종교는 거의 다 다신교였다. 그런 환경에서 유일신을 고수한 것이 바로 유대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여러 신들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신이 더 큰 권력을 가질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대교는 처음부터 강력한(율법이 엄격하다는 점에서) 종교였지만, 안타깝게도 유대인만이 가질 수 있는 폐쇄적인 종교였다.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정책에 따라 처음 유대교에 관용적이었던 로마제국이 제국의 공고화를 위해 탄압 방침으로 돌아서자 유대교는 일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신도가 유대인만으로 제한돼 있어 성장에 한계가 있었던 유대교는 그 참에 ‘종교 시장’을 개방해 포교 종교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 바로 예수다. 그는 유대교에서 유일신을 받아들이고 폐쇄성을 철폐해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창시한다.

그런데 기독교의 탄생에는 종교적 전통만이 아니라 철학적 배경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데아(독일어·Idea)라는 개념을 제기한 바 있다. 쉽게 말해 이데아란 세상 만물의 ‘원본’이다. 원본이 있기에 사본이 존재할 수 있듯이 세상 만물은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나무의 이데아는 소나무, 대나무의 원본이며, 인간의 이데아는 장동건, 김태희의 원본이다. 자연적인 사물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물건에도 이데아가 있다. 의자의 이데아는 안락의자, 낚시의자의 원본이고, 영화의 이데아는 <왕의 남자>, <아바타>의 원본이다.

이데아를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영화’라는 영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데아는 경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아는 피안(彼岸)에 존재하며 차안(此岸)의 사물들을 정의한다. 그러므로 이데아의 세계는 현실세계와 별개로, 더 상위의 차원에 존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곧 신의 세계다. 플라톤의 시대에는 올림포스 12신이 지배했지만 그의 이데아론에 유일신만 도입하면 바로 기독교가 된다. 그 빈 구멍을 메운 것이 바로 예수의 역할이었다.

이렇게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와 상당히 유사하고 기독교의 탄생을 철학적으로 예고했기 때문에(물론 플라톤 자신의 의도는 아니다) 유럽의 중세 내내 교회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에 비해 플라톤의 제자이자 그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교회에서 폄하되고 무시되다가 결국 잊히게 된다(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백 년 동안 유럽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르네상스기를 맞아 화려하게 복귀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1000년간의 중세를 흔히 기독교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기독교 신학은 점차 정교하게 발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이 종교 바깥의 사람에게 종교를 이야기할 때는 늘 맞닥뜨리게 되는 신학적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앙과 이성의 관계다.

교회에서는 일단 신앙을 가지라고 권한다. 신의 품 안에 들어서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종교에 이끌리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앙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보라고 요구한다. 뭘 알아야 믿든 말든 할 게 아니냐는 자세다.

믿고 알 것이냐, 알고 믿을 것이냐. 믿음을 앞세우면 신앙을 강조하는 태도고 앎을 앞세우면 이성을 강조하는 태도다. 중세 초기에는 단연 신앙이 이성을 앞섰다. 신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물론 신을 감히 이해하거나 설명하려는 것도 신성모독이었다. 그러나 10세기를 넘어 중세 후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자 교회도 현실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신학적 쟁점이 신의 존재에 관한 논증이다.

누구나 신의 존재를 믿지만(혹은 믿고 싶지만) 신을 본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11세기의 수도사인 안셀무스는 재미있는 방식을 고안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무리 바보라 할지라도, 상상할 수 있는 어느 것보다도 위대한 존재가 최소한 관념 속에서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존재는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만약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현실 속에서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존재는 분명히 존재할뿐더러, 그것도 관념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존재한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지만 실은 ‘신은 완벽한 존재’라는 가정에서 결론을 도출한 것이므로 궤변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당대에도 반박을 받았다. 상상할 수 있다고 해서 다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우닐론이라는 수도사는 이상적인 섬을 예로 들어 논박한다.

“우리는 어떤 곳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한 섬의 관념을 마음속에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섬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백번 옳은 이야기다. 약이 오른 안셀무스는 약간 유치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만약 신의 관념과 이상적인 섬의 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그런 섬을 주겠다.” 신이라는 엄숙한 주제와 부동산 같은 천박한 주제를 어떻게 같은 논리로 비교하느냐는 것인데, 그런 논리를 먼저 구사한 사람은 안셀무스였으니 좀 구차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증명 자체보다 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신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성의 힘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시도했다는 면에서 안셀무스의 주장은 획기적이었다.

이제 인간 이성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흐름은 교회로서도 막을 수 없게 됐다. 중세 초기에는 교회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던 인간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어릴 때는 말 잘 듣고 착했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기도 머리가 컸다고 부모에게 따지고 드는 격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야 어른이 된다고 보면 그건 사필귀정이다.

사실 중세 후기에 교회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인간의 머리는 점점 깨어 가는데, 교회는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점점 부패했다. 이런 판에 각국의 군주들도 슬슬 교회의 명령에 불복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십자군 전쟁으로 이교도 지역에 기독교 문명권을 능가하는 선진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래저래 교회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중세 유럽에서 신학이란 단순히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정신세계의 모든 측면을 규정하고 규제하는 방대한 체계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비유하자면, 중세 유럽의 신학은 조선의 유학과 비슷하다.

조선 사회에서 유학이 그냥 일개 학문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학문과 가치관, 생활방식까지 규정했듯이, 중세 유럽의 신학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회와 문명 전체를 떠받치는 근본이념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유학의 한 갈래로 실학이 나왔듯이, 유럽의 신학도 새로운 현실의 변화를 신학 내에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학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시대는 지났다. 예컨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까지 일일이 신이 관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각에서 13세기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타협책으로 신학을 둘로 나누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종래의 신학은 계시신학이라고 이름을 바꾼다. 그밖에 세속적인 학문 분야는 전부 자연신학이라고 규정한다. 지금으로 치면 과학, 철학, 지리학 등이 자연신학에 해당하지만 당시까지는 아직 학문을 말할 때 ‘신학’이라는 용어를 생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의 타협은 수십 년 뒤 르네상스가 태동하는 학문적 토대가 됐다.

중세 초기에 중요한 쟁점이었던 신앙 대 이성의 문제는 결국 이성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토마스의 절묘한 타협은 세속의 학문인 자연신학이 신앙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지, 인간이 신을 만들었는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완벽한 답을 말할 수 없다.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및 번역가 dimeol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