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지은은 동양화를 기본으로 꽃과 나뭇잎, 나뭇가지 등을 모노톤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최근 그는 자연의 이미지에 시간 개념을 도입한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그를 서울 외곽 작업실에서 만났다.
[Aritist] 작가 이지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
작가 이지은을 처음 만나 건 2010년 가을, 서울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였다. 전시를 앞둔 그는 기자에게 갓 나온 도록을 조심스레 내놓았다. 도록을 펼치자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었다 지는 꽃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 등이 펼쳐졌다. 작품은 경쾌하면서도 들뜨지 않아 은근한 깊이를 느끼게 했다.

“이번 작품은 자연의 이미지에 시간 개념을 도입하려 했어요. 꽃이 사시사철 붉게 피어 있지 않고, 한순간 피었다가 서서히 지잖아요.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과정을 원형의 구도나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구도를 이용해 그렸습니다. 꽃의 형상이 서서히 없어지는 효과를 주기 위해 잎이나 꽃을 점으로 표현했고요.”

다소곳이 앉은 자세와 달리 거침없이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차를 마시며 갤러리 대표로부터 그가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나왔으며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약속 탓에 첫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림은 설명 이전에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어야
[Aritist] 작가 이지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
이 작가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2주 후, 서울 외곽에 있는 작업실에서였다.

상가를 낀 건물 5층을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통해 작업실로 오르며 이 작가는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아침에 작업실에 들어가면 저녁이나 돼서야 나온다고 했다.

앞뒤로 넓은 창이 난 작업실은 햇살이 가득했다. 작업실에는 현재 작업 중이거나 작업을 끝낸 작품들과 물감 등이 잘 정리돼 있었다. 커피를 내온 그는 얼마 전 전시회를 하느라 작업실이 난장판이었다며 인터뷰를 위해 청소를 한 게 이 정도라고 했다.

“제 작업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손이 많이 가요. 캔버스에 라텍스를 붙여 작업하고, 나중에 다시 그걸 떼어 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미세한 부분은 0호짜리 붓을 쓰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마무리 작업하는 데도 7시간 가까이 걸려요. 가끔은 정신노동이라기보다 육체노동을 하는 듯해요.”

전시를 준비하며 이 작가는 김수영 시인의 ‘꽃잎 2’를 생각했다. 전시 제목도 시의 한 구절을 빌려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라고 지었다.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이후 생략
[Aritist] 작가 이지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
전시회를 구상하며 시를 떠올릴 만큼 그는 문학과 음악을 사랑한다. 그는 곧잘 문학과 음악을 들어 그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구성과 표현 등에서 최고의 수준인 박경리의 <토지>처럼 미술이나 음악도 그 정도 수준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과 달리 미술은 시각적인 효과가 중요하잖아요. 이번에는 특히 그 시각적 효과에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라고 하잖아요. 샤갈의 작품은 텍스트 이전에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잖아요. 그게 제 미학의 기준이에요.”

충격과 새로움이 가득했던 프랑스 유학 시절

처음부터 그가 꽃을 그리지는 않았다. 30대엔 화려한 색깔의 꽃을 오히려 피했다. 상업적인 그림으로 세상과 타협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누구나 그렇듯 젊은 시절 작가 이지은은 여러 실험으로 자신만의 화면을 찾는 데 주력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오자르로 유학을 떠난 것도 자신의 화폭을 개척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그는 프랑스 유학이 자신의 작품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였다고 자평한다. 대학원에서 그는 먹으로 비구상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러다 프랑스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작품을 했다. 그걸 본 선생이 “한국에서와 똑같은 작품을 하려면 뭐 하러 유학을 왔냐”고 꾸짖었다. 그로서는 그 말이 적잖은 충격이었고, 동시에 새로움에 눈 뜨는 계기가 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유화에 손을 댄 것도 그때였다. 이전 유화에 대해 배운 게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 가는 대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오자르는 처음 학생을 받으면 물감 만드는 법부터 가르친다. 그런 과정을 거친 덕에 물감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은 것도 도움이 됐다. 지금도 그는 웬만한 물감은 스스로 만든다.

5년간의 프랑스 유학은 그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학비와 생활비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여행 경비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 없이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86년부터 90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렀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초기에는 광목에 수묵화처럼 번지는 작업도 하고 틈틈이 아크릴 작업도 했다.

“먹이나 아크릴이 번질 때 주는 우연성이 좋았어요. 아마 제가 동양화 전공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서양화과 출신은 캔버스를 세우고 쓰기 때문에 먹이나 아크릴이 흐르잖아요. 저 같은 동양화과 출신들은 바닥에 깔고 하니까 번지는 작업이 수월한 거죠.”
[Aritist] 작가 이지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
긴 공백 후 2010년 새로운 작품으로 화려하게 복귀

귀국 초기는 작가로서 이론을 무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화우들의 도움이 컸다. 김춘수, 박관욱, 홍승혜 등이 그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이었다.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일하듯이 작업을 하다 저녁이면 함께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지금은 체력이 달려 엄두도 못 내지만 그때는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게 예사였다. 많은 술자리가 그렇듯이 새벽까지 남는 멤버들은 고정되게 마련이다. 그와 홍승혜, 김춘수 등이 그 멤버였다. 남은 술기운을 빌어 미술에 대해 굉장히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잠시 화단과 거리를 두었다. 이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탓에 미술평론가들 사이에 ‘이지은 작가 외국 갔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늦은 결혼 탓도 있었지만, 그 무렵 색채에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작가로서의 고집이 의도하지 않은 공백을 불러온 것이다.
[Aritist] 작가 이지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
“예전에는 화려한 색 쓰는 걸 좀 우습게 봤어요. 나이가 드니까 생각이 바뀌어요. 화려한 색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고요.”

작가에게 색은 가수의 성량과 같다. 성량이 가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듯이 색은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들은 오랜 기간 다양한 재료와 색을 실험한 끝에 나왔다. 스스로 색감이나 표현력에서 생각한 만큼은 나온 듯하다고 평가한다.

“그림 하는 친구 중에서 정말 독한 평을 잘하는 친구가 있어요. 이번 작품을 보고 그 친구가 그래요. 작품이 밝고 경쾌한데 깊이감은 떨어지지 않는다고요.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소리 들으면 정말 기분 좋죠.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요.”

지금 하는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앞으로 그가 할 일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그는 한발 한발 5층 계단을 오른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