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

대우전자 회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배순훈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을 맡은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취임 직후 최우선 과제로 꼽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세계화는 어느 정도 진척돼 있을까. 2011년 현대미술관 서울관 착공을 앞두고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2011년 착공하는 서울관은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으로 만들 터.”
“2011년 착공하는 서울관은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으로 만들 터.”
관장에 취임하신 지 만 2년이 됐습니다. 지난 2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임기가 3년이니까 3분의 2쯤 왔네요. 이쯤 되면 레임덕을 걱정할 때이지만, 할 일이 많아서 레임덕에 걸릴 시간이 없어요.(웃음) 취임 첫해는 전임 관장이 준비한 전시를 했는데, 다행히 관람객이 전년에 비해 30%가 늘었어요.

2010년에는 관람객 150만 명을 목표로 세웠는데 110만 명 정도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여기에는 세계 경제 불황, 한반도 리스크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올해는 좋을 거라고 전망합니다. 아시아 리얼리즘 등 중요 전시들이 잡혀있으니까요.”

2010년 전시 중 특별히 인상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소장전이나 지금 하고 있는 피카소 모던아트전을 들 수 있겠네요. MACBA 소장전은 국내 관람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스페인 현대미술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피카소 모던아트전은 우리 눈에 익은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면서, 학구적으로도 의미 있는 전시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선임됐을 때 많은 분들이 의아해했습니다. 관장님 이력을 보면 예술계와 무관해 보였으니까요.

“잘 모르는 분들은 그럴 수 있죠. 제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잘 그렸어요. 한때 미대를 지망할 정도로요. 집사람(서울대 미대를 나온 작가 신수희 씨가 그의 부인이다)도 화가고, 아들도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입니다.”

미술계 인사들과 친분도 깊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요. 박서보나 김창렬 선생 등 많은 분들과 왕래가 있었죠. 그분들은 저를 아니까 관장으로 취임할 때 기대를 많이 하셨죠. 미술과 경영을 모두 아는 이가 관장이 되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적인 명소가 되겠다고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다양한 작가를 좋아합니다. 대학 다닐 때는 모딜리아니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내의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건 취향(preference)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must)예요.(웃음)”

[CEO Interview] “미술관 경영도 회사처럼 상호 소통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
2010년 미술계 최대 화두는 양도세였습니다. 2년 유예로 결정이 났는데요. 양도세 부과에 대해 관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홍콩으로 갈 것이냐, 북한 체제로 갈 것이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세금을 감면한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품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양도세를 부과하면 한국 미술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세금뿐 아니라 원활한 거래를 위한 조치도 필요합니다. 중국만 해도 미술품 거래가 우리보다 훨씬 수월하거든요.”

중국 시장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대우전자 부사장으로 있던 1983년부터 중국을 출입했습니다. 당시 최고경영자(CEO) 중에서 중국을 가장 많이 다녔을 겁니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신의를 중시하던 풍조가 급격하게 실리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 전 세계 무역을 석권했던 페르시아 상인보다 독한 게 중국 상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아무래도 관장님 하면 대우전자 시절 ‘탱크주의’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때 인상이 너무 강해서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죠, 하지만 제 캐리어를 자세히 보면 대학교수로도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논문도 많이 쓰고 강의도 많이 했죠.”

대우전자와 미술관 경영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일반 회사 경영은 모든 게 수량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간단합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비영리기관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수입은 정부 예산에서 끌어오고, 지출은 공공 사업으로 써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출의 수량화가 상당히 모호하고 어려워서 효율이 떨어집니다. 저는 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애를 썼습니다.”

특수법인화 추진도 그 일환인가요.

“그렇습니다. 지배구조의 문제인데, 그래야만 문화부의 입김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균형점을 찾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다음 부대사업 등을 통해 이익을 남기고 그 이익을 재투자하는 겁니다. 영국과 미국 등의 미술관들은 이미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재무계획이라는 게 없었죠. 그래서 경영이 필요한 거죠.”

취임하시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세계화를 강조하셨습니다. 세계화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제적 위상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전시를 하려면 외국 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와야 하는데, 후진국일수록 비싼 대여료를 지급합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많은 미술관이 비싼 값에 그림을 빌려옵니다.

그림을 대여할 때는 데미지를 입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 표준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죠. 외국 미술관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선 그런 표준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국내 작가들 작품을 외국에 빌려줄 때는 어떻습니까.

“아직은 빌려간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생길 거라고 봅니다. 당장 올해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이우환전을 한다는데, 이우환 작가의 대표 작품이 우리(국립현대미술관)한테 있거든요. 백남준 선생 작품도 꽤 많이 가지고 있고요. 미술관의 역할이 그런 거죠.”

취임하시면서 ‘현대미술의 베이스캠프’라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롤모델이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MoMA는 소장품만 약 20만 점이에요. 특히 디자인이나 사진 등 현대미술품들이 많아요. 그중 1년에 전시할 수 있는 건 500점 정도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MoMA처럼 전시 위주로 소장품을 정하려고 했어요. 문화유산이 될 만한 현대작품을 소장하는 게 미술관의 또 다른 역할일 테니까요. 물론 외국에 빌려주는 일도 해야죠.”

작품 교류를 활발히 하려면 관장님들끼리 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MoMA 등 유명 관장들은 압니다. 처음부터 안 건 아니고요. 제가 그냥 쳐들어가서 만났습니다. 그 뒤론 여러 가지로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탱크주의’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거네요.

“탱크주의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직접 만나서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서로 얻을 게 있거든요.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랬잖아요. 비즈니스는 첫째, 서로 주고받는 것이고, 둘째, 주고받되 서로 부가가치가 창출돼야 한다고요. 그래야 윈-윈(win-win)이 가능한 거죠.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통역 없이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요.”
[CEO Interview] “미술관 경영도 회사처럼 상호 소통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
외국 출장을 가실 때 수행원 없이 가실 때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인가요.

“통역이나 수행원 없이 가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위신 없어 보인다고 말리더군요. 하지만 서로 윈-윈 하다 보면 위신이란 건 자연히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올해 착공하는 서울관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듯합니다. 서울관 건립에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입니까.

“3000억~4000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울관이 들어서는 옛 기무사 터 땅값을 어떻게 매기느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주변의 땅값 시세를 고려해 예산이 8000억 원 이상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고요. 건축비만 약 1300억 원이 듭니다.”

대우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어서 건설이 생소하지는 않겠습니다.

“네. 제가 교수를 하다 처음 간 기업이 대우엔지니어링이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사장이고 제가 부사장이라 제가 거의 일을 봤습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었는데 가깝게 잘 지냈어요. 취임을 하고 몇 해 동안 건설업계 최대 공사를 우리가 다 땄어요. 그런 걸 보면 저도 건설 전문갑니다.(웃음)”

많은 예산이 드는 만큼 부담도 크시겠습니다.

“그럼요. 공공 서비스를 하면서 들어간 비용의 얼마만큼은 회수를 해야 하니까요. 지금 예상은 1년에 200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들 거라고 보는데, 1인당 1만 원의 관람료만 받아도 적지 않은 수입 생길 거라고 봅니다.

초기엔 일부 정부 보조를 통해 평균 5000원 정도의 관람료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을 만들어야겠죠.”


배순훈

현 국립현대미술관장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MIT대학원 공학 석·박사
대우전자 회장
제4대 정보통신부 장관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