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나흐는 작품 <젊음의 샘>을 통해 ‘젊어지고 싶다면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랑이 곧 젊음의 묘약인 것이다.

연초에는 다들 새해 소망을 품고 시작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새해가 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부분도 있다. 한 해가 시작되면서 내 얼굴의 주름도 늘기 때문이다. 영원한 젊음,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소원해왔던 것이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영원한 젊음’ 그 오래된 열망의 표현
늙지 않고 평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불로초(不老草)를 찾아 온갖 노력을 기울이던 중국의 진시황이나 젊어지기 위해 젊은 처녀들을 죽여 그 피로 목욕을 했다는 헝가리의 백작 부인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동안’에 대한 열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열 살, 세 살, 아니 한 살이라도 더 어려보이고 싶어!”(드라마 속 노처녀의 대사가 아니다. 정직하게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시라.) 동안 화장품부터 동안 콘테스트까지 모두가 동안 열풍이고,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의학의 힘부터 운동, 식이요법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젊음이란 곧 아름다움과 연결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결국 탐미적 존재가 분명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른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전성기의 나’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보면 흥미로울 만한 그림 한 편을 살펴보자.

끝없는 젊음에의 갈망, 인간의 아주 오래되고 원초적인 본능을 재치 있게 표현한 그림을 보며 젊다는 것, 그리고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잠시나마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젊음의 샘>(The fountain of youth), 1546년, 독일 베를린 회화갤러리 소장
[강지연의 그림읽기] ‘영원한 젊음’ 그 오래된 열망의 표현
언뜻 보면 온천욕장을 그렸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이다. 그림 가운데 있는 야외 대중탕(?)에는 여러 사람들이 옷을 벗고 들어가 있다. 머리를 감거나 수영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된다.

왼쪽 물속에는 할머니들이, 오른쪽 물속에는 처녀들이 들어가 있다. 가운데 분수대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노는 물이 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다 시야를 조금 넓혀 이 샘의 바깥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그림을 확대해 자세히 보자.

그림의 왼쪽 부분을 보면 할머니들이 아주 힘겹게 오고 있다. 혼자서는 걸음도 못 걸을 정도로 노쇠해 주로 등에 업혀 오거나, 들것에 실려 오거나, 수레를 타고 오기도 한다. 몇 발자국 걸으면 쓰러질 것 같은 이 할머니들은 도대체 왜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을까. 들것에 실린 할머니가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뭔가 기도를 하고 있는 걸로 봐서,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온천에 관광하러 온건 아닌 것 같고 이 샘에는 뭔가 중요한 효험이 있나 보다.

사실 이 샘의 이름은 ‘젊음의 샘(The fountain of youth)’이다. 늙고 노쇠한 육체가 이 샘에 들어갔다 나오면 젊고 아름다운 몸으로 바뀌게 된다. 이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할머니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전체 그림에서 이 부분 위쪽을 자세히 보면 붉은 옷을 입은 의사가 허리를 굽혀 옷을 다 벗은 할머니를 자세히 검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젊음의 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상당히 제한적이고 까다로운 것 같다.

어쨌든 검진이 끝난 노인들은 이 샘에 들어갈 수 있는데, 샘의 물이 깨끗해 보이진 않고 다소 회색이 도는 것으로 보아 노인들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물인 듯하다. 하긴 수도하는 사람들은 오물이 떠다니는 갠지스 강에도 기꺼이 들어간다는데, 젊어진다면야 무슨 물인들 못 들어가랴. 샘의 회색빛 물은 마치 허물을 벗어버린 할머니들의 살가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영원한 젊음’ 그 오래된 열망의 표현
쭈글쭈글한 피부와 축 처진 가슴을 가졌던 할머니들이 샘에 들어가서 오른편으로 나올 때에는 장밋빛 피부에 탄력 있는 몸매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 <트랜스포머>보다 더 놀라운 변신이다. 젊고 아름다워진 처녀들은 사뿐사뿐 샘의 가장자리로 올라가서 왕실 시종의 복장을 한 남자의 안내를 받아 천막으로 들어간다. 이 천막에는 다시 아름다운 몸을 되찾은 여자들을 위해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옷들이 준비돼 있다. 새로운 몸을 얻었으니 그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을 차례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전체 그림을 보면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의 풍경은 매우 대조적이다. 왼쪽은 가파른 바위들이 있는 험난하고 황량한 땅으로 이미 늙고 노쇠한 할머니들을 닮아 있다. 그러나 오른쪽은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젊음의 땅이다. 여기서 다시 젊음을 되찾은 여인들은 돈과 권력을 지닌 남자들과 어울려 환락을 즐기고 있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영원한 젊음’ 그 오래된 열망의 표현
그들은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한다. 다시 되찾은 젊음은 짝을 지어 연애할 수 있게 해준다. 한껏 아름답게 치장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들.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 바로 젊음의 샘 한가운데에서 물을 뿜고 있는 분수대 위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큐피드 상이다.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는 이들 상징을 통해 ‘다시 젊어지고 싶다면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랑만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젊게 하는 묘약은 실제로는 없는 법이니까. 새해, 젊어지고 싶다면 사랑하라. 꼭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가족, 친구 그리고 사람들.
[강지연의 그림읽기] ‘영원한 젊음’ 그 오래된 열망의 표현
우리 주변에는 사랑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시 한 번 젊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꿈꾸며 약을 먹고 성형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나이든 날도 젊은 날 못지않게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우리를 아름답게 한다. 사랑은 영원한 젊음의 묘약이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네이버 블로그 ‘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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