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휴가를 보내는 곳

여행도 경쟁력이다. 이제는 남들과 같은 여행은 하지 말자. ‘와인여행자 조정용’의 안내를 받아 크로아티아로 떠난다. 서양의 부호들이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 달마시아로 가기 위해서다.

그림 같은 마리나에 요트를 세우고 혹은 크루즈에서 내려 섬을 돌아다니며 음식과 와인 기행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리스·로마 문화가 통째로 남아 있는 발칸 반도에서 가장 유려한 나라, 2011년 휴가 후보지 1위 크로아티아로 떠난다.
파그 섬의 유일한 양조장 보스키나츠의 양조장 안으로 수확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반입하고 있다. 양조장 안에는 귀여운 호텔과 수준급의 레스토랑이 있어 여름에는 항상 여행객들로 붐빈다.
파그 섬의 유일한 양조장 보스키나츠의 양조장 안으로 수확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반입하고 있다. 양조장 안에는 귀여운 호텔과 수준급의 레스토랑이 있어 여름에는 항상 여행객들로 붐빈다.
크로아티아는 지중해에 속한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 보는 국가로 발칸 반도의 서부 해안 상단을 몽땅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한 크로아티아는 왕년에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과 같은 출신이다.

로마와 투르크 세력의 중간 지대였던 발칸 반도는 아직 한국인들이 발길이 잦지 않은 여행지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서유럽으로 배낭을 메고 떠났던 사람이라면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으로, 음악의 발자취를 좇았던 여행자라면 이제 그 중간에 자리한 발칸 반도, 그중에서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해양 국가 크로아티아로 방향을 잡아보자.

크로아티아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거부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다. 크로아티아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 한두 시간 남짓 비행하면 크로아티아에 다다른다. 파리에서, 뮌헨에서, 로마에서, 비엔나에서,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나 두 번째 도시 스플리트 혹은 중세 자치국이었던 도시 두브로브니크로 떠나보자. 더 여유가 있다면 기가 막힌 풍경의 섬 나들이도 있다.

그런 이유로 크로아티아는 크루즈의 목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의 해양 활동 수요가 점증하면 할수록 크로아티아의 주요 해안 도시를 자주 듣게 될 것이다. 신문화의 얼리어답터이면서 고급 여행에 대한 기대가 높은 사람이라면 크로아티아의 크루즈 여행이나 요트 여행은 필수 정보가 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부호들이 여름휴가지 1순위로 꼽는 크로아티아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크로아티아의 달마시아 지방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해변이 큰 자랑이다. 쪽빛 바다, 대리석 건물, 붉은 기와지붕 등 세 가지로 수놓은 아드리아 해의 기다란 해안은 보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 그리스 산토리니가 파란 지붕인 반면, 달마시아는 연어 빛 붉은 지붕이 특징이다. 어느 어촌 마을을 가도 이 세 가지 색깔은 통일돼 있다.

수도 자그레브는 모양이 비엔나와 비슷하다. 시내 한복판에 큰 성당, 무게중심이 잘 잡힌 석조 건물, 운치 있는 트램, 한가롭게 거리 카페에서 눈요기를 즐기는 관광객, 총총 걸음으로 지나는 시민들. 모자나 넥타이가 귀여우면서도 품위가 있으니 여행 기념품으로 딱이다.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레드 와인 품종 플라바츠 말리로 만든 와인들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레드 와인 품종 플라바츠 말리로 만든 와인들
크로아티아가 자랑하는 와인과 바닷가재 요리가 있는 흐라르

스플리트에 이르기 전에 섬 구경을 좀 하자. 미끈한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브라츠 섬에서 캐낸 최상품 대리석은 백악관의 기틀을 이루고 있으며, 소금과 양고기로 유명한 파그(Pag) 섬에는 귀여운 호텔과 양조장을 동시 운영하는 보스키나츠(www.boskinac.com)에서 하룻밤 자야 한다.

여기에서는 근사한 식사와 맛깔스런 와인이 둘 다 가능하다. 가을이나 겨울에만 번식하는 계절번식동물인 양은 새 봄에 새끼를 낳으므로 부드럽고 맛난 새끼 양고기를 맛보려면 봄나들이를 해야 하니 파그 섬은 봄에 찾을 일이다.

보스키나츠 양조장의 으뜸 와인은 오크통에서 숙성한 보르도 스타일 와인이다. 바닐라 풍미에 진하고 농익은 향기가 양고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와인이 진해서 좀 삭은 치즈도 문제없다.

남서로 길게 뻗은 파그 섬을 남서 방향으로 끝까지 달리면 뭍으로 연결된다. 이어진 고속도로를 내지르면 해안선이다. 여름 성수기에는 차가 장사진을 이루니 달마시아 여행은 5월이나 9월에 하기를 추천한다. 깃발 여행으로 온다면 길어봐야 1박일 테니 별문제 없겠지만.
흐바르 섬의 항구와 산등성이의 고성
흐바르 섬의 항구와 산등성이의 고성
스플리트에서 페리를 타면 아주 멋진 섬, 흐바르(Hvar)에 당도할 수 있다.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 5선에도 꼽히는 곳이다.

파그 섬과는 다르게 흐바르 섬은 와인 양조가 발달해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포도밭이 진드기 필록세라에 의해 생산이 중단됐던 시절 흐바르를 비롯한 달마시아 와인들이 유럽 와인 애호가들의 갈증을 채웠기 때문에 흐바르는 왕년에 아주 번성한 섬이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난 뒤에 역시 필록세라로 인해 포도 농가의 농부들은 고향을 떠났으며, 유고연방이 성립된 후에도 많은 인구가 빠져나가 지금은 인구밀도가 아주 낮다. 지중해의 몰타 섬과 비슷한 면적이지만, 인구는 몰타의 5%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성수기만 피하면 아주 여유롭게 섬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남향 경사면에 위치한 포도밭에는 포십, 보그다누사 등 청포도와 레드 와인 품종 플라바츠 말리를 많이 재배한다.
청포도 보그다누사와 마라스디나를 혼합, 수확한 흐바르 섬의 양조장 즐라탄 플렌코비치의 한 젊은이
청포도 보그다누사와 마라스디나를 혼합, 수확한 흐바르 섬의 양조장 즐라탄 플렌코비치의 한 젊은이
크로아티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츨라탄 플렌코비치(www.zlatanotok.hr)의 양조장이 여기에 있다. 그는 해변에 둥근 지붕의 돌집을 지어 레스토랑을 만들고 지하에는 꼭 잠수함 같은 와인셀러를 갖추고 있다. 갓 잡은 바닷가재와 게 혹은 생선으로 요리하는 이 식당은 흐바르 필수 코스며, 다이빙을 좋아하면 6m쯤 되는 자연 코스에서 시도해 보길 권한다.

옐사(Jelsa) 마을의 안드로 토미츠(www.bastijana.hr) 양조장도 꼭 돌아봐야 한다. 와인의 섬세한 품질은 이곳이 낫다. 한 생산자에 따르면 토미츠가 시 창작 작업보다 양조 작업에 더 시간을 들이면 와인의 수준이 한층 제고될 거라고 귀띔한다.
흐바르 섬의 안드로 토미츠 양조장의 지하 셀러
흐바르 섬의 안드로 토미츠 양조장의 지하 셀러
그는 식초까지 만들어 먹는다. 그 집을 들어가 보니 1994년이라 표시된 식초가 있었는데 아주 싱싱하고 상큼한 맛이었다. 그가 만드는 플라바츠 말리 레드 와인은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손색이 없다.

연안에서 짓는 플라바츠 말리는 대체로 타닌이 강하게 포진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아 부담스러운 입맛을 지니지만, 토미츠의 것은 도수도 13%대며 향기나 입맛에서 과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케팅 교수이자 와인 양조가 이보 두보코비치
마케팅 교수이자 와인 양조가 이보 두보코비치
이보 두보코비츠(www.dubokovic.hr)의 와인을 빼먹는다면 흐바르 여행의 의미가 없다. 두보코비츠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흐바르로 돌아간다. 주말에 자신의 와인을 담금질하기 위해서다. 누가 마케팅 교수 아니랄까 봐 그가 구사하는 와인 마케팅은 시장에서 잘 통한다.

아마도 그의 포부는 크로아티아가 가장 아끼는 와인을 만드는 것일 텐데, 시장은 이미 제대로 반응해서 그의 와인이 가장 비싸다. ‘암곰’이란 뜻의 레드 와인 메드비드(Medvid)는 풍성하고 진하며 감미로운 맛이 난다.

이 플라바츠 말리를 맛보면 크로아티아 레드 와인의 개별성과 잠재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와인 음용이 활발했던 달마시아, 그리고 달마시아 중심에 선 섬 흐바르에는 전도유망한 양조가들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흐바르 섬의 먹을거리는 다른 섬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두 식당은 반드시 가볼 필요가 있다. 양고기가 맛있는 파노라마 레스토랑에 가면 왜 상호가 그와 같은지 체감할 수 있다. 높은 언덕배기에 서있기에 흐바르가 바닷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올라와 육지에 앉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해산물을 원한다면 ‘미 앤 미세스 존스’로 가자. 작지만 귀여운 항구 옐사 연안에 있는 이 식당은 창의적인 젊은 요리사 부부가 깔끔하게 음식을 차려낸다. 식당 문을 나서서 서너 걸음 걸으면 바다다.
바닷가재와 게로 만든 스파게티로 크로아티아의 먹을거리는 이탈리아와 흡사하다.
바닷가재와 게로 만든 스파게티로 크로아티아의 먹을거리는 이탈리아와 흡사하다.
지상 낙원 두브로브니크가 자랑하는 양조장 두브로바츠키 포드루미
[Winery Tour] 크로아티아 여행의 백미 달마시아 해안과 부속섬 나들이
크로아티아 여행의 하일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두브로브니크. 그곳에 꼭 가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서 달마시아 해안이 종지부를 찍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가 파라다이스이기 때문이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지상에서 낙원을 찾는가. 그렇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17세기 크로아티아 시인 이반 군두리츠는 “세상의 모든 금 덩어리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읊었다.

두터운 성벽으로 쌓인 구시가지 복판에 있는 그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는 매일 아침 촌부들이 라벤더 기름이나 와인을 팔기 위해 모여든다.

로마를 무너뜨린 투르크에도 지지 않고 강했던 옛 두브로브니크는 중세 지중해를 호령하던 베니스 제국에도 큰소리를 쳤다. 당시 ‘라구사’로 불렸는데, 베니스 못지않은 해상력으로 그 항구에는 대규모 상선단이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영어의 대상선단 ‘argosy’란 단어는 이 도시 즉 라구사로부터 유래됐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는 법. 나폴레옹과 이어 합스부르크에 무릎을 꿇었으며,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던 1991년 전후로 큰 폭격을 당해 성과 성 안의 마을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전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 백악관에도 납품했던 최고 수준의 대리석이 근처에 많기 때문이다.

두브로브니크 남쪽에서도 본격적으로 와인이 생산된다. 양조장 두브로바츠키 포드루미(www.dubrovacki-podrumi.hr)는 지역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품질이 더 뛰어나다.

플라바츠 말리 와인을 섬에서 그리고 해안에서 맛본 자라면 이곳의 맛은 또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여기는 연안에서 가깝지만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포도의 신맛을 잘 조성해 도수가 높지 않으면서도 완숙된 포도를 잉태한다.

두브로브니크의 태양빛에 하얗게 반사되는 수백 년 된 돌길을 중세 사람처럼 걷고 있노라면 지나치는 관광객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다 아이스크림이 쥐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와인여행자도 곧 인파에 파묻혀 옛사람 마르코 폴로의 후예들처럼 괜히 빠른 걸음으로 다음 행선지로 떠난다.
[Winery Tour] 크로아티아 여행의 백미 달마시아 해안과 부속섬 나들이
글·사진 조정용 <라이벌와인>, <올댓와인> 저자 cliffc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