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의 안락함 대신 나누는 기쁨을 택했다. 자신보다 불행한 이들을 동정하는 대신, 자신과 다른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스스로는 물론 많은 이들에게 나누는 행복을 전파하며, 나눔과 봉사의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는 조용근 한국세무사회 회장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조용근을 이야기할 때 그의 경력에 먼저 관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말단 9급 세무 공무원으로 시작해 지방국세청장의 지위에까지 오른, 공무원으로서는 흔치않은 성공스토리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공직을 은퇴한 이후에는 전공을 살려 세무법인을 세웠고, 세무사 등록 2년여 만에 전국의 세무사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한국세무사회 회장에 선출됐을 뿐 아니라 연임까지 했다.
[Noblesse Oblige] 나눔의 원칙은 “지금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세무 공무원으로서, 세무사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경력인 셈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건 그의 화려한 경력만이 아니다. 안타까운 처지에 처한 이들에게는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전방위적’ 나눔 활동이 그가 진정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다.

한 달에 두세 번,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서울 청량리 등지에서 다일공동체의 ‘사랑의 밥퍼’ 행사에 참여해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 봉사를 한다. 아내와는 지적장애인 단체인 ‘소망의 집’에 함께 봉사를 다니기도 한다. 이발을 돕고 청소를 돕는 등 허드렛일은 모두 그의 차지다.

복지TV, 장애인신문 후원은 물론 세무사회 회원들과 더불어 태풍 피해가 컸던 미얀마에 학교를 지어줬는가 하면, 대지진이 일어났던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피해복구 성금 3만 달러를 전달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장학회를 만들어 현재는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98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 한 채를 남기셨어요. 그 집을 판 5000만 원을 10년간 저축해서 불렸더니 한 2억2000만 원이 되더군요. 그 돈으로 만든 게 바로 아버지(조석규)의 가운데 이름 글자와 어머니(강성이)의 가운데 이름 글자를 따서 지은 ‘석성장학회’죠.”

2002년부터는 사비를 더 보태 약 3억 원의 재단 자금을 마련한 후 장학회가 아닌 장학재단으로 운영하고 있다. 석성 세무법인의 부설 장학재단으로 매년 석성 세무법인의 매출액 1%가 장학금으로 출연된다. 현재 장학기금만도 15억여 원에 달한다.

“저희 장학재단은 장학금 받을 학생의 성적은 안 봐요. 얼마나 가난한지가 기준이 되죠.”
부모님 두 분 다 무학(無學)이었기에, 스스로도 가난 때문에 대학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기에, 장학재단 사업은 다른 많은 기부와 나눔 활동보다도 조금 더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처절한 가난에서 얻은 삶의 깨달음
[Noblesse Oblige] 나눔의 원칙은 “지금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배고픔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 역시 어려서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영양실조에 걸려 다 죽어가다 어머니가 잡아주신 쥐 고기로 목숨을 연명했고 세 살 어린 동생은 그나마도 소화를 못시켜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삶과 죽음마저 가르는 가난의 굴레는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학교에 다닐 때도 수학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다. 졸업비가 없어 남들 다 받는 졸업장도 제때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도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다녀야 했다.

주변에서 먼저 서울대 합격을 장담할 정도로 남달리 공부도 잘했지만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도 모두 가난 때문이었다. “대학이야 장학금을 받아 들어간다 해도 당장의 하숙비와 생활비는 구할 방도가 없잖아요. 그러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대신 스스로가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아 대학에 진학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다짐처럼 국세청 개청요원으로 공무원이 된 후에는 이른바 주경야독을 하며 대학의 꿈을 이뤄냈다.

그가 나눔과 기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부터다. 그 자신이 너무나 힘들게 공부하고 힘들게 살아온 만큼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9급 공무원에서 차근차근 승진을 거듭해 6급 공무원이 됐을 즈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생활 속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철제 저금통을 놓고 매일 매일 동전과 지폐를 저금했다.

100원이든 1000원이든 조금씩 모은 돈으로 저금통이 가득차면 구청 사회복지과에 연락해 소년소녀가장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 계좌번호로 성금을 넣어주곤 했다. 요즘은 매일 1만 원씩 꼬박꼬박 모은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계속돼 온 매일 매일의 저금통 기부는 그가 지닌 나눔의 원칙을 잘 보여주는 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무실에 놓인 저금통의 숫자도 하나 둘 씩 늘어났다. 그에게 세무 상담을 받는 이들에게서 자발적인 성금을 거두는 성금 저금통도 있다. 그 저금통에 모인 돈들은 불우한 가정의 언청이 수술을 후원하는 자금으로 쓰인다.

“사람들은 나눔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난 가진 게 없어서, 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못 한다고들 하죠. 나눔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에요. 누구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게 바로 나눔입니다.”

본업인 세무법인 일과 세무사회 일, 그리고 봉사와 나눔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특강이나 칼럼을 통해 나눔의 리더십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때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의 원칙들이다. ‘지금부터, 나부터, 여기서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 가능한 것부터’가 바로 그 다섯 가지 원칙들이다.

“미래의 크고 거창한 나눔과 기부를 계획해봐야 실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요. 작은 금액이라도 지금부터 당장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나중에 더 여유가 생겼을 때는 더 많이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주변 사람들이 골프를 칠 때 봉사를 다닌 것도, 남들이 술로 스트레스를 풀 때 훗날의 장기기증을 위해 술을 삼간 것도, 개업 축하금이나 세무사회 회장 당선 축하금, 딸아이의 결혼 축의금 등을 각각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한 것도 모두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만의 나눔 방식이기 때문이다.

80여 명 직원들도 한 달 1만 원 씩 ‘나눔’에 동참

조 회장은 불우한 이들을 위한 ‘종합복지타운’을 만들 꿈도 갖고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돌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지체장애인이라든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종합복지타운을 구상 중이에요. 현재 약 15억 정도의 재원이 마련됐는데 한 20억 정도까지만 모아지면 재단을 발족할 예정이에요.”

하지만 나눔과 봉사에 열성적이다 보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많았고, 정치권에 들어오라는 권유도 실제로 많이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 모두가 오랫동안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진정성을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나눔에 동참하려는 이들도 점점 많아졌다. 일례로 세무법인 석성의 80여 명의 직원들은 순전히 자발적인 의지로 ‘일만사랑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조언대로 직원들은 쪽방촌을 비롯한 어려운 이들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회사를 찾는 거래처 사람들 중에도 그에게 동화돼 ‘일만사랑회’에 동참하는 이들이 꽤 많다. 그를 통해 나누는 기쁨에 눈을 떠 기꺼이 그의 나눔과 봉사에 함께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사람은 죽을 때 흔히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해요. 더 많이 참을 걸, 더 많이 즐길 걸, 더 많이 나눌 걸. 나눔을 많이 즐긴다면 적어도 두 가지 후회는 남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나눔을, 나눔의 기쁨을 즐기며 살아가려 합니다.”
[Noblesse Oblige] 나눔의 원칙은 “지금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1. 조용근 회장은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다일공동체(청량리)의 ‘사랑의 밥퍼’ 행사에 동참해 노숙자들과 독거노인에게 직접 배식 봉사를 한다.

2.
조 회장은 지난해 딸의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을 청량리 노숙자 및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시설인 사회복지법인 ‘밥퍼’에 기탁했다. 결과적으로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모두가 이웃돕기 나눔 활동에 참여한 셈이 됐다.

3. 2008년 미얀마에서 태풍으로 학교가 무너져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무사 회원들과 뜻을 모아 2만5000달러를 기증해 ‘사랑의 학교’를 지어주었다. 올해 1월에는 제2호 학교 건립을 지원, 미얀마 양곤의 학생 1600여 명은 이제 태풍 걱정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됐다.


조용근


한국세무사회 회장
석성장학회 회장
세무법인석성 회장
JK미디어그룹 회장
다일공동체(청량리) ‘밥퍼’ 명예본부장

글 김성주(자유기고가)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