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I 송경애 대표

올해 초 결혼 20주년에 즈음해 한 동갑내기 부부가 실천한 나눔이 화제가 됐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아내인 BT&I의 송경애 대표.

결혼기념일, 자신의 생일과 관련된 숫자를 조합해 1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쾌척하면서 그는 1억 원 이상의 기부자들로 이뤄진 ‘아너 소사이어티’의 22번째 회원이 됐다. 일도, 사회를 위한 나눔에도 적극적인 송 대표의 유쾌, 상쾌, 통쾌한 이야기다.
[Noblesse Oblige] 지천명에 실천한 아름다운 ‘소명(召命)’
중학교 때 도미한 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문화를 경험해서일까. 진청색 투피스를 입고 나타난 송경애 BT&I 여행사 대표는 한눈에도 세련된 국제 매너가 몸에 밴 비즈니스 우먼이다.

여행업 한 길을 걸었던 지난 23년간 그가 세운 기록도 여러 가지. 최초의 기업체 전문 여행사인 BT&I를 한국 최초의 코스닥 등록 기업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3년 전 ‘다음(Daum)’에서 설립한 온라인 여행 브랜드인 ‘투어익스프레스’를 전격 인수하며 대기업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여행사 가운데 항공권 판매 기준 매출 순위 톱10 내 자리를 단단히 지켜왔다.

현재 300여 개에 달하는 외국계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확보하고 있는데,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 판매는 자타공인 국내 여행사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모기업인 BT&I를 비롯해 투어익스프레스, 온라인 호텔 예약 사이트인 ‘호텔트리스’와 여행 콘텐츠 제공 사이트인 ‘G트레블러’ 등 현재 그가 이끄는 회사만도 4개사. 직원 수도 180여 명으로 덩치가 커졌다.

승승장구 결실을 맺는 그의 이야기는 늘 화제가 됐다. 그런데 올해 초 그는 또다시 신문 지상에서 회자됐다. 국내 여성 CEO로서는 최초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22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다.

결혼 20주년에 만든 ‘사랑의 이벤트’

“원래는 남편과 함께 쉰 살이 되면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올해 쉰이 됐는데, 핑계 같지만 준비를 해 보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아너 소사이어티’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게 됐는데,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겁니다.

혹시나 하고 사랑의열매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정말로 여성회원이 없다는 거예요. 저라도 시작하면 다른 분들도 하지 않을까 싶어 저희 결혼기념일과 제 생일 등 숫자를 조합해서 기부액을 결정했죠. 저 이후에 회원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미국의 세계적 부호들이 형성한 ‘토크빌 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해 탄생한 ‘아너 소사이어티’의 22번째 회원이자 첫 번째 여성회원이 된 순간이다. 미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에는 워런 버핏, 빌 게이츠를 비롯해 2만여 명의 기부자들이 매년 약 5억 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한국은 공개적으로 ‘아름다운’ 부자(富者)가 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보도가 된 뒤에 정말 많은 곳에서 전화가 왔어요. 한번은 출소를 앞둔 수감자가 연락을 해선 출소 후 사랑하는 여자와 살 집을 마련해 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웃음)

이런 일을 곤란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모두 도와드리지 못해 송구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또 격려를 해 주시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싶죠.”

시쳇말로 오지랖 넓게 타고난 성품 탓에 늘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그는, 그래서 서비스업인 여행업도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전 직원과 함께 떠들썩한 송년회 대신 훈훈한 나눔 봉사활동을, 월급일에 맞춰 직원들의 목돈 굴리기에 일조하고자 펀드 투자를 대행(?)하는 것도 자신이 즐거워서 하는 일.

사내에서 소매가 800원짜리 컵라면을 1000원에 판매해 ‘폭리’를 취하고 있지만, 직원 어느 하나 항의하는 일이 없다. 직원들의 작은 정성이랄 수 있는 수익금은 차곡차곡 쌓여 어린이재단을 통해 북한 아동 돕기에 보내지기 때문이다. 불티나게 라면이 잘 팔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아버지와 함께 편찮으신 어머니를 대신해 자선파티에 자주 갔었죠. 보통 디너가 포함되는데, 1인당 티켓 가격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처음엔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밥을 먹나 싶었는데, 차차 미국 기부문화에 대해 알게 됐죠.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할까요. 보통 ‘성공하면 기부도 해야지’ 하는데, 성공의 정의가 뭔가요. 기부도 연습이 필요해요. 지금,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Noblesse Oblige] 지천명에 실천한 아름다운 ‘소명(召命)’
‘나눔’의 행복에 두 아들도 동참

내가 많이 가진 것보다 나눌 것이 많아 행복하다는 그이지만, 예외가 있으니 두 아들에 대해서만은 대가 없는 ‘기부’가 없다. 미국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아들은 한국에 올 때마다 불편한 장시간 여행을 감수해야 한다. 여행사 대표인 어머니도 소용이 없는 셈이다.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아니죠. 돈을 버는 성인도 아니고, (이코노미와의) 차액이 얼마나 큰데요. 그 금액을 얘기해줬더니 그 다음부터는 업그레이드 얘긴 안하던걸요.

방학 때 집에 오면 교통카드 충전을 제외하곤 하루 용돈은 5000원으로 제한합니다. 서울 압구정동서 친구 만나면 그 돈으론 차도 못 마신다고 불평들 하지만, 경제력이 안 되면 예산에 맞춰야죠. 친구들 사이에 유행하는 청바지를 사달라고 하길래 나중에 돈 벌어서 사 입으라고 했어요. (웃음)”

‘분수’와 ‘학생 신분’이란 두 가지 원칙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어머니라지만, 아들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점도 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어머니의 유별난(?) DNA 덕에 주말에도 쉴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우리 애들이 학교에서 ‘누들 보이스(Noodle Boys)’로 통해요. 주말에 학교에서 한국 컵라면을 팔거든요. 1개에 3달러 50센트에 판다는데, 지난해 여름엔 1000달러를 들고 오더니, 올해는 1700달러를 모아왔어요. 수익금이 아니고 원금이 포함된 금액이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한 아동 돕기를 위해 어린이재단에 기부할 예정이에요.”

얼마 전에는 고객들의 수많은 감사 메일 가운데 아이들 학교 교장선생님의 이메일이 끼어있었다. 모범생인 아들의 성적표에 두어 개의 ‘B’가 있는 이유가 너무 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니 아이를 질책하지 말아달란 부탁의 편지였다. ‘All A’보다 더 값진 ‘B’에 어머니의 가슴은 되레 뿌듯했다.

그 행복에 ‘중독’된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러 미국 가는 비행기에 산만큼 큰 이민가방을 들고 탄다. 가방 속에는 맛 좋기로 유명한 한국 컵라면이 가득 차 있다. 미국에서 자라 봉사활동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치과의사 남편도 미국 세관 통과 때 ‘라면 가방’으로 체면 구겨지는 것쯤은 불사한다. 한국에서 공수해야 원가 절감이 되기 때문이다.

탈북자 치과치료 봉사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남편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봉사활동에 데리고 다녔다. 그 영향 덕인지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 사교육이란 게 없는 작은 섬마을에 가서 그곳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곤 한다. 행복 바이러스에 관한 한 온 가족이, 이 정도면 ‘중증’이다.

“아이들 이름이 ‘앤드루’와 ‘월터’인데 아이들 이니셜을 따서 ‘A&W 재단’이라고 재단 이름까지 지어뒀어요. 언제쯤일지 모르겠지만 평생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죠. 저도 쉰이 될 때 재단을 만들겠다던 목표는 지키지 못했지만 꾸준히 준비 중이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업에서 손을 떼는 순간부터 재단 일에 몰두할 계획입니다.”


송경애

(주)BT&I·투어익스프레스 대표이사
이화여대 경영학과
쉐라톤호텔 워싱턴DC 연회담당 매니저
스탠리 앤드 송(Stanley & Song Inc.) 오너 겸 총 매니저
서울 신라호텔 VIP 코디네이터 & 마케팅 매니저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