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헤어클럽 한기철 사장

“욕심 버리고 내실 다지니 성공이 절로 오네요”
한스헤어클럽 한기철 사장은 1984년 서울 돈암점을 시작으로 강북에 ‘한스 바람’을 일으키고, 그 여세를 몰아 강남으로 진출해 성공가도를 달려온 미용 사업가다.

현재 한스헤어클럽은 두 개의 돈암점과 중계, 노원, 수유, 미아, 대학로, 코엑스, 선릉 등 아홉 개의 직영점을 둔 전문 헤어숍으로 성장했다. 한스헤어클럽을 헤어디자인의 메카로 키운 한 사장을 선릉점에서 만났다.

1980년에 미용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헤어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군대를 제대하고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할 때 음악을 하던 작은 형이 미용 일을 권했어요. 마침 먼 친척분이 이대 근처에서 미용실을 하고 계셔서 어렵지 않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두 살, 철없던 때였죠. 처음엔 ‘돈도 벌고 예쁜 여자들도 원 없이 보겠다’ 싶었습니다.(웃음)”

일이 적성에 맞았나 봅니다. 미용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로는 최고였던 명동 마샬 미용실에 디자이너로 옮긴 걸 보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 있잖아요. 제가 딱 그 경우였어요. 거기 있던 친구를 만나러 갔다 원장님 눈에 띄어 마샬의 헤어디자이너가 된 거죠. 제 외모가 좀 남성적이잖아요. 원장님이 그런 제 이미지에 점수를 후하게 주신 듯해요. 미용기술도 물론 중요했겠지만요.

그땐 마샬 미용실이 대단했어요. 미스코리아 진·선·미를 다 배출할 정도였으니까요. 요즘 잘나가는 박준, 박승철 등이 모두 마샬 출신입니다.”

이철·박승철 씨가 친구 분이시죠. 그분들은 모두 강남에 미용실을 열었는데, 사장님만 강북에서 미용실을 연 이유가 있나요.

“저까지 모두 ‘철’자를 써서, 선배 헤어디자이너인 유지승 씨는 저희 셋을 ‘세 철’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문을 연 곳이 성신여대 부근의 돈암점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 마시러 자주 가던 곳이었어요. 상권이 괜찮더라고요. 마침 전철도 들어서고 해서 미용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제 미용실을 오픈했습니다.”

마샬 미용실 출신의 디자이너였으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겠습니다. 처음부터 사업이 잘 됐나요.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저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자본금이 부족해 외진 곳에 터를 잡은 게 무리수였던 거죠.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오픈 첫 달 매출액이 47만 원이었어요. 당연히 적자였죠. 당시 앞머리를 자르는 데 1000원이었는데, 달랑 1000원을 번 날도 2~3일 됐어요. 아예 공친 날도 3일이나 됐고요.”

“욕심 버리고 내실 다지니 성공이 절로 오네요”
입지 외에 또 다른 패인은 없었나요.


“헤어스튜디오라는 이름을 썼는데, 그것도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됐어요.

스튜디오라는 이름 때문에 사진관으로 오해하는 분도 많았거든요. 문제는 그런 이유로 신규 고객이 생각만큼 들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신규 고객이 없으면 단골도 못 만들잖아요. 기술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오기만 하면 단골로 만들 자신이 있었거든요.

‘하루에 한 명만 오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자리가 외져도 오픈 다음 달부터는 소문이 좀 나서 현상유지는 했어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소를 옮기셨죠. 이전 후에는 매출이 좀 나아졌나요.

“같은 동네이면서 상권이 좀 나은 곳으로 옮겼는데, 이전 매장의 20배 매출이 나왔어요. 사업을 하다 보니 상권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이전 2년 만에 2호점을 열고 노원점도 열게 됐습니다.

노원점은 우연찮게 열게 된 곳인데, 제가 상계동에 살았어요. 직원들하고 노원역 근처에서 회식을 하는데 상권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바로 준비를 해서 노원점을 열었는데 6개월 만에 목표한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강북에서는 ‘한스 바람’을 일으키며 이름을 얻었습니다. 다른 미용실과 차별화된 점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강북이지만 강남에 버금갈 정도로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최고 디자이너와 좋은 자재를 썼어요. 무엇보다 고객의 눈높이보다 한 단계 높은 서비스를 지향했던 게 적중했다고 봅니다. 미용 기술은 물론이고 인테리어, 직원의 몸가짐 등 고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 단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강북의 성공에 이어 5년 전에는 코엑스점을 오픈하며 강남에 진출했습니다. 그 뒤 선릉점을 열었고요.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얘긴가요.

“지금까지 물 흐르듯 사업을 해왔습니다. 꼭 강남으로 진출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요. 강남 진출은 8년 전 강남으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됐습니다. 강남에 살다 보니 강남의 상권, 강남 사람들의 취향과 트렌드 등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런 다음 인터컨티넨탈호텔에 코엑스점을 열었고, 다행히 성공을 거뒀습니다.”

2년 전에 오픈한 선릉점은 1층이 커피전문점이고 2층이 미용실로, 좀 독특한 구조입니다.

“몇 년 전 선릉 앞을 지나는데 이 건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전망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뒀죠. 그러다 2년 전 리모델링을 하고 커피전문점과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1층은 간단한 음식을 팔고 2층은 헤어숍으로 쓰고 있는데,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9호점까지 실패한 곳이 한 곳도 없는데 비결이라도 있나요.

“10개 가까이 직영점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몇 됩니다. 그 친구들이 그래요. ‘10개를 열면 한두 개는 실패하는데, 너는 복도 많다’고요. 행운도 따랐겠지만 무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안에서 잘 하자’는 신념이 지금의 성공을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안에서 잘 하자’라는 게 일종의 경영철학 같은 거네요.

“그렇죠. 강남에서 미용실을 연 친구들이 매스컴을 타고 유명세를 타는 동안 저는 내실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했어요. 미용실 내에서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도 직원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자주 해요.”

이 정도 성공이면 프랜차이즈 욕심도 낼만 한데요.

“강북에서 유명해진 다음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한스라는 이름만 달면 다 잘 될 줄 알고 찾아왔는데,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제 직영점 9개도 관리하기 힘든데, 프랜차이즈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미용실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강남에 또 다른 헤어숍을 여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50개점을 하겠다, 100개점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목표를 위해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부채 없이 헤어숍을 운영한다는 철칙을 지킬 겁니다. 제가 미용인이니까 돈을 벌면 또 다른 헤어숍을 열 생각입니다. 현재로선 연말이나 내년 초 강남에 직영점을 하나 더 오픈할 계획입니다.”

글 신규섭·사진 김기남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