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출구전략이 마련됐다고 해서 곧바로 추진한다면 더 큰 화(禍)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월가의 시각이다. 이제 막 회복의 ‘싹이 돋는 단계(green shoots)’에서 한 나라 경제의 거름에 해당하는 돈을 거둬들일 겨우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1930년대의 세계경제 대공황, 1980년대의 미국경제 스태그플레이션, 1990년대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들고 있다.
출구전략 추진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기준이 있으나 전기비와 전년 동기비로 산출되는 성장률이 2분기 연속 ‘플러스’로 돌아서고 그 수준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할 때를 택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경우도 인플레와 자산부문의 거품이 우려될 때이다.
앞으로 출구전략을 추진할 경우 기준금리를 곧바로 올리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통화정책에 있어서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것은 급진적인 정책에 해당한다. 경제주체들이 처한 개개의 사정과 책임에 관계없이 기준금리를 변경할 경우 경제 전반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규모 금융위기 이후 거론되는 출구전략은 과잉 유동성에 따른 인플레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낄 거품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보통 때처럼 경기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는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배경에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각국이 처한 여건과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단계별 출구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월가의 시각이다. 우선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 요인 등과 같은 위기대책과 관계없이 출구전략을 빨리 가져가게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착시적인 여건부터 걷어낼 것을 권한다.
그 후 계속해서 인플레와 자산시장에 거품이 우려된다면 이 단계에서는 기준금리를 올리기보다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이나 ‘리버스 오퍼레이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한다. 공개시장조작을 할 때 장기채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내려 기업의 설비투자 증대 등을 통한 실물경기 회복과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해 나가돼, 그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단기채를 매도해 흡수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구전략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그 때가서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할 것을 권한다.
참고로 미국처럼 금리체계가 잘 잡혀 있는 국가에서는 기준금리를, 중국처럼 은행 위주의 금융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지준율을 올리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각국이 이행하는 출구전략이 왜 차이가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 것인가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해되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출구전략이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이라는 본질은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출구전략과 함께 소위 ‘볼커 룰’로 상징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형은행 규제발언 이후 월가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인과 금융인 사이에서는 ‘대차대조표 경기변동이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 이론은 일본 노무라연구소의 수석경제학자인 리처드 구가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대차대조표 상황을 감안해 경기와 증시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즉, 금융사들의 대차대조표가 너무 취약하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자금을 공급해도 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이 줄어 들게 돼 경기와 증시는 침체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이 이론이 갑자기 다시 부각되는 것은 오바마의 대형은행에 대한 규제내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기 과정에서 비중이 더욱 높아진 대형은행이 본래 목적을 충실히 기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예금만 운영하고 자기자본이나 타인자본을 빌려 투자하는 ‘자기자본 거래’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설립과 지원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물경제에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형은행의 대차대조표를 건실하게 하게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종전처럼 자기자본 거래로 고수익을 추구하다 대형은행들이 다시 어려워지면 자기책임의 원칙대로 방치하지 못하고 대신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어 국민들의 혈세로 부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대형은행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 일은 여러 해가 걸린다. 이 때문에 이번 위기처럼 대차대조표가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없을 경우 초기 정책당국의 구제책으로 안정을 찾았던 금융시장과 경기가 다시 불안해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정책당국이 나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고통이 따르지 않는 대안은 없다. 이 과정에서 재정수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각종 거품과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다. 지난해 여름 휴가철 이후 금융시장과 경기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마자 출구전략 논쟁이 심해지고, 곧바로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을 비롯한 각국의 재정적자에 따른 신용등급 위험이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고 실물경기를 안정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의 규제안을 통해 오래 걸리는 대형은행들의 대차대조표 개선을 조기에 앞당겨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을 강화할 경우 정책당국의 극약처방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한 금융시장과 실물경기를 더 근본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 고리가 형성돼야 올해 경기와 주가 향방에 대해 월가가 가장 주목해서 바라보고 있는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즉 구조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 현상을 ‘밴드 왜건 효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올해 경기와 주가가 계속 상승하기 위해서는 위기 이후 국가에 의해 주도돼온 경기가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이행돼야 한다. 또 정책요인에 의해 유동성을 더 이상 공급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는 그동안 퇴장됐던 통화가 시중으로 방출돼 증시로 유입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 투자심리 면에서는 위기극복 초기 때 위험자산 투자에 선두에 섰던 스마트 머니에 이어 일반 투자자들까지 가담해야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불균형 심화에 따른 통상마찰 리스크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대에 따른 소버린 리스크 △정책전환에 따른 출구전략 리스크 △달러캐리자금 이탈 리스크 △금융사 추가 부실리스크 △과도한 가계부채 리스크 △고용불안에 따른 휴먼 리세션 리스크 등 그동안 우려해 오던 글로벌 증시의 7대 리스크들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리스크를 평가해 보면 현재로서는 세계경기의 ‘더블 딥’과 ‘증시의 흐름’을 꺾어놓을 만한 높은 위험은 적다. 하지만 갈수록 심리가 경기와 증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모바일 등을 통해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네트워킹 효과’를 감안하면 두바이 쇼크나 유럽발 재정위험처럼 투자자들이 실제 현실보다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중국의 긴축과 미국의 대형은행 규제, 유럽의 재정위기 등 소위 G3 문제가 불거지자 고용증가 등과 같은 올해 경기와 주가 상승에 필요한 3대 구조전환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찾기에 부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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