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중세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가 식사에 부여한 신성한 의미에 주목해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리스도가 행한 최후의 만찬이 죄를 용서받고 육신의 부활을 보장받는 절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식사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음식에 옷을 입히는 스푼과 포크, 나이프 등의 오브제들은 주요 컬렉션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커틀러리 앤티크 제품들은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발전할수록 그 가치가 상승한다.백정림 씨는 국내에 흔하지 않은 커틀러리 컬렉터이다. 그녀에게 커틀러리는 단순히 진열장에 보관된 죽은 물건이 아닌, 정성을 들이고 교감을 나누는 대상이다.“촬영을 위해 식탁을 차린 김에 친구들을 불러서 식사를 했어요.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이렇게 차려놓고 집으로 초대해서 먹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주변 분들도 다들 좋아 하시고요.특히 저희 남편이 좋아해요.”어릴 때부터 컬렉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처음에는 한국 고유의 앤티크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의 앤티크 컬렉션은 인사동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예스럽고 모던한 감각의 여성용 장신구나 키친웨어에 끌렸다.실생활에도 쓸 수 있는 주방용품이 특히 좋았다. 외식을 거의 않는 그녀에게 주방용품은 음식과 함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주요 아이템이었다. 그러다 서양의 키친웨어, 그 중에서도 포크, 나이프 등의 커틀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해외여행에서 한 두 개 작품을 사게 되면서부터다.“우리 고유의 식기라야 놋그릇이 전부잖아요. 그런데 외국에는 정말 좋은 것들이 많더라고요. 주로 실버제품들인데, 크기도 적당하고 실생활에 쓸 수 있어서 더 좋았죠. 너무 큰 앤티크 작품은 살림하는 주부의 입장에서 짐스러울 수 있거든요. 주방용품은 그렇지 않잖아요.”처음에는 보석 가게에서 파는 포크와 나이프를 눈여겨봤다. 그러나 가게에서 파는 제품들은 가격도 비싸고, 해외 앤티크 가게에서 보던 것보다 못했다. 때마침 영국에 살던 지인이 앤티크 제품을 소개했고, 그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컬렉션에 나서게 되었다.앤티크에 대한 공부도 짬짬이 했다. 앤티크 강의도 듣고 인터넷을 통해 앤티크와 관련한 자료도 모았다. 커틀러리의 이력이 새겨진 홀마크며, 오디엇트 같은 실버스미스도 그때 알았다. 앤티크에 눈을 뜨면서 초기에 구입한 제품들은 분양을 하기도 했다.“외국에 나가면 일부러 앤티크 숍에 들렀어요. 한번은 일정이 무척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어요. 점심을 먹으러 중국식당에 가는데, 근처에 앤티크 숍이 있더라고요. 점심을 굶고 거길 갔죠. 마침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어서 30분쯤 고민하다 샀죠. 그걸 사고 얼마나 만족스럽던지….”요즘은 해외에서 직접 구매할 때보다 인터넷 경매를 통해 제품을 살 때가 많다. 그녀는 제품을 고르고 경매에 나서는 모든 과정을 즐긴다. 제품을 사고 한국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다. 제품을 받으면 확대경으로 하루 종일 제품을 보며 “어쩜 이렇게 세밀하게 새겼을까?” 혼자 감동하기도 한다.물론 아쉬운 때도 적지 않았다. 운반하는 과정에서 제품에 손상이 가거나, 일부를 잃어버렸을 때는 손을 베인 것처럼 아프다.“전체 제품이 148피스인 걸 샀어요. 그런데 받아보니까 147피스인 거예요. 제 짐작으로는 세관에서 검사하다 하나가 분실된 것 같은데, 그걸 세관에 얘기하기도 뭣하잖아요. 그분들이야 제품의 가치를 모를 테니까요.”정말 사고 싶은 제품을 놓칠 때의 아쉬움도 크다. 프랑스의 실버 스미스 오디어트(Odiot)의 제품을 놓쳤을 때가 대표적이다. 360피스로 구성된 제품이었다. 평소에도 꼭 소장하고 싶던 제품이어서 거래가 이루어질 뻔했다. 그러나 거래 막바지에 다른 구매자가 나타나 아깝게 놓쳤다.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컬렉션에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 했다.크리스토플의 티포트를 놓친 것도 뼈아픈 기억이다. 달 항아리 모양의 제품이었는데, 이런 제품들은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다시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크다.언젠가는 좋아하는 오디오트나 피포켓의 작품을 갖고 싶다는 그녀. 그녀는 앤티크 컬렉션의 가장 큰 매력으로 실생활에 쓸 수 있고, 세월이 갈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 점을 들었다. 그렇다고 재테크적인 측면에서 앤티크가 부각되는 것은 경계했다. 재테크는 부차적인 것일 뿐, 우선은 컬렉터 자신이 제품을 아끼고 교감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앤티크에 대한 공부도 뒤따라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잖은가. 공부를 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다고 했다.“어떤 일이건 10년 이상은 해봐야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컬렉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고 직접 만져보고, 구입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거든요. 저도 아직은 공부하는 단계고요.”그녀에게 앤티크 컬렉션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복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유가 없으면 남들에게도 팍팍해 지더라며 스스로를 경계했다. 그런 의미에서 컬렉션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삶의 여유를 선사한다.“컬렉션의 가장 큰 매력이요? 아마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아닐까요. 우리 주변에는 이미 정해진 것들이 대부분이고 바꿀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컬렉션은 가능해요. 매번 새로운 것을 만나고 혼자 즐길 수 있잖아요.”글 신규섭·사진 서범세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