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a Market

유러피언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고급문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명품문화를 이끌면서 트렌드세터로서의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의 감독들은 촬영할 때 세트가 필요 없으므로 유럽에서 영화 찍기를 선호한다. 앵글을 들이대면 모두가 훌륭한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파리, 로마, 런던, 밀라노, 브뤼셀 같은 유럽의 도시들은 여행자의 천국처럼 보인다. 프랑스 인구가 5000만 명이 좀 넘는데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약 7000만 명이라고 하니 가히 여행자들의 나라가 아닌가.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유럽은 양파껍질과 같아서 벗겨 볼수록 감칠맛이 나는 매력을 지녔다. 껍질을 벗기는 기술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양파의 속을 들여다 볼 생각이라면 그 껍질을 벗기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니 사전에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하고 지식도 요구된다. 특히 역사와 문예사조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혹은 네오 클래식으로 분류가 가능한 시대사조의 키워드도 중요하지만 빈티지와 앤티크에 대한 지식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유러피언들이 즐기면서 살고 있는 모든 키워드는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그 가운데서도 유럽인들이 가장 몰리는 곳이면서도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곳을 찾는다면 벼룩시장을 꼽을 수 있다. 파리의 유명한 생뚜앙 벼룩시장 한 곳에만 지난 한해 약 13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다녀갔다고 한다. 그것도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에서라면 도대체 거기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일까.우리에게 낯선 이 문화적 현상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뜻한다. 관광 상품을 취급하는 곳도 아니고 카지노 호텔이나 유흥업소가 밀집한 곳도 아니면서도 그 무엇이 이곳을 다녀온 이들을 지속적으로 다시 불러 모으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오늘의 벼룩시장은 단순히 시장이 아니다. 그 안에 문화와 예술까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지식의 공원이다. 예를 들면 유럽 어디엘 가보더라도 그러하지만 영화 ‘노팅 힐’의 현장인 포토벨로에도 주말이면 새벽부터 수많은 인파가 발 디딜 틈을 주지 않고 밀려간다. 왜 그렇게 많은 인파가 그곳으로 몰려가는 것일까. 그곳뿐만 아니다. 좀 역사가 있는 지방 동네에서도 벼룩시장은 축제의 현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백만 명이 매년 유럽을 여행한다. 그러나 벼룩시장을 즐기는 여행객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벼룩시장은 벼룩이 튀는 구닥다리 물건을 파는 시장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 벼룩시장에서 벼룩 찾는 일은 쉽지 않아도 그 정신만은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실제 서유럽의 여행자들은 어렵지 않게 헌옷가지와 허접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는 삶의 잔해를 거래하는 시장을 곳곳에서 만난다. 그런데 간혹 그곳에서는 아주 귀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 발견된다고 해서 뉴스거리로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한국 사람이 영국의 벼룩시장에서 산 우표 한 장이 1억 원을 호가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그렇다면 과연 벼룩시장에서 이런 것들을 누가 팔고 사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아주 세분화된 시장 시스템이 정교하게 자리하고 있다.오히려 벼룩시장이라기보다는 보물찾기 공원이라고 해야 맞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벼룩시장을 돌아보면서 돈은 싸게 지불하고, 아니 거저에 가까운 돈을 주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건져볼 강태공의 심정으로 그곳에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벼룩시장은 이제 여행자에게 필수 코스가 되어 있으며 여행자를 안내하는 각종 책자에도 올라 있다.불황(不況)이라는 말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단어로서 감원이나 실업자라는 뜻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 단어는 주기적으로 뉴스에 나타나서 서민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세계가 불황에 빠져도 꿈쩍 않는 경제특구가 있으니 이곳은 다름 아닌 유럽의 벼룩시장들이다. 아니 오히려 불황의 시기에 더 활황(活況)이다. 우리도 IMF 구제 금융사태가 발생하자 느닷없이 여의도에 쓰던 물건을 팔고 사는 거대한 포럼이 나타났다. 그리고 아나바다 운동을 전재하고 벼룩시장이 간헐적으로 등장하였다. 물론 언론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벤트이긴 하지만.그러나 유럽의 벼룩시장들이 언제나 호황을 유지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 분야를 산업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대규모의 기계를 설치하고 굉음을 내며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 곳만을 산업현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의 메카로서 국제거래의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럽의 벼룩시장은 거대한 산업분야로 자리잡아 온 지 오래다.만약 우리가 벼룩시장을 지역마다 잘 키워낼 수 있는 저력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일자리와 함께 창업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신산업을 일구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재건축 아파트를 가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는 쓰다가 버리고 간 많은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도 쓰기에 충분한 전자제품, 장난감, 가구 등이 그대로 섞여 있었다. 사실 나는 내 아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여 내 아내는 모자와 거울과 같은 괜찮은 물건을 건졌으며 나도 읽을 만한 책 몇 권을 가져왔다.유럽의 벼룩시장에 가보면 온갖 쓰레기 같은 물건들부터 고급스러운 중고품까지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쓰레기와 버금갈 만한 하찮은 물건들도 누군가 필요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시장은 출발한 것이다. 파리의 벼룩시장 역사만 뒤져보더라도 처음에는 넝마주이들이 성곽주변 공터에서 자신들이 주워온 물건들을 펼쳐놓자 구입자들이 나타났으며 자연스레 시장의 형태로 생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연 누가 쓰레기를 사겠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면 벼룩시장은 근본적으로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비단 가재도구와 옷가지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뜯겨졌을 때도 폐자재를 거래하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쓰레기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 의해 재분배 되는 것이다. 좋은 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렁이를 키워 기름진 흙으로 환원시키듯이 벼룩시장은 문화 환경의 산성화를 개선하는 지렁이인 것이다.우리는 산업화 사회를 거치며 기계적 대응만이 모든 수단에 우선된다는 사고를 가지고 사회를 운영해온 측면이 있다. 환경문제 역시 기계적 대응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모든 사회적 갈등이 문화적 해석을 낳고 있듯이 환경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장 경제와 문화적 대응이라는 전환을 가져 와야 할 시점이 아닐까한다. 그러다면 유러피언드림이 회자되는 즈음에 그 꿈의 산실 벼룩시장엘 가보시라.1. 온갖 실버제품을 취급하는 좌판이다.2. 런던 포토벨로에서 팔리는 빈티지 키와 잡다한 도구들이다.3. 개가 양을 지키는 것처럼 물건을 지키도록 하고 주인은 ‘5euro’라고 쓴 팻말을 놓고 사라졌다.4. 파리의 주말 시장으로 유명한 방브.5. 와인 액세서리를 잔뜩 펼쳐놓았다.6. 거리의 악사를 빼놓을 수 없다. 붐비는 장터에서 멋진 연주를 들려준다.7. 온갖 칼을 취급하는 이 좌판에서는 아주 가끔 목을 쳤다는 칼도 나타난다.8. 북적거리는 포토벨로의 토요일 오전 풍경.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