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플랜트 시장의 선봉…삼성엔지니어링

설주는 올 들어 재미를 크게 못 본 업종 중 하나다. 코스피지수가 10월 말까지 40.5% 상승하는 동안 유가증권 시장의 건설업종 지수는 31.7% 오르는 데 그쳐 시장 평균보다 부진한 움직임을 보였다. 올해 증시를 쥐락펴락했던 외국인이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수출주 위주로 주식을 사들인 탓에 건설주와 같은 내수주들은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하지만 9월 하순 이후 증시가 뚜렷한 조정 양상을 보이면서 건설주의 상대적인 선전이 주목받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9월 고점을 찍고 11월초까지 9%가량 하락했지만 건설주는 지난 8월 초 수준을 지키며 반등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일부 종목들은 10월 이후 약세장에서도 주가가 10% 이상 오르면서 연말 대안주로 떠오르고 있다.건설주 강세는 우려했던 미분양이 감소세로 돌아서자 업황이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덕분이다. 환율이 예상보다 빨리 떨어지면서 수출주에서 내수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이동한 효과도 봤다. 특히 건설주는 해외에서의 수주 실적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해외 사업에 강한 회사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건설업종 내에서 해외 모멘텀이 가장 강력한 종목 중 하나다. 이 회사는 석유화학 정유 등 화공 플랜트와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산업플랜트, 수처리 대기오염방지시설 등 환경 인프라 등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국토해양부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말까지 해외건설 공사 수주액은 계약 신고분 기준으로 총 323억 달러(약 37조8000억 원)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3년 연속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같은 해외수주 행진의 선봉에 서 있는 회사가 삼성엔지니어링이다. 10월 말까지 이 회사는 48억2000만 달러(약 5조64000억 원)를 수주해 현대건설(41억3000만 달러) GS건설(31억2000만 달러) 등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특히 중동 지역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잇달아 대규모 플랜트 공사를 따내며 ‘수주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말에는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석유회사인 애드녹(ADNOC) 계열 퍼틸사로부터 약 12억 달러 규모의 비료 생산설비 공사를 수주했다. 이 설비는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50㎞ 떨어진 르와이스 지역에 건설된다. 화학비료의 주원료인 암모니아와 질소비료인 요소를 하루 2000t과 3500t씩 생산할 수 있는 설비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3년 1월까지 설계 조달 시공 시운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일괄적으로 맡는 ‘턴키방식’으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이에 앞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세계 최대 암모니아 관련 기술보유 기업인 독일 우데(Uhde)사와 12억 달러 규모의 비료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지난 7월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사빅 계열사인 NIGC사로부터 3억 달러 규모의 가스플랜트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변성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수주 호조로 연초에 세웠던 연간 7조 원의 수주 목표를 초과달성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평가했다.해외 시장에서 이 회사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높은 신뢰와 기술력 덕분이란 설명이다. 윤진일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2003년 이후 40여개의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한 번도 공사기일을 넘기거나 품질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공사기한 준수,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 장기간 함께 사업을 하며 중동의 발주처로부터 쌓은 신뢰 등으로 경쟁사인 유럽과 일본 업체들에 비해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윤 연구원은 “이 회사는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 집중됐던 사업을 알제리 UAE 멕시코 등 신규시장으로 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며 “이미 충분한 경쟁력과 실적을 구축한 석유화학 프로젝트 외에 정유와 가스 플랜트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지난 9월 28% 급등한 이후 상승폭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7조 원을 넘는 신규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9월부터 주가에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향후 주가 흐름은 내년 실적에 달려있다는 평가다.허문욱 KB투자증권 이사는 “2010년 주택건설 경기가 아직 불확실하고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을 둘러싼 우려감 등을 감안하면 해외 모멘텀이 강력한 삼성엔지니어링이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허 이사는 이 회사의 투자 포인트로 △화공플랜트 업황의 호조로 2009∼2013년간 연평균 수주증가율이 19.2%에 달하는 점 △지역과 사업분야 다각화 △올해 1인당 매출이 9억7000만 원으로 글로벌 일류회사에 근접한 점 △1조 원에 달하는 순현금과 우발채무가 전혀 없다는 점 등을 꼽았다. 허 이사는 “과거 삼성엔지니어링은 신규수주 실적에 따라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단기적인 수주 모멘텀보다 중장기적인 예상이익이 주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삼성엔지니어링은 건설업종 내에서 고평가된 종목 중 하나다. 올해와 내년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5.9배와 4.5배로 대형 건설사 평균(1.5배)을 크게 웃돈다. 하지만 주가가 랠리를 펼쳤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평균 PBR는 3.7배로 현 수준이 고평가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신규수주 증가세를 감안하면 성장주로서의 밸류에이션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유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이 회사에 긍정적이다. 노무라증권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수주와 매출 대부분이 중동 지역의 원유와 가스, 석유화학 플랜트 프로젝트로부터 나오는 까닭에 고유가는 이 회사의 주가 동력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은 지난 2007년 삼성엔지니어링이 랠리를 펼칠 때 유가와 주가의 상관계수가 0.93으로 높았는데 최근에도 0.89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유가 반등의 결과 내년까지 중동 지역에서 프로젝트 발주가 활발할 것이란 설명이다.삼성엔지니어링은 연말 배당주 투자 대상으로도 매력이 크다. 이 회사는 지난해 주당 150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순이익 중 총 배당금 비중인 배당성향이 30%에 달해 건설업종 중 최고 수준이다.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단기적 관점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삼성엔지니어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상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 주가가 단기간에 한 단계 더 오르려면 전 세계 화공플랜트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수주실적이 매년 300억 달러 이상을 유지하면서 삼성엔지니어링의 시장 점유율이 30%대를 유지해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주가가 9월 이후 빠르게 상승한 만큼 기간조정을 거친 후 재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한다는 것이다.반면 조주형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수주 정체에 따른 성장성 둔화에 대한 일각의 우려는 지나친 점이 있다”며 “신규수주 증가와 실적개선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내년에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의 가스공사 등 초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총 4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신규수주는 올해보다 13% 늘어난 8조 원대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주요 증권사가 제시한 목표주가는 14만∼15만 원대 수준이다.박해영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bono@hankyung.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