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박영석 대장

악인 박영석은 산에서 뿐 아니라 평지에서도 바빴다. 월곡동 세계탐험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회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도 그는 검은 모자와 등산복 차림이었다.간단한 인사 후 그는 자신의 사진이 인쇄된 명함을 내밀었다. 반으로 접힌 명함 안쪽에서 그의 등반 이력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남극, 북극, 에베레스트 등 3극점의 이름이 고도와 함께 나란히 기록되어 있었다.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먼저 대장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산악인 박영석 하면, 가장 친숙한 단어가 대장이다. 스물여섯에 최연소 히말라야 원정대장을 맡은 이래 지금까지 그는 박 대장으로 불려왔다. 그는 하도 오래 듣다보니 이제는 ‘박영석’보다 ‘박 대장’으로 불리는 게 더 친숙하다고 했다.6월에는 희망찾기 등반대회에 참여했고, 7월에는 대학생 96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희망 원정대를 이끌었습니다. 등반이 없을 때는 주로 행사에 참석하고, 다음 등반을 준비합니다.요.2004년부터 독거노인, 불우청소년 등 12가정을 돕고 있는데 소외계층을 위한 이런 활동은 계속 할 생각입니다. 등반을 하려면 돈과 노력이 많이 듭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는 돌려드려야죠.에베레스트 같은 산은 입산료만 약 7만 달러입니다. 산의 높이, 원정대의 규모 등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 등반하는 데 2억5000만 원 정도 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 방송사가 동행하면 4억~5억 원으로 비용이 불어납니다.예전에는 거의 네팔에서 살았으니까요. 90년부터 네팔에서 식당과 롯지를 경영하고 있어요. 운영은 20년된 현지 친구가 하고 있는데, 직원만 20여 명 됩니다. 돈이 되는 건 아니고 거기 있는 친구들이 그걸 기반으로 살고 있죠. 네팔 초등학교에 컴퓨터 보급하는 일, 의료 서비스를 못 받는 곳에 보건소를 세우는 일 등 네팔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특히 현지 셀파를 비롯해 산악인 유가족을 돕는 일도 하고 있고, 더 확대할 계획입니다.네팔은 에베레스트가 있어서 그에게 특별한 나라다. 에베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위험한 산이다. 많은 대원을 에베레스트에서 잃었고, 그 또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에게 가장 힘들고 아픈 기억을 안겨준 곳이다.하기야 그가 탐험했던 곳 중에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남극, 북극 등 그가 탐험한 곳은 인간에게 경외심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의 원정대는 늘 사선을 넘나드는 극한에 서 있었다.지금까지 많은 동료들을 산에서 잃었다. 매번 위험 앞에 서는 그 또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위험은 두렵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렵지 않냐?”는 우문에 그는 “자다가 침대에서 죽을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오늘 아침에 나오는데 건물 간판이 보이더라고요. 그게 떨어질까 봐 살짝 겁이 나던데요.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하는 생각 말이죠. 탐험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예측하고 대비를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산악인들에서 등반 도중 사고를 당한다. 그의 말마따나 그 또한 수많은 사선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 많은 탐험지 중 그는 가장 위험한 곳으로 히말라야를 꼽았다.그는 처음 히말라야 앞에 섰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거대하다. 그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압도되고 만다. 히말라야에 오르다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닫게 된다. 해발고도 5000m를 넘으면 그곳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그는 그곳에 오르는 횟수가 늘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산에 대한 무서움도 커지고, 한없이 겸손해진다고 경외의 눈빛으로 말했다.히말라야가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면 북극은 가장 힘든 탐험지였다. 북극은 남극, 에베레스트와 함께 3극지 중 하나. 처음 북극 도전에서 그는 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만 다시 북극에 도전해야 한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다.“북극에 비하면 남극은 아무 것도 아니예요. 지옥이 있다면 아마 그런 곳일 겁니다. 실패하고 내려오면서 ‘여길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하더라고요. 성공했을 때는 ‘이제 다시 안 와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 놓이더라고요.”북극 원정처럼 그는 끊임없이 도전에 나섰다. 예전에는 1년에 2~3번의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매 원정이 그에게는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경우와 정상에 올랐지만 자기가 가진 에너지의 60~70%만 쓴 경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는 전자를 선택할 거라고 했다. 최선을 다할 때라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체력훈련을 따로 하지는 않습니다. 대원으로 선발될 정도면 체력관리는 자기가 해야죠. 저는 대원을 선발할 때 그런 것보다 인간성을 더 중시합니다. 선배는 후배에게 아낌없이 주고, 후배는 선배를 무조건 믿으라고 합니다.어떤 상황에서 저는 대원들 얘기를 다 듣습니다. 모든 대원들의 말을 경청하기만 최종 결론은 제가 내립니다. 지금까지 대원중에 제 결정에 토를 단 적이 없습니다.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실제로 대원들 사이에 의견이 맞지 않아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눈사태가 나면 일반인들이라면 두려움에 가만히 서서 그대로 당하고 말 겁니다. 이때 원정대장의 능력에 따라 전 대원이 살 수도, 전 대원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등반의 성패는 둘째 문제입니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합니다. 사전 준비도 하고 현지에 가서 항공촬영도 해요. 그래도 숨어있는 위험은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산날씨는 예측이 불가능해요. 단말기로 매시간 일기를 체크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그럴 때는 구름의 모양, 바람의 냄새 등 동물적인 감각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거죠. 가끔 제 눈을 보고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 자주 부딪혀서 그렇습니다.무엇보다 리더는 자기를 희생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장한테 목숨을 맡기는데 대장이 자기만 챙기면 누가 신뢰를 하겠습니까. 또 하나, 대원들한테 비전을 줘야죠. 열심히 하면 저처럼 월급쟁이 하면서 좋아하는 산 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죠.원정에서는 덕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독재자에 가까운 맹장이 되어야죠. 순간적인 판단에 사람의 죽고 사는데요. 현장에서는 맹장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그는 과업 같던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후부터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말 원하는 산을 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올 초 에베레스트에 코리안 루트를 뚫은 것도 오래된 숙원이었다. 내년 3월에는 안나푸르나 남벽에 새 길을 뚫기 위해 또 다른 원정에 나선다.“제가 가장 무서운 건 눈사태도 낙석도, 히든 크레바스도 아닙니다. 바로 제 자신이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간이잖아요. 언제 제 자신과 타협해 포기할지,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등반은, 아니 인생 자체가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박영석 대장을 만나면서 이 명제가 가슴 깊이 와 닿았다.글 신규섭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