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세계에서 르네상스 회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본래 미술관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메디치가의 코시모가 피렌체 공화국의 행정관리들을 자신의 통치 하에 두고자 지은 건물에서 시작되었다.당시로선 혁신적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에 메디치가가 수집한 소장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다. 그 이후 메디치가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피렌체 문화, 예술에 깊이 관여하지만 1737년 가문의 맥이 끊어진다.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 공은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들을 공익을 위해 국가에 기증함으로써 소장품들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우피치 미술관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이 작품의 모델 시모네타 베스푸치라는 15세기 피렌체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봄>의 모델이기도 하다.비너스가 화면 중앙 조개껍질 위에 서 있는 것은 비너스가 바다의 물거품에서 탄생했다는 고대 로마 신화에 따른 것으로 장미꽃 역시 비너스를 상징한다.보티첼리는 고대 시인 호메로스의 비너스의 탄생에 대한 찬가에 감명을 받아 탄생 후에 키티라 섬에 도착한 여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또한 보티첼리는 고대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비너스의 자세를 정숙하게 표현했다.화면 왼쪽에는 미풍 아우라에게 단단히 끌어안긴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날아오고 있다. 그 두 사람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해변으로 불어 보내려 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계절의 여신 호라 중 하나가 해변에서 비너스를 맞으며 그녀를 위해 옷을 펼쳐들고 있다. 호라의 옷을 장식하고 있는 꽃은 그녀가 봄의 여신임을 알려주고 있다.산드로 보티첼리(1446∼1510)의 이 작품은 메디치 가문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1480년대 중반에 완성되었으며 16세기 초부터 <봄>과 함께 메디치 가문의 시골별장에 걸렸다.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 가운데 트립티크는 우리나라의 병풍과 같은 형식으로 그림과 그림 사이에 경첩을 달아 열고 닫을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트립티크는 중앙에는 성서의 내용을, 양쪽은 의뢰인을 그려 넣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다.우피치 미술관에서 트립티크 중 종교화지만 당시 시대상을 표현한 작품이 후스의 <포르티나리 트립티크>이다. 이 작품은 부유한 이탈리아 사업가이자 메디치 가문의 대리인이었던 포르티나리가 가족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의뢰한 것이다.중앙 패널에 목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모와 요셉 그리고 천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그 뒤로 다윗왕의 왕궁이 보인다. 아기 예수가 구유가 아닌 땅바닥에 누워 있고 천사들이 무릎을 꿇고 에워싸고 있는 것은 스웨덴의 성녀 브리지타의 환시에서 본 내용을 기초로 했기 때문이다.하단의 옥수수단은 예수가 빵을 쪼개 나누어주신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며 두 개 화병에 있는 백합, 7송이 참매발톱꽃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7송이 참매발톱꽃은 이집트로의 피난과 예수 십자가 수난 등 성모의 7가지 통고를 상징한다.예수가 눕혀져 있는 바닥이 높은 것은 당시 공연되었던 종교극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것이다. 중세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도 복음서나 예수 기적을 다룬 종교극이 평범한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왼쪽 패널에는 수호성인과 함께 포르티나리와 두 아들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패널은 수호성녀와 포르티나리의 아내와 딸이 그려져 있다.후고 반 데르 후스(1440∼1481)의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 패널의 목동들이다. 우락부락한 몸과 검게 그을린 피부는 노동자라는 것을 나타내며 후스는 고향에서 노민극과 신비극에서 영감을 얻어 인물들을 소박하게 표현했다.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 액막이용으로 제작된 작품이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다. 이 작품은 메디치가의 대리인이었던 젤 몬테 추기경이 의식용 방패로 쓰기 위해 의뢰했다.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메두사는 거울이 달린 방패를 이용해 메두사와 직접 시선이 부딪치는 것을 피한 페르세우스 손에 죽었다. 머리가 잘린 메두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돌로 변했다.머리가 잘린 메두사의 입은 고통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커다랗게 뜨고 있는 눈과 찡그리고 있는 눈썹은 죽음의 충격을 나타낸다. 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는 메두사의 격앙된 표정으로 삶과 죽음의 결합을 강조했다.메두사의 얼굴은 카라바조의 자화상으로 메두사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방식으로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을 그렸다.카라바조(1573∼1610)는 이 작품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가 잘린 메두사를 그렸지만 메두사는 의식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또한 시선을 정면으로 두지 않은 것은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사람들이 돌로 변한다는 신화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불룩한 방패의 표면은 들어가게 표현하고 메두사의 머리는 밖으로 튀어나오게 입체적으로 표현해 미술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