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 예술가 김정운

의 인용문은 ‘왜 사람들은 늘 여행을 꿈꾸는가’에 대한 가장 명확한 답변이지 싶다. 여행지는 일탈의 장소이자 자유의 세계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가 김정운, 그 또한 여행을 계기로 현재와 같은 작업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다양한 소품을 캔버스 삼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하는 작품의 주제는 ‘소외’와 ‘이방인’이다.대학교 2학년 때 본 중국 화가 장자오훠의 작품은 충격적이었다. 갈필로 한 번 쓱 그은 선이 노인의 눈썹이 되고, 얼굴에 먹물 방울 떨어뜨린 그 자체가 노인 얼굴에 핀 저승꽃이 되었던 것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실적인 그림은 경지에 도달한 이만이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을 노력한들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술의 연마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을 그런 작품이었다. 반면 서양식 사실주의는 이와는 다르다. 여러 차례 붓 칠을 중첩해서 실재처럼 그리는 방식으로 손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사진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전자처럼은 못 될 것 같았고 후자처럼 그리는 사실주의는 싫었다.그런데 1990년대 말, 러시아 여행 중 새로운 사실주의 기법을 만나게 되었다. 이른바 러시아 리얼리즘은 붓 자국이 느껴지면서도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색을 안 입힌 부분도 있고, 붓 칠을 막 해놓은 것 같아 뭔가 싶기도 하지만 뒤로 몇 발짝 걸어서 작품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분명 노란색 물감 덩어리였는데 멀리서 바라본 그것은 제복 위에 달린 훈장이었고 마치 진짜 금인 양 반짝였다. 이에 매료되어 현지의 미술 기법을 익히고자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술대학 레핀 아카데미에서 단기 과정을 이수했다.“서양 사람들이 수묵의 깊이를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의 농담과 선을 살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린 그림을 영어로 오리엔탈 드로잉Oriental Drawing이라고 하는데, 그 용어부터 잘못되었으니 제대로 이해를 못한 거죠. 드로잉은 작품의 밑그림을 가리키는데 먹으로 난을 친 그림이 드로잉은 아니잖아요. 사실주의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동서양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붓 터치가 살아있지 않은 서양식 사실주의는 너무 차갑고, 그런 작품은 표정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러시아는 두 지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까닭인지 동서양의 문화가 적절히 혼합된 스타일이더라고요.”2002년, 전시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된 여행지 뉴욕은 러시아와 더불어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곳이다.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는 도시이지만 사실, 이전에는 뉴욕 미술계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더랬다. 그러나 연이어 두 번을 뉴욕에서 전시하며 한동안 지내다 보니 그들의 색다른 문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길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는데 먼저 있던 것 위에 계속 덕지덕지 붙이더라고요. 지하철 공사를 해도 페인트칠을 딱 그 부분만 하고 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벽에 붙은 광고 부착물을 수시로 떼고, 공사를 하면 흔적이 남지 않도록 말끔하게 마무리를 하는데 말이죠.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굳이 완벽하게 하려하지 않는 그런 삶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미술도 이와 마찬가지로 보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과 편안함이 묻어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였죠.”막상 전시를 마치고 돌아가자니 아쉬움이 남았다. 이곳에서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면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열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개인적 바람과 현실 사이에서 망설일 때 그의 등을 떠밀어 준 이는 바로 아내였다.뉴욕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그의 생활 터전은 브루클린의 프랫 대학교 앞 작업실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4명이 함께 사용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른 두 사람은 자주 나오지 않아 70대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조각가 아메리고와 둘이서 공간을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다. 앤티크나 빈티지 같은 물건에 관심이 많았던 김정운 작가는 뉴욕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자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여행 가방이며 모자 가방, 약장, 낡은 창문틀, 벽시계, 트레이 등을 사들였다. 무엇으로 쓰던 것인지도 모르고 사온 것들도 많았는데, 아메리고가 그에 대한 용도와 내력을 들려준 덕분에 작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취미로 수집한 것이 아니라 작업용 캔버스 대용이었기 때문이다. 서양 여인들이 모자를 담아 보관하던 모자 상자에는 전통 혼례복을 입은 우리나라 기생의 얼굴을 그려 넣기도 하고, 고무신을 신고 꽃을 팔러가는 우리나라 여인들의 뒷모습을 찍은 1950년대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다음 낡은 창문틀로 액자를 대신하기도 했다.“언젠가는 벼룩시장에서 연도가 제법 지난 사진첩을 샀는데 그 안에 옛날 사진 몇 장이 끼워져 있더군요. 몇 년도 사진인지 그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낯선 도시에서의 소외감,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들과 나는 먼저와 나중이라는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모두 이방인인거죠.”버려진 사물과 낯선 이미지와의 만남. 이는 소외와 이방인을 표현하는 김정운 작가만의 방식이다. 작품의 주제는 다소 철학적이고 무겁지만 그의 작품은 인간애와 훈훈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캔버스 대용으로 택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각기 다른 사연을 품게 된 낡고 오래된 물건들은 새하얀 캔버스보다 그 자체의 깊이 감을 지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위에 그려진 사람이나 풍경은 사진이나 역사 자료집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 그린 것으로 언제, 어디선가 존재했었던 실재 인물이거나 풍경이기 때문이다. 아련한 추억을 막연히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스산한 계절에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