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 Mary Style
국의 윌리엄과 메리 시대는 앤티크 수집가들에게 다소 혼동을 주는 시기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두 왕의 시대를 묶어서 표현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한 시대를 두 명의 왕이 통치한 데서 비롯됐다. 두 명의 왕이 동시에 권좌에 앉게 된 사연은 단순히 영국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법치주의와 의회주의와 연결된다. 이 때가 바로 영국 특유의 행동양식이 정치와 함께 예술에서도 빛을 발한 시기다.헨리 8세부터 시작된 영국의 종파 분쟁은 17세기 후반 들어 첨예한 갈등 양상으로 확대됐다. 때로는 주변 국가의 개입으로 격화되기도 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왕이 탄생했다.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윌리엄은 1688년 프로테스탄트 측의 후원을 받으며, 가톨릭 신봉자이자 당시 왕이던 제임스 2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2세는 군 지도자가 이탈하는 등 내분이 일자 옥쇄를 템스 강에 던져버리고 프랑스로 도주했다. 결국 윌리엄(3세)과 메리(2세)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이런 역사의 질곡을 겪은 후 ‘가톨릭 교도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성문화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윌리엄과 메리 시대는 ‘권리장전’이 선포됨으로써 의회 우월주의가 확립되고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는 등 근대 민주주의의 토양이 다져진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이 시대의 예술은 미국에서도 크게 환영 받았다.앤티크 사조에서 레스토레이션 시대는 크롬웰의 공화정이 끝나고 찰스 2세에 의해 왕정으로 복귀한 1660년부터 제임스 2세의 마지막 재위 연도인 1688년까지다. 자코비안 스타일과 프랑스와 유럽 대륙, 중국의 문화양식이 도입되기도 했다. 특히 루이 14세 궁정에서 망명생활을 한 찰스 2세는 베르사이유의 문화 양식들을 가져 왔다.그러나 스타일의 본격적인 변화는 윌리엄과 메리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영국의 묵직하고 딱딱한 경향에서 밝고 부드러운 실루엣과 우아한 전통이 수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윌리엄과 메리 시대는 1689년부터 1702년까지이며, 대륙의 바로크를 영국문화 방식으로 해석한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영국식 경향은 퀸 앤 시대를 거쳐 조지안 로코코, 네오클래식으로 이어진다.이 시기 영국은 전통의 참나무 가구 중심에서 월넛(Walnut-호두나무)을 프랑스로부터 수입해 사용하다가, 목재 부족으로 베니어를 사용하게 된다. 외부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영국인의 스타일 창조 방식은 이로부터 비롯된 듯하다. 오늘날 앤티크 컬렉터들을 사로잡은 영국 전통 가구 스타일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윌리엄은 네덜란드 총독이자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았을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당시 그가 대동한 예술가들은 프랑스의 위그노를 중심으로 한 여러 국적의 인물이 많다. 이는 베르사이유를 건축할 당시 각국의 장인들을 불러 모았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윌리엄과 메리 스타일은 영국 전통의 직선 가구로부터 부드러운 곡선 가구로 바뀌는 변천의 여정에서 가장 빛을 발한 시대다. 영국의 토종 목재 참나무에서 프랑스 수입 호두나무로,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의 이행과정에서 발견되는 전환기적 디자인을 보여준다. 이전의 묵직함을 벗고 가볍고 부드러우며 우아함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 것. 직선의 딱딱한 선에서 부드러우면서 편안한 느낌의 요소를 가미한 인테리어가 궁전을 중심으로 나타나자, 중정 귀족들의 장식 예술도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때 이미 영국에서 일하고 있던 위그노 장인그룹이 그 수요에 부응하기 시작하자 주택과 가구, 직물 등을 활용하는 행동 양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같은 전제군주 국가의 권위적인 바로크 양식은 영국에 도착해서 실용과 세련됨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는 정치가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디자인 모티브를 주목하면 국제적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이웃한 플랑드르의 플레미시 스크롤(The Flemish Scroll)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가구 디자인에는 플랑드르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스패니시 푸트(Spanish Foot), 루이 14세의 영향을 받은 프렌치 스퀘어 레그( French square leg)가 등장했다. 또한 조각 일변도의 장식에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어온 마르케트리장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장식으로 쓰이는 하드웨어에는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진주 같은 눈물방울(Teardrop), 혹은 볼 형 손잡이(Ball handle)와 방패 형(Shields)이 열쇠 구멍에 사용됐다. 앤티크 가구 컬렉터들은 이 시대를 식별할 때 이러한 모티브를 참고한다.윌리엄과 메리 시대의 가구를 보면 건물을 본 딴 하이보이(Highboy)라 불리는 캐비닛이 등장하고, 테둘림 장식의 코닉스(Cornices)가 애용된 것을 볼 수 있다. 6개와 8개의 움직이는 듯한 다리들이 자주 사용됐다. X자 혹은 H자의 지지대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복잡한 느낌이지만 견고성을 부여한 디자인이다. 이러한 디자인적 요소들은 움직이는 듯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목재에 수놓는 해초 패턴의 마르케트리(Seaweed Patterns in Marquetry)는 이 시대의 유산이면서 가치 있는 장식이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를 거쳐 온 윙 체어, 러브 체어, 소파 등은 오늘날에도 자주 사용된다. 침대에는 린넨이나 프린트 된 코튼이 등장하는 시대이기도 하다.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