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오는 전통의 맛, 바롤로
롤로(Barolo)’는 장미와 타르 맛이 나며 묵혀도 변치 않는 강한 와인이라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투자등급 와인이다. 바롤로의 맛을 담금질하는 양조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바롤로가 최고라고 주장하지만, 와인 세계를 구세계와 신세계로 이분화한 와인 저널리즘은 전통적 바롤로주의자와 현대적 바롤로주의자로 나누었고, 전자를 가리켜 바롤리스타(Barolista)라고 부른다.이 바롤리스타들은 바롤로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바롤리스타로는 ‘카스틸리오네 팔레토’의 ‘마우로 마스카렐로(Mauro Mascarello)’와 ‘바롤로 마을’의 ‘주페제 리날디’ 등이 있다. 이들의 바롤로에는 피노 누와의 섬세함과 카베르네 소비뇽의 강한 맛이 혼합되어 있다.마우로 마스카렐로의 아들 주제페의 이름은 사실 주제페 마스카렐로 3세다. 이탈리아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없지만 할아버지 이름은 가능하다. 그래서 같은 이름은 손자에게로 이어져 주제페 마스카렐로 2세는 3세의 할아버지이고, 1세(1881년 양조장 설립)는 2세의 할아버지가 되어 오늘날 3세 주제페는 양조장 창업자 1세의 현손이다.양조장의 역사는 5대째 이어지고 있다. 양조장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다. 아들의 대가 끊이지 않으니 적통의 피가 마르지 않은 것이다. 주제페는 또 ‘베페’라고 짧게 줄여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베페 3세는 알바에 있는 양조학교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고, 토리노 대학으로 가서 법을 전공했다. 그가 매일 나가 돌보는 포도밭 몬프리바토는 바롤로를 생산하는 11개 마을에 분포하는 수백 개의 포도밭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산지다.마스카렐로 가문이 몬프리바토 포도밭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통 포도밭들이 여러 양조장에 의해 분할 소유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특이한 점이다. 하지만 몬프리바토의 맛보다는 특이하지 않다. 베페 3세는 “바롤리스타 마우로 마스카렐로의 ‘몬프리바토 2003’은 14.5%로 표시되고 있지만, 사실 14.9%”라고 고백했다. 몬프리바토 2003은 아주 활짝 핀 꽃내음이 나는 와인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장미꽃잎을 절인 맛도 난다. 반면 2004는 아주 다르다. 혹서기가 길었던 2003과는 달리 서늘하게 포도를 익혔다. 도수는 13.5%. 입안을 꽉 잡아주는 타닌과 질감, 우아하고 섬세한 질감에다 조화로운 입맛을 지녀 20년 이상 숙성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빈티지에는 리제르바를 출시한다. 올 초에 선보인 2001년 리제르바는 2000병 병입했다. 무려 60개월 동안 큰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이어 병 숙성을 거쳤다. 또 하나의 대단한 바롤로 몬포르티노 2001은 2008년 가을에 출시했지만, 몬프리바토 리제르바는 2009년 1월에 출시했다.여기 또 한 명의 베페가 있다. 베페 리날디(Beppe Rinaldi), 그는 바롤로 와인산지 중에서도 다름 아닌 바롤로 마을의 끝에 소재한다. 1870년에 설립됐으며, 양조학을 전공하고 있는 베페의 딸 마르타가 바통을 이어 받게 되면 6대째로 접어들게 되는 전통 깊은 곳이다. 대학 졸업반 동창들 3명이 셀러에 놀러 온 와중에도 마르타는 짬이 나면 자리로 돌아가 미국으로 선적할 매그넘 300병을 위해 라벨을 바르려고 계속 풀칠을 했다.바롤로에서는 동일 성씨가 많아 성과 이름을 모두 다 발음해야 정확하게 구분된다. 간편하게 이름만, 혹은 좀 더 신경 쓴다면서 성씨만 불러도 전혀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꼴이 되기가 십상이다. 여기 베페 리날디 말고도 프란체스코 리날디가 있으며 아까 소개한 마우로 마스카렐로와 앞으로 소개할 예정인 바르톨로 마스카렐로가 그렇다. 자코모 콘테르노, 알도 콘테르노, 콘테르노 판티노도 역시 헷갈리기 쉽다. 이들은 사촌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전혀 가족관계가 아닌 경우도 있다.베페 리날디의 지하 양조장 천정에는 살라미가 달려 있다. 친구가 만든 살라미의 맛이 아주 좋다고 한다. 베페는 연신 줄담배를 피운다. 필터가 없는 짧은 시가 같은 걸 물고 일한다. 여기서는 두 종류의 바롤로를 만든다. 하나는 브루나테와 코르테 포도밭의 포도를 혼합하여 만들고, 다른 하나는 카누비, 산 로렌조 그리고 라베라 포도밭을 다 합해 만든다. 첫 번째 바롤로는 그가 피우는 담배 향기가 나며 화려한 느낌이 아니고 질박하고 거친 맛이 두드러진다. 타닌이 많고 단단해서 바롤로의 교과서 같다. 남성적인 와인이며 구조가 뛰어나고, 제비꽃과 블랙커런트 플레이버가 많다. 두 번째 바롤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장미꽃잎 내음이 나며 우아하고 꽃향기가 있다. 여성적인 섬세함을 느끼게 하며 아로마가 밝다. 두 가지의 바롤로는 모두 오래 묵은 지하 셀러에서 양조하지만, 양조의 흠결사항이 느껴지지 않는다. 베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포도밭 와인으로 양조했을 것이다. 베페는 아버지 등 뒤에서 유년 시절부터 몸으로 배운 그대로를 아버지 사후에도 그대로 실행하며 베페 리날디의 바롤로를 계승하고 있다.조정용 와인 평론가 ilikewine@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