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 Holy Land 시나이반도

인공위성으로 본 시나이 반도는 푸른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인지경의 사막지형이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출발해 육로로 8시간 만에 그 땅에 도착했다.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위치한 시나이 반도는 남부는 성경 속 시내산으로 유명한 험한 산악지대이고 북부는 황량하고 뜨거운 광야가 펼쳐진다.시나이 반도의 면적은 이스라엘보다 두 배 이상 넓은 6만1000㎢나 된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곳을 ‘위대한 광야’라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달려도 나무 한 그루 구경할 수 없는 곳, 그 곳은 광야이며 무인지경의 사막이었다.카이로에서 출발해 세 시간을 달린 후 도착한 곳은 대추야자 나무가 울창한 오아시스 ‘아윤 무사(Ayun Musa·이집트어로 모세의 우물)’였다. 모세 일행이 스루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물을 찾다가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고 모세가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넣자 단맛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마라의 샘’이다. 마라는 이집트어로 쓴 맛이라는 뜻이다.사방을 둘러보았다. 남쪽으로 끝없는 사막이 계속 펼쳐진다. 시나이 반도는 물이 귀한 땅임을 알 수 있었다. 르비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마실 물이 없어 안타까워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명하셨다. 그들은 그 곳을 ‘므리바’ 또는 ‘맛사’라 불렀다. 몇 시간을 더 달려가니 키 15m가 넘는 우람한 대추야자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홍해에서 시내산까지 이르는 동안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오아시스 마을인 ‘파이란(Feiran)’이었다.오아시스에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섭씨 40도가 넘는 뜨거운 공기가 온 몸을 후려친다. 우리가 멈춘 이 자리는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운 르비딤(출 17:8)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언덕에는 모세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손을 들고 기도를 했다는 장소가 성스럽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오아시스를 떠나면서부터는 지형이 바뀌었다. 사막지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돌산이 즐비한 산악지대가 나타난다. 1000m가 넘는 웅장한 바위산들이 겹겹이 병풍처럼 둘러 쳐 있었다.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거대한 돌산을 형성한 형국이다. 해는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다. 사막의 한기가 몰려온다. 신비한 사막의 밤이다.카이로에서 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석 달 만에 도착했던 시내산 기슭에 도착한 것이다. 시나이 반도 남방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우리를 맞이한 신비한 모습의 산 하나. 하늘과 땅을 이을 듯한 해발 2285m 높이의 거대한 이 바위산을 아랍인들은 ‘제벨 무사(Jebel Musa)’라 부른다. ‘모세의 산’이란 뜻이다.이 산기슭에서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어 노예의 땅 이집트를 떠난다. 모세는 산의 정상에서 40일 40야를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석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받아 내려왔다. 구약성경은 이 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렀고, 오늘날도 이어지는 시내산 등정은 성지순례의 백미다. 나의 마음에 평생 동안 간직할 신과의 조우, 그 감격과 감동을 고스란히 안겨준 광야 속의 성산이다.넓이 6만1000㎢의 시나이 반도, 낮에는 작열하는 강한 햇볕이 내리 쬐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한다. 신학자들은 성서의 땅(Land of Bible)이라 부르고 지리학자들은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s)이라고 불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일 뿐 아니라 지중해 저편에 있는 유럽 대륙이 시나이 반도를 거쳐 홍해와 인도양 뱃길을 따라 동양으로 갈 수 있는 선박로이자 문화의 교량이었던 곳이다.시나이반도는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모세가 애굽에서 팔레스티나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통과한 곳이 이곳이고 아라비아의 유목민인 아말렉족과 싸움을 벌인 곳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이 40년 동안 유랑하며 하나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 받던 곳도 이곳이다.홍해 북단에 돌출한 시나이 반도 안에 있는 시내산은 모세가 출애굽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바위산이다. 붉은빛이 감돌고 울퉁불퉁 골이 진 화강암으로 뒤엉킨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 더욱 신비로운 생동감을 주며 시간에 따라 그 빛깔은 다양한 색채로 변신한다.이른 새벽 지친 몸을 일으켜 시내산 정상을 향한다. 플래시를 비추고 걷기도 하며 낙타를 타고 정상을 향하기도 한다. 마치 한 무리의 군단들이 새벽에 적진을 향하여 전진하는 형색이다. 성산을 향해 전 세계에게서 찾아온 신앙의 사람들이 불꽃같은 열망으로 새벽을 가르며 힘차게 오른다. 드디어 푸르스름한 기운이 돌더니 저 멀리 그 푸른 기운은 붉은 기운으로 변해간다. 붉은 해가 힘차게 대지를 향해 오른다. 모세의 성산 시내산에 찬란한 해가 솟아 오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에 태양은 더욱 붉게 떠오른다.해뜰 무렵의 부산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상에 모인 사람들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거나,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성산에서 지친 생명을 추스른다. 한여름에도 정상의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모포를 뒤집어쓰거나 방한복 차림이 대부분이다. 명상과 기도, 각자 이 땅을 찾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 세계에서 모인 시내산 등반 군단들은 마치 십자가 군병처럼 일사불란하게 시내산을 뒤로하고 하산을 서두른다.2시간 거리의 하산 길은 도보로 돌길을 걸어 굽이진 산길을 돌아 내려가거나 낙타를 타야 한다. 낙타와 낙타 몰이꾼들의 행렬은 파란 하늘과 시내산을 배경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이어지는 낙타 행렬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밤잠을 설쳐가며 새벽 2시에 오르기 시작한 캐러반이 오전 11시경, 베이스캠프인 세인트 캐터린 교회에 다다른다. 이미 세계인의 성지가 되어 매일 새벽 정상을 향한 십자가 군단의 이동이 파르스름한 아침을 여는 곳, 성지를 찾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로 더욱 성스러운 곳, 그 현장에 서면 누구나 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황막한 무인지경의 시나이 반도가 이토록 찬란하게 아름다운 이유는 새벽과 아침으로 이어지는 빛과 어두움의 변화 속에, 명멸되어 숨 쉬는 시나이 산맥의 그 웅혼한 기상 때문이리라. 오늘도 인공위성 사진으로 누렇게 보이는 시나이 반도, 홍해 골짜기엔 하나님의 축복을 기리는 수많은 영혼들의 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다.시내산은 시나이 반도의 산악지대에 있는 한 산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가장 유력시 되는 견해는 파이란 오아시스를 지나면 나오는 호렙산 줄기의 최고봉 ‘제벨 무사’와 그로부터 3.2km 서남쪽에 있는 ‘제벨 카타린(2621m)’, 서북쪽에 있는 ‘라스 에스 사프사페(Ras es-Safsafeh,1993m)’ 중 한 곳이라는 설이다.시내산에 오르는 길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수도원의 수사들이 만들어 놓은 가파른 3570계단길과 완만한 능선으로 된 구불구불한 길로서 정상까지 2시간 반 정도 걸어올라가면 된다.시내산은 해발 2285m의 모세산을 비롯하여 해발 2637m의 세르발 산등 해발 2000m 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지만 어느 산이건 하나 같이 흙 한줌 없는 돌산들뿐이다. 시내산 밑에는 순례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숙박타운이 있어서 일찍 잠을 자고 새벽 2시경에 시내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시내산 정상에서 700여 계단을 내려오면 좌측에 샘이 있는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 아론과 장로들이 모세를 기다린 곳이라 한다(출 24:1-2). 또한 아합 시대의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을 피해 숨어있었다는 곳이기도 하다.글·사진 함길수 자동차 탐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