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러지 사장

그가 1989년 만든 ‘메달리온 펀드’는 2007년까지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소로스의 퀀텀펀드나 피터 린치의 마젤란펀드를 훨씬 뛰어넘는 실적이다.국 하원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발 금융위기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해 2007년 10월 헤지펀드 업계 거물들을 대거 청문회에 소환했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인 조지 소로스와 폴슨사 회장 존 폴슨, 팰컨하빈저캐피털파트너스의 필립 팰컨 사장, 시타들인베스트먼트그룹의 케네스 그리핀 회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헤지펀드 업계 5인방’으로 꼽히는 르네상스테크놀러지의 제임스 사이먼스 사장(70)도 모습을 나타냈다. 2006년 펀드매니저 사상 최고인 17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1조6000억 원)의 연봉을 받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그가 조지 소로스 회장 옆에서 답변하는 모습은 세계 금융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이로부터 반년이 지난 작년 4월, 사이먼스는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뉴욕 월가 투자은행 소속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대규모 손실을 입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지만 그는 여전히 천문학적인 수입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당시 미국의 기관투자전문잡지인 ‘알파’ 최신호에 따르면 존 폴슨 회장은 2007년 37억 달러를 벌어들여 전 세계 펀드매니저 가운데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다. 조지 소로스 회장은 29억 달러를 벌어 랭킹 2위에 올랐으며 제임스 사이먼스 사장도 2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이먼스 사장은 지난 3월에 발표된 포브스지의 세계부자 순위(The World’s Billionaires)에선 순자산 80억 달러를 보유, 55위에 올랐다.사이먼스 사장은 단순히 돈만 많이 번 부호는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를 ‘10억 달러짜리 연구원’이라 표현했다. 하버대드 수학과 교수에서 월가 헤지펀드 매니저로 변신한 흔치 않은 이력에 증시의 주가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퀀트펀드’(Quant Fund)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기 때문.퀀트펀드란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 시장의 움직임을 컴퓨터 프로그램화하고 이를 근거로 투자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펀드를 말한다. 수학적, 계량적으로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 펀드를 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퀀트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출신들이 지배하던 금융시장에 수학적 재능을 결합해 새롭게 주목받은 신금융 엘리트들을 말한다.보스턴의 신발공장 사장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58년 MIT 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버클리대에서 미분기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엔 암호 해독 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1964년까지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74년엔 ‘천-사이먼스 이론’으로 명명된 수학 명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1976년엔 미국 수학협회 베블렌상 기하학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그런 사이먼스가 뉴욕 월가로 뛰어든 것은 1978년이었다. 그는 “수학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갑자기 회의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변화에 대한 욕구를 나이 탓하며 억누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이 마흔이면 은퇴를 생각해야 할 펀드 업계로 방향타를 잡은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강점인 수학적 분석법을 이용하면 차익거래(arbitrage)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그는 이후 놀라운 성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그가 수학, 심지어는 천문학자들까지 불러 모아 1989년 만든 ‘메달리온펀드’는 2007년까지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소로스의 ‘퀀텀펀드’나 피터 린치의 ‘마젤란펀드’가 기록했던 실적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수익률이다. 메달리온펀드는 이로써 퀀트펀드의 대명사가 됐다. 이 펀드의 자산 규모는 50억 달러를 웃돈다.수익률이 워낙 높다보니 펀드 수수료도 상상을 초월한다. 일반적인 헤지펀드가 연간 수수료로 운용 자금의 2%,운용 이익의 20%를 부과하는 데 비해 메달리온은 운용 자금의 5%,운용 이익의 44%를 떼어 간다. 하지만 어떤 투자자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수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모든 퀀트펀드들이 다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퀀트펀드 때문에 체면을 구겨야 했다. 골드만삭스는 작년 ‘글로벌 에쿼티 오퍼튜니티즈’란 퀀트펀드에서 30% 이상의 손실을 냈다. 이 손실을 메우는 데 30억 달러란 거금을 들여야 했다.르네상스테크놀러지는 퀀트펀드의 성격상 기본적 분석에 충실한 경제학 전문가가 뿌리를 내릴 여지가 별로 없다. 이 회사에 들어가려면 월가 경력을 오히려 감춰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직원 대다수가 물리학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 박사들로 구성됐다. 최근엔 위성사진의 판독과 수정에 정통한 천문학자들까지 합류했다. 20개국 출신의 박사학위 보유자가 70명에 달한다. 그래서 르네상스테크놀러지 본사는 ‘캠퍼스’란 별명을 얻게 됐다.“박사급 순수과학 전공자를 더 좋아합니다. 이들은 과거의 거래 데이터에서 특이한 패턴을 순수과학 방법론을 사용해 뽑아내고 검증합니다. 이를 매매시스템에 접목시키고 이런 시스템들 수천 개가 모여 우리 펀드의 수익률 신화를 만드는 겁니다.”그의 설명은 워런 버핏식 가치투자와는 정반대다. 주식시장의 특이한 패턴을 추출한 뒤 이를 토대로 분, 초 단위의 초단타 매매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돈을 운용하면 위험할 수 있어 펀드 운용자금을 60억 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사이먼스는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지 또는 어떤 전략 모델을 채택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이는 워런 버핏이 자신이 주식을 사기 전에는 그 주식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신화 그 자체인 사이먼스도 나무에서 떨어진 적은 있었다.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와 관련된 구설이 그것. 그는 미 스토니브룩대에 거액의 기부를 했지만 그 대학 기부금을 관리하는 스토니브룩재단 이사장으로 일할 때 메이도프와 관련된 투자를 권유했다. 1991년 재단은 50만 달러를 메이도프에 투자하기 시작, 2004년까지 800만 달러를 집어넣었는데 메이도프 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550만 달러 손해를 봐야 했다. 그는 다행히 2000년대 초 메이도프의 불투명한 경영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고 2004년엔 투자회수를 주문했다. 하지만 당시 이사회 다른 이사들이 이에 반대해 손실이 부풀려지고 말았다.누구보다 많은 돈을 거머쥔 사이먼스도 가정적으로는 너무나 불행했다. 장남 폴은 34세 때인 1996년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차남 닉은 2003년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하던 중 익사사고를 당했다. 애지중지하는 딸은 자폐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동정심이 들게 하는 부호인 셈이다.그래서일까. 그는 공익사업에 매년 많은 돈을 쾌척하고 있다. 수학교육재단, 기초과학연구재단, 자폐증 연구기관 등에 대규모 기부금을 내고 있다. 또 뉴욕시 공립학교 수학교육 기금으로 2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뉴욕 스토니브룩대에도 최근 2500만 달러를 희사했다. 사이먼스 사장은 “수학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연구기금 기부는 여기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라고 말했다.사이먼스는 또 네팔에서 일했던 아들 닉의 뜻을 기려 닉사이먼스재단을 세워 네팔에 의료환경 개선에 지원하고 있다. 자폐증 원인을 밝혀내는 연구작업에는 38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1억 달러를 추가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한편으론 가족의 DNA를 연구용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의 공익사업을 돕는 한 지인은 “난 시몬스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내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잠을 한숨도 자지 않는 모양이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FT는 2006년 사이먼스를 ‘가장 스마트한 부호’라 추켜세웠다. 충분히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는 수식어다. 돌이켜보면 10년 전 열린 그의 환갑잔치에서도 여느 부호와는 다른 스마트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톱스타들이 여흥을 돋우는 사치스런 파티 대신 기하학과 관련한 심포지엄으로 환갑잔치를 대신했다고 한다.세계적 경제위기에서 퀀트펀드가 어떻게 순항해 갈지, 사이먼스의 투자원칙이 변화되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여전히 ‘스마트’한 실적을 기록할지 앞으로가 더 관심이다.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