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서혜경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열 살에 국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한 천재 피아니스트. 카네기홀은 그녀를 현존 3대 피아니스트로 꼽기도 했다. 7월 4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리허설에 땀을 흘리고 있는 서혜경을 만나봤다.생에 있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순간,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20대 중반 전성기에 찾아온 근육 파열과 2006년 유방암이라는 두 번의 시련을 겪었다.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청천병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던 그녀.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열정과 노력으로 지난 2008년 1월 예술의전당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무대와, 2009년 2월 한국투어로 재기에 성공했다.기자가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으로 찾은 날. 그녀는 독주회 리허설로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계획했던 리허설 시간을 한 시간 남짓 넘어서야 그녀의 쉼 없던 손이 피아노를 벗어났다. “한 번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시간과 장소를 잊을 정도로 빠져들어요. 스스로 만족하는 음이 나올 때까지 피아노를 치다보니, 약속시간에 많이 늦어버렸네요.”이날 서혜경의 레퍼토리는 2009년 2월 선보인 소품집 ‘밤과 꿈(Night and Dream)’에 수록된 곡들이었다. “암과 싸워 이겨낸 후 처음 갖는 재기 무대를 위해 열심히 만든 소품집이 바로 ‘밤과 꿈’이에요. 서정적인 느낌을 가득 담은 음반이지요. 낭만주의와 인상주의를 아우르는 음반으로 허호길 프로듀서는 명반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의 반응도 너무 좋더라고요.”그녀에게 첫 번째 시련이었던 ‘근육 파열’에 대해 물었다. “젊은 시절 콩쿠르에 도전해 우승을 한 후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빡빡한 연주여행 일정을 소화했어요. 그러던 중 근육 파열이 와서 연주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됐죠. 신체적인 고통보다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상실감이 컸습니다. 상실감을 덜기 위해 줄리어드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 학문적인 부분의 내실을 키워가며, 조금씩 피아노 연습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서 씨는 매일 조금씩 연습 시간을 늘려가며 자신을 괴롭혀 오던 상실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갖고 자신만의 소리를 연구하며, 피아노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자부할 무렵 두 번째 시련이 찾아온다. “2006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죠. 연주생활의 위기뿐 아니라 생명 자체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내가 왜 이런 큰 시련을 두 번씩이나 겪어야 할까’하는 원망도 들었습니다. 항암주사 한 번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김없이 빠지고 항암주사 두 번에 백혈구 수치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떨어지고, 항암주사 세 번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옥상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죠. 암세포 절제 수술 후의 방사선 치료 땐 살이 짓무르고 체력이 떨어져 정신까지 몽롱해 진답니다. 항암치료와 절제수술, 서른 세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서 씨는 피아노와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티어 냈다고 한다.서 씨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암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는 ‘서혜경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더욱 연습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재기 무대와 몸 관리를 위해서는 식단조절이 필요했다. 서 씨는 그때부터 계속 현미밥 210g에 채소만으로 만든 건강 식단으로 몸 관리를 해 오고 있다.서 씨의 어린 시절은 피아노에 ‘올인’ 해야 했기에 여느 사람들의 유년기 추억과 맞바꿔야 했다. “대신 ‘음악’이라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얻었습니다. 솔직히 한 때는 피아노 뚜껑이 내 무덤 속의 관 뚜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여든 여덟 개의 이빨을 가진 상어가 되어 덤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허나 피아노는 저에게 물이나 공기 같은 존재이지요.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는 제 생존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서 씨는 다시 태어나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잘 하고, 즐거운 일은 피아노밖에 없으니까요”라며.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수십 년간 피아니스트로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수많은 연습 끝에 피아노에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마음대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청중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암 완치 후 재기 연주를 끝냈을 때 눈물을 글썽인 채로 무대로 돌아와 기쁘다며 말해주신 팬들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행복했습니다.”“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연주자에게나 행복한 일입니다. 그 연주를 위해 수많은 연습을 하고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연주자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서 씨는 앞으로도 연주 일정을 빼곡히 잡아 놓고 있었다. 중국 상하이와 하와이 호놀룰루 등에서의 협연은 물론, 내년 11월 출반할 음반을 위해 방대한 양의 녹음까지. 서 씨는 “아프고 난 후 전에는 못 봤던 세상의 많은 부분들이 눈에 보이더라”면서,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인 비너스 여성 환우회는 물론, 핑크리본 캠페인, 한국 유방암 홍보대사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더욱 열정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음악을 대하게 됐습니다. 예전 제 음악이 도전적이었다면, 두 번의 위기를 넘긴 제 음악은 보다 진지해 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좋은 음악을 선보이겠습니다.”피아니스트2000년 팜비치 국제콩쿠르 입상자 초청 콩쿠르 우승윌리암 퍼첵상뮌헨 콩쿠르 2위한국여성재단 홍보대사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글 김가희·사진 이승재 기자 holic@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