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이민 실태
포구 공덕동에 사는 김민석(44·가명) 씨는 요즘 미국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사교육비 증가로 자녀 교육에 부담을 느낀 김 씨는 2년 전부터 이민을 생각해 왔다. 그가 지금까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안정적인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기엔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주위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녀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러다 우리 애가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부터 앞선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해외 이민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한다.일반적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경로가 바로 투자 비자와 투자 이민이다. 이 둘은 영주권 발급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난다.투자 이민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50만~100만 달러가 필요하다. 부동산 취득 비용은 별도다. 이민 신청자는 2년간 임시 영주권을 받으며 이 기간 신청 자격을 갖춰야 정식 영주권이 발급된다. 투자 이민으로 영주권을 받으려면 1990년 11월 19일 이후 설립 또는 투자된 회사라야 하고 반드시 10명 이상의 미국인을 고용해야 한다. 당연히 불법 체류자 등은 고용 인원에서 제외된다.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한 해에만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사람이 18명, 50만~100만 달러를 투자한 사람이 70명 등 모두 88명이 투자 이민을 신청해 영주권을 취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해 미국에서 투자 이 민으로 영주권을 받은 346명 중 25.4%에 해당된다. 국가별로 따져보면 아시아에서는 대만 다음으로 많다. 투자 이민은 보통 100만 달러를 투자해야 발급받지만 시애틀 필라델피아 등 실업률이 높은 도시에서는 50만 달러만 투자해도 가능하다.이처럼 목돈을 투자해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투자 이민 수요는 시간이 갈수록 시들해지는 모습이다. 미국이 내준 투자 이민 영주권은 1997년 1361건으로 최고점에 이른 후 지난해에는 300건으로 감소했다. 투자 이민 인기가 떨어지자 미 국무부는 이 제도의 존폐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 주정부나 시정부는 투자 이민을 확대하기 위해 간접 투자 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예컨대 필라델피아는 시 정부 산하에 투자 이민 관련 회사를 둬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는데 투자자는 공신력 있는 공공기관에 자금을 맡겨 운영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으며 시 정부는 개인들의 투자금으로 활발한 공익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된다.일부 기관에서는 5년 후 원금 상환 보장이 가능하도록 안전장치까지 마련해 둔 상태다.투자 이민을 유치하기 위해 시범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곳도 있다. 투자 이민 시범 프로그램은 투자 액수만 일반 투자 이민과 같을 뿐 고용 창출 요건을 대폭 완화됐다. 이 프로그램은 영주권 할당액을 연 3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투자 이민 시범 프로그램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지역 센터’로 지정된 지역에 투자해야 하는데 미 이민국은 현재 미국 내 26곳을 투자 지역 센터로 지정해 놓고 있다. 이 지역들은 시 인구가 2만 명 이하로 인구밀도가 낮은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주로 시 외곽 지역들이 해당된다. 또 미 이민국으로부터 인정받은 지역 실업률이 평균치의 1.5배 이상인 곳도 투자지역 센터로 분류된다. 투자 비자는 투자 이민에 비해 금액 부담이 적다는 점 때문에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005년 미국에서 투자 비자를 받은 사람은 총 19만2823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50%인 9만5534명이 아시아 국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별 투자 비자 취득 현황을 보면 일본이 7만2606명(37.8%)으로 1위를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1만3090명(6.9%)이 비자를 발급받았다. 대만 4613명(2.5%), 중국 769명(0.5%), 인도 228명(0.1%) 등이 그 뒤를 이었다.우리나라가 미국에서 투자 비자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57년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후부터다. 연도별 투자 비자 발급 현황을 보면 2003년 16만8500건, 2004년 18만3000건, 2005년 19만3000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투자 한도액을 규정해 놓고 있지는 않지만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20만~30만 달러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신규로 사업체를 설립하는 것이 원칙이나 기존 업체를 인수하거나 미국 내 투자들과 합작하되 5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비자가 나온다.투자 비자는 어디서 발급받느냐가 중요하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발급받으면 미국과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며 비자 신청 이전에 사업체 구입과 현지인 고용 여부 등을 확정해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반면 미국 내에서 이민국에 비자를 신청하면 사업체를 요모조모 살펴보고 결정하기 때문에 투자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자 발급 후 한국에 나올 때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다시 투자 이민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뒤따른다.금액 부담이 적기 때문에 투자 비자는 자녀 교육 등을 고민하는 30~40대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투자 비자를 발급받으면 미국 내에서 고등학교(공립)까지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으며 이 비자로 가능한 사업은 커피전문점, 스낵코너, 세탁소 등 소규모 비즈니스다.요즘 미국에서는 비이민 비자와 이민비자의 혼합형이 각광받고 있다. 투자 이민, 투자 비자의 장점만을 결합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현지 이주공사들은 설명한다.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정민경(43·가명) 씨는 유학 비자(F1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투자 비자로의 변경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케이스다. 미국에서는 어학원 등에서 수강해도 유학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는 데 자격조건만 갖춰 발급 받을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학 비자는 그러나 현지에서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발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 은행계좌 개설 등에 제약이 따른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정 씨는 “일단 유학 비자로 체류하면서 현지 사정을 면밀히 검토한 뒤 투자 비자 발급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애틀랜타에 사는 김민호(38·가명) 씨는 투자 비자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취업 이민을 신청해 영주권을 받아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미용사, 요리사, 간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현지에서 취업하게 되면 해당 업체의 허락을 얻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