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파스트 리테일링 야나이 다타시 사장

년 11월 미국 뉴욕의 젊은이들 거리인 소호에 명물이 하나 등장했다. 일본 의류체인 ‘유니클로(UNIQLO)’의 미국 내 두 번째 점포다. 의류 단일 브랜드로는 맨해튼에서 가장 큰 점포여서 미국 언론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고품질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99달러 이하에 판다며 뉴욕타임스도 놀라워했다. 영어로는 ‘버짓 클로스(budget clothes)’ 또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 불리는 저가 의류 체인에서 과연 유니클로가 1위 GAP(미국)을 추격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최근엔 닛케이비즈니스(4월호)에 유니클로가 크게 소개됐다. 오는 7월부터 계약 사원과 준 사원 5000명을 정규 사원으로 전환할 방침이라는 뉴스다. 그동안 유니클로의 정사원은 점포의 점장과 부점장급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백 명이었다.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뛰어난 엘리트 직원들과 저임금 노동력의 결합으로 성장해 온 유니클로가 서비스를 질적으로 개선하겠다며 내린 결론이다. 재계약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고객에게 집중하게 하는 이런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또한 주목된다.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파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은 이래저래 참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회사다. 회사 이름만큼이나 일본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체인 스토어다. 워낙 많은 일본인들이 유니클로를 사 입다 보니 ‘일본 국민복’이란 영예로운 수식어도 얻게 됐다. 이 모든 성공은 파스트 리테일링 창업자이자 사장인 야나이 다타시(58)의 비범한 경영 능력에서 비롯됐다.세계적인 경제·경영 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2001년 야나이 사장을 ‘일본 CEO의 전형에서 벗어난 대표적 인물’이라고 촌평했다. 공격적이고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겸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야나이 사장의 성공은 평상복 바지나 양말을 맥도날드의 패스트푸드처럼 파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세트 메뉴를 제공하는 점에선 맥도날드와 다름없다는 얘기다.그러나 경쟁 회사를 초토화시키는 가격 정책 때문에 일본 재계는 물론 정계에서 조금은 ‘왕따’ 당하는 분위기다.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부채질해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데 찬물을 끼얹었다는 ‘죄목’이다. 온정주의가 만연한 일본 재계에서 ‘공공의 적 1호’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눈도 꿈쩍 않는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가격)을 돌려주고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그는 고액 납세자로도 유명하다. 2004년 10억8000여만 엔을 세금으로 내 고액 납세 순위 3위에 올랐다. 당시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3억3000여만 엔을 내 87위에 그쳤으니 그의 부(富)도 상당하다. 돈 버는 데는 장사만한 게 없는가 보다.유니클로는 의류 제조업체가 유통까지 모두 관장하는 ‘제조 직판형 의류전문점(SPA)’의 일본 내 첫 모델이다. SPA는 리미티드, GAP, 베네통, 에스프리 등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들이 많이 취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알려져 있다.야나이 사장은 1971년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 대형 유통업체인 재스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고 1972년 아버지가 경영하던 소규모 의류회사인 쇼군상사에 들어갔다. 처음엔 중국 광저우나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아웃소싱해 판매했다.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1984년 드디어 유니클로의 첫 점포를 히로시마에 열었다. 다음 해인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폭등했을 때 그는 홍콩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그는 고품질의 캐주얼 의류를 보고는 놀랐다고 한다. 캐주얼 의류는 제조와 판매 간 경계를 허물 수 있고 국가 간 장벽도 쉽게 뛰어넘는 품목이란 사실이 더욱 반가웠다.마침 미국 리미티드가 매스컴에 많이 등장했다. 스웨터 600벌 생산 능력을 갖고 있던 회사가 단기간에 300만 벌을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한 스토리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 때 그는 “바로 이거야”라고 외쳤다.자신의 비즈니스에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야나이 사장은 종국적으로 점포 수 1000개는 넘겨보자는 옹골찬 목표도 세웠다. 당시 그는 부자재를 구매해 제품을 만들고 팔 줄만 알았지 경영 관련 지식은 전혀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인회계사가 쓴 책을 한 권 읽고는 어렵사리 그 저자와 연락을 취했다. 이때 유니클로는 영업이익 4000만 엔을 넘고 있었다. 그 회계사는 회사 성장을 위해 증시 상장을 권했고 결국 3년 반 뒤인 1994년 히로시마 증시에 회사를 상장시켰다.그때까지도 일본에서는 ‘캐주얼 의류’라고 하면 트렌디한 유행을 타는 옷이고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야나이 사장은 그러나 캐주얼 의류는 나이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니섹스풍으로 가도 무방하다고 봤다. 당시엔 젊은이들을 위한 캐주얼 의류밖에 없었지만 야나이의 유니클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캐주얼 의류는 틈새시장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야나이는 입을 앙다물었다. 캐주얼 의류가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도록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리미티드와 GAP처럼 분명한 사업전략과 브랜드 이미지 등을 갖춘 체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고품질에 비싸지 않은 제품을 만들면 성공하리란 확신을 얻게 됐다.이후 유니클로가 붐을 일으킨 데는 10여 년간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겪었던 일본 경제 상황도 일조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야나이 사장의 공격적이고 과감한 결단력이 있었다. 폴라플리스로 히트를 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폴라플리스는 겨울철 의류의 보온용 안감으로 많이 쓰이는 소재. 1998년 플리스 재킷을 출시한 유니클로는 총 200만 개의 플리스 재킷을 팔았다. 다음 해인 1999년엔 1200만 개, 2000년 엔 2000만 개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 의류 업계에선 한 해에 광고비를 100억 엔 이상 쓰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유니클로는 180억 엔을 광고비로 써댔다. 자신이 믿는 바를 반드시 실행으로 옮기는 야나이 사장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플리스 재킷은 야나이 사장의 ‘일점 돌파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야나이는 여러 제품에 관심을 두기보다 전망이 확실한 상품 한두 가지로 승부를 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간판 상품인 플리스 재킷에 모든 회사의 자원을 집중해 빅히트를 일궈낸 것이다. 당시 플리스 재킷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2만 원. 우동 다섯 끼, 책 한 권보다 조금 비싼 가격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날개 돋친 듯 팔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일점 돌파 전략에는 그러나 색상을 다양화해 상품 구색을 넓힌 보완책도 뒤따랐다. 플리스 재킷 한 종의 색상만 50여 가지에 달했다. 사양길에 접어든 듯한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을 채택하면서도 고품질과 다양화, 저가 전략을 적절히 믹스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유니클로의 경쟁력은 또 야나이 사장이 강조하는 맨파워에서 나온다. 전도양양한 일류 기업을 박차고 야나이 사장의 경영을 현장에서 배우려고 몰려든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장이 의류 업계를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확신해 이 회사에 왔다고 직원들은 답한다.일본 언론인 쓰키즈미 히로시는 야나이 사장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1994년 야나이를 처음 만났다. 당시 유니클로는 점포를 100개로 확대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쓰기 위해 그를 인터뷰했는데 거꾸로 내가 인터뷰 당하고 말았다. 내가 아오야마상사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가 읽어본 것 같았다. 그 책 내용에 관해 나에게 막 질문하는 게 아닌가. 그는 공부하고 배우는 데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스타일의 경영자이자 진정한 벤처 캐피털리스트라는 인상을 줬다. 유니클로가 잘나가던 2000년에도 그는 위기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업 확장에 대한 에너지와 의욕을 실감할 수 있었다.”야나이 사장은 일본 경영인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세계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는 “요즘 상황을 야구에 비유하면 이제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에 와 있다”고 말한다. 또 ‘메이저리그’로 가려는 사람들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런 사람은 비즈니스에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고 사장의 입장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점포 매니저로 원한다.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즈니스맨들은 일본의 향후 변화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야나이 사장은 미국 매출을 올해 3000만 달러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어 중국 한국 영국 등 전 세계 점포에서 2010년까지는 90억 달러 대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포부다. 타깃으로 삼고 있는 GAP의 매출은 160억 달러 대다. 그는 또 40억 달러의 자금을 갖고 해외에서 인수·합병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국민복이 세계인의 국민복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파스트 리테일링 연혁1984년 히로시마에 유니클로 1호점 개점1994년 100호점 돌파,히로시마 증시에 상장1999년 도쿄증시 제1부 종목으로 상장2001년 영국 런던에 4개 점 출점2002년 중국 상하이 2개 점 출점2004년 미국 뉴욕에 디자인 스튜디오 설립2005년 9월 한국 서울에 1호점 출점, 미국 뉴저지에 미국 1호점 출점홍콩 1호점(침사추이점) 출점2005년 10월 플래그십 점포인 유니클로 긴자점 개점키즈 전문점 ‘유니클로 키즈’ 출시2006년 11월 미국 뉴욕 소호에 미국 2호점 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