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과 게이츠
셔해서웨이의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다음 날인 지난 5월 6일. 벅셔해서웨이 자회사인 ‘보세임’이란 보석가게 한쪽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 연출됐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두 번째 부자인 워런 버핏이 한 조를 이뤄 탁구 복식 경기를 펼친 것. 두 사람은 바로 옆자리로 옮겨 브리지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연출된 데에는 두 사람의 ‘진하고도 별난 우정’이 바탕이 됐다. 두 사람은 이미 알려진 대로 절친한 친구다. 나이는 버핏이 76세로 51세인 게이츠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많다. 나이로만 보면 부자지간쯤 된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를 스스럼없이 ‘빌’ ‘워런’이라 부른다. 이뿐만 아니다. 게이츠는 벅셔해서웨이의 사외이사이자 4280주(지분율 0.34%)를 갖고 있는 주주다. 버핏은 지난 2004년 부인 수전 버핏이 작고해 이사 자리 1개가 비자 곧바로 게이츠를 그 자리에 영입했다. 게이츠도 이에 화답하듯 꾸준히 주식을 사 모으고 있다.버핏은 한 발 더 나아가 “누군가 벅셔해서웨이를 인수한다면 그 사람이 빌이었으면 좋겠다”거나, “빌과 함께 한다면 최고의 인물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경제적 유대는 작년에 절정에 달했다. 버핏은 전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300억 달러가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된다.사실 두 사람은 이력으로만 보면 닮은 점이 별로 없다. 게이츠는 디지털이라는 ‘신세계’를 개척해 부자가 됐다. 버핏은 주식 투자로 떼돈을 벌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별난 우정을 갖게 된 것은 서로의 철학이 닮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버핏은 ‘투자의 귀재’ 못지않게 ‘윤리 경영의 전도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재산의 사회 환원을 주장하고 부정부패에 연루된 기업은 인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에 대해서도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녀들로 2020년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며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부의 세습에 반대하는 ‘부자답지 않은 부자’인 것이다.게이츠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에선 상당 부분 손을 떼고 자선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엔 아예 회장직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상속세 폐지에 대해서도 버핏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반대론자다. 그는 버핏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부의 왕조적 세습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게이츠는 자신의 이런 철학이 버핏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1986년 버핏이 포천지에 기고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남겨야 하느냐’라는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으며 그 때부터 모든 것은 사회로 되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버핏이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