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상가·골프장에 한국자금 ‘밀물’

지난 1월 도쿄 미나토구 신바시에서 분양됐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인 ‘월드시티 타워’. 일본 부동산 3위 업체인 스미토모가 건설하는 53층 규모의 이 단지는 활기찬 일본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사례로 동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분양 가구가 790가구에 달하는 등 일본에선 모처럼 나온 대규모인 물량인 데다 분양 3개월 만에 모두 팔려나간 것. 무엇보다 분양가가 초고가(전용면적 기준 평당 300만 엔)였지만 로열층의 평균 경쟁률은 3 대 1에 달했다. 올 들어 분양되는 도쿄 중심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가 전용면적 기준으로 200만~230만 엔선이고, 대규모 주거 단지의 경우 분양 기간이 통상 6개월~1년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공이다.일본 부동산 시장의 활력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한국인과 재일 동포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하나인 도쿄 신주쿠에선 고급 아파트 매물이 귀하다. 내년 3월 입주 예정인 ‘더 센터 도쿄’의 경우 50평형(전용면적 40평 내외) 아파트 분양가가 최소 1억 엔을 넘지만 나와 있는 물건이 거의 없을 정도다. 도쿄의 고가 주택이 주목을 받는 것은 향후 가격 상승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 비해 한국의 소득 수준이 낮지만 일본 요지의 집값은 서울 강남 아파트와 비교할 경우 가격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아 저가 메리트가 부각되고 있다.일간부동산경제통신의 사토 모토마사 기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부쩍 두드러지고 있는 원화 가치 상승도 한국인들의 아파트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최근 들어 일본에 영주하는 재일 동포는 물론 상사 주재원 중에도 일본 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이 12억 원선인 반면 도쿄의 최고 요지는 아니지만 중심부 비슷한 평형대 아파트 값이 6000만~7000만 엔선이어서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덧붙였다.도쿄에서 영업 중인 한국계 금융사와 부동산 업체 등에 따르면 많은 국내 투자자가 고급 아파트, 상가건물 등을 매입하기 위해 일본을 찾고 있다. ‘재팬 벼룩시장’의 안영식 대표는 “1~2년 전부터 한국 내 지인들로부터 수익성이 좋은 부동산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특히 작은 상가나 신축 아파트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원화 강세인 때를 활용해 4억~5억 엔 정도의 상가 매물 구입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모 은행 도쿄지점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한국의 개인 투자자가 일본 부동산을 구입하겠다는 문의가 한 달 평균 1건에 그쳤으나 현재는 10여 건을 훌쩍 뛰어 넘는다”고 소개했다.한국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대상은 골프장. 한국에 비해 가격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렴한 데다 부킹난을 피해 일본을 방문하는 국내 골퍼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투자자들의 일본 골프장 매입 붐은 3년 전쯤부터 시작됐다. 최근 3년간 재일 동포를 제외한 국내 법인이나 개인 투자자가 사들인 골프장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여기에 재일 동포가 매입한 골프장을 포함할 경우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재일 동포인 이호진(58) 이안골프그룹 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7개의 일본 골프장을 인수해 현지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일본 내 골프장이 2200개 정도인데 거품 경제 때 만들어졌다가 어려워진 곳이 많다”면서 “재일 동포를 포함할 경우 한국인이 소유한 일본 골프장은 많게는 60~70개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내 투자자들의 골프장 매입이 주춤한 상태다. 도쿄 인근 지역의 괜찮은 골프장 가격이 작년 상반기에는 12억~16억 엔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30억 엔을 넘는 곳도 늘고 있다. 경기 호조로 골프장을 보유하려는 일본 기업들이 증가하면서 매물로 나온 골프장의 가격이 뛰고 있고, 일부 골프장의 경우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아예 매물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바이 재팬(Buy Japan)’ 열기를 등에 업고 국내 건설 업체들의 일본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중견 건설 업체인 현진에버빌은 올 상반기 중 도쿄 중심지역에서 150~180 가구 규모의 고급 아파트 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지 법인을 통해 수집한 7개 사업 예정지에 대한 막판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동문건설 우림건설 롯데건설 등도 일본 사업에 관심을 갖고 부지 물색에 나서고 있다.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일본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부동산114가 운영 중인 해외 부동산 네트워크 ‘부동산114월드’에는 1년에 10여 건에 그치던 일본 부동산 투자 관련 문의가 올 들어 하루 5~6건으로 크게 늘었다. 부동산114월드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일본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는 점과 다른 나라에 비해 거리가 가까워 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면서 “도쿄 등 도심지역 재개발 대상지 등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국내 부동산 업체들도 높아지고 있는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을 반영, 일본 부동산 중개 사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루티즈코리아는 현지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인 액트넷 등과 제휴, 본격적으로 유망 매물 소개 및 컨설팅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해외 부동산 중개 회사인 맵리얼티도 올해부터 일본의 3대 시행사 중 하나인 도쿄 리버블과 제휴, 일본 유망 부동산 중개 사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이 회사 심현진 부장은 “일본은 모기지 금리가 3%대에 불과해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데다 환율 상황도 유리해 올해가 일본 부동산에 투자할 적기”라면서 “현장 확인 등 해외 부동산 투자의 기본 원칙만 지킨다면 큰 수익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다국적 부동산 기업인 CBRE의 한국지사도 최근 한 투자자로부터 일본 홋카이도 인근 골프장 투자 의뢰를 받고 매물을 찾고 있다. 한편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이 너무 올라 버블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점은 국내 투자자들이 유념할 부분이다. 사토 기자는 “도쿄 요지의 일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가와 아키하바라 등 상가점포의 평당 가격이 최근 2년 만에 30~50% 급등해 버블 이전 수준을 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