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일본 자산시장…바이재팬 러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일본이 10년간의 긴 잠에서 막 깨어나고 있다. 디플레로 상징되던 물가가 미미하지만 상승 기조로 돌아섰고 경기는 전후 최장기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게다가 경기 호조에도 불구, 엔화 가치는 2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을 유지하면서 수출마저 호조를 지속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일본 경제는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다.일본 경제가 살아나자 ‘잃어버린 10년’간 거품이 꺼지면서 상대적으로 투자가치가 높아진 부동산 주식 등 일본 내 각종 투자 자산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은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겁다.일례로 일본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개발과 투자로 도쿄가 진화하고 있다”며 “일본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구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의 평균 지가가 16년 만에 상승세로 반전한 데 이어 도쿄 도심을 중심으로 사무실 임대료와 주택 가격도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다시 버블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도쿄 도심부의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호조를 보이고 있다. 연면적 3만3000㎡ 이상, 건축된 지 20년 미만 등 일정 수준의 조건을 충족하는 사무실은 빈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민간 부동산 중개회사인 미키 쇼지에 따르면 시요다 슈요 미나토 신주쿠 시부야 등 도쿄 5개 주요 상업 지구의 사무실 공실률은 2.8%대로 1년 반째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맨션(아파트)의 분양 역시 도쿄도 전체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관련 회사의 주가도 상승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투자신탁(리츠:REITs)의 가치를 나타내는 도쿄 REIT지수는 지난해 11월 이후 여러 차례 최고치를 경신했다.일본 부동산 시장의 호황에는 경기 회복과 규제 완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으나 무엇보다도 외국 자본의 유입이 커다란 몫을 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기 회복에 따른 부동산 값 상승을 노리고 일본 부동산을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다.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2005년 일본 테마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200억 엔(1억8200만 달러)을 투자했다. 골드만삭스는 1997년 이후 일본 부동산에 총 64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80여 개의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작년에는 일본 홍콩 호주 캐나다 등에 투자하는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리얼 에스테이트 증권 펀드’를 설립, 리츠와 부동산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모건스탠리는 2005년 1월 미쓰비시로부터 도쿄 중심가의 32층짜리 빌딩을 14억 달러에 매입한 바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한 모건스탠리는 투자 규모를 2조 엔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는 모건스탠리의 해외 펀드로는 최대 규모다. 모건스탠리는 특히 향후 수년간 총 부동산 투자 자금의 40%가량을 일본에 쏟아 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 외에 각종 사모 투자 회사들과 미국의 연기금 펀드들도 일본의 리츠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사모 투자 회사인 론스타는 2~3년 전부터 가격이 크게 떨어진 일본 내 골프장을 부지런히 사들이고 있으며 10여 개를 이미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스톤도 일본 부동산에 1조2000억 엔 투자를 계획 중이다.대형 부동산 개발을 담당해 온 미즈호은행 관계자는 “도쿄 부동산 가격은 지난 10년간 겨울잠을 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아직 상승할 여력이 많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도쿄의 부동산 투자 수익률은 향후 연간 3.5% 수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장기 국채 수익률이 연 2% 이하인 것을 생각하면 1.5%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물론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 현상이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의 경우 평균 지가가 16년 만에 상승 기조로 돌아섰지만 전국 평균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이용 가치가 높은 도심의 일급 지역은 가격이 치솟는 반면 수익성이 없는 토지는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토지 양극화 현상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부동산과 더불어 주식시장에서도 ‘바이 재팬’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증시는 외국인들의 지속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2월 13일 지난해 고점을 돌파하더니 2월 22일에는 2000년 5월 8일 이후 근 7년 만에 1만8000엔대를 넘어섰다. 비록 1만8000엔 대에서 불과 나흘간 머물다 전 세계적인 급락세의 영향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조만간 다시 사상 최고치 경신을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외국인들의 일본 주식 매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지난해 일본 증시에서 무려 466억 달러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는 대만(173억 달러) 인도(79억 달러) 태국(20억 달러) 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특히 118억 달러를 순매도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더욱 대조적이다.일본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지난 2월말부터 3월초 한 주 동안은 순매도를 보였지만 연초부터 2월말까지는 꾸준히 순매수를 지속해 왔다.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이미 일본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것은 물론 유럽에는 일본 증시에만 투자하는 펀드들도 다수 생겨나고 있다. 또 자국 증시에 주로 투자했던 중동 지역 펀드들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미쓰비시 UFJ투신의 이토시마 다카토시 수석 펀드매니저는 “외국인들의 꾸준한 매입으로 닛케이 평균주가가 1만8500엔선까지는 순조롭게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고 전했다.이 같은 ‘바이 재팬’ 열풍의 가장 큰 동인은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일본 경기는 1965년 11월부터 1970년 7월까지의 57개월 연속 이어졌던 최장기 경기 확장인 소위 이자나기(일본 전설 속의 신) 경기의 기록을 넘어서고 있다. 2002년 2월부터 시작된 경기 회복세가 올초까지 60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는 것. 여기에 엔화 약세라는 호조까지 겹치면서 일본은 미국은 물론 주요 교역국에 대한 흑자 규모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2월 12일 발표된 일본의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률도 뚜렷한 일본 경기 회복세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5.5%(연율 기준)로 지난달 발표된 예상치(4.8%)는 물론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5.1%)을 훨씬 뛰어 넘었다. 올 들어 1월중 기계 수주는 5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고 소비지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또 지난 1월 자본 지출은 3.1% 증가해 예상치를 웃돌았다.작년 말 발표된 대기업 제조업 경기관측(단칸)지수도 3분기 연속 개선돼 일본 경제 회복세를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지난 2004년 3분기 이후 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기업 제조업지수는 3분기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일본 정부는 작년 말 “향후 5년간 매년 평균 3%대 중반의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공식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이는 경기 회복에 대해 그만큼 일본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일본 경기 회복에는 올해 미국의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업계로 우뚝 솟은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와 캐논 소니 등 전자 업체들의 수출 호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일본이 지난달 금리를 한 차례 올려 기준금리가 0.5%가 됐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아직도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기에는 선진국과의 금리 차이가 큰 만큼 당분간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일본 기업들의 수출도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