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주택 ‘펜트하우스’ 올가이드
마 전 서울 강남의 한 펜트하우스를 둘러본 적이 있다. 108평형의 대형 아파트였는데, 집주인이 미술 애호가였는지 거실 벽면이 멋진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통으로 내린 창을 통해 본 바깥 세상 역시 한 폭의 풍경화였다.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은 이 펜트하우스의 침실이 단 두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공간을 거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상의 변화가 펜트하우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나 할까.외국에서 ‘최고가(最高價) 아파트’ 관련기사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펜트하우스(penthouse)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펜트하우스는 이제 고급주택의 대명사가 됐다. 분양시장이 침체돼도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상품이 펜트하우스다. 최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는 경기 상황과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펜트하우스 역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방 수가 줄어드는 반면, 주차장은 넓어지고 있다. 각종 첨단장비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요즘엔 황금 욕조까지 설치될 만큼 호화롭게 지어지고 있다. 고급주택을 전문으로 분양하는 A사 관계자는 “대거 미분양이 발생하는 아파트라도 펜트하우스만큼은 가장 먼저 소진되는 게 일반적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펜트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아파트 맨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탁 트인 조망권이 일품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분양가나 매매가가 높다. 인테리어도 항상 최고급으로 꾸며진다. 요즘엔 다락방 등을 넣은 복층형 구조가 일반화하는 추세다. 보통 가구당 면적이 100평 안팎에 달할 정도로 넓다.최근 서울 상봉동에서 공급된 S아파트 98평형 펜트하우스의 경우 시가 3000만 원짜리 황금 욕조와 황금 수도꼭지가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 동부이촌동 G아파트 펜트하우스에는 개인 풀(pool)장이 들어섰다. 정동 S아파트 108평형 펜트하우스에는 100평에 달하는 널찍한 테라스가 딸려있다. 최상층에서 즐길 수 있는 가족 전용 정원인 셈이다.지방에서 공급된 펜트하우스도 화려함 면에선 서울 수준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부산 명지지구에서 공급된 Q아파트 87평형 펜트하우스는 복층형 구조로,2층에 야외 테라스가 설치됐다. 바비큐 파티를 열거나 화단을 꾸밀 수 있다.펜트하우스의 인기는 분양률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8~9월 공급된 판교 중대형 아파트 중에서 최고 인기를 끈 상품은 단연 펜트하우스였다. 서판교 현대 56평형 펜트하우스의 경우 무려 868 대 1의 최고 경쟁률을 나타냈다. 동판교 금호 57평형 펜트하우스 역시 766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파주 운정지구에서 한라건설이 내놓은 95평형 펜트하우스 4가구는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였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28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펜트하우스가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희소 가치’ 때문이다. 공급 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수요가 항상 초과 상태다. 맨 꼭대기층에 자리잡아야 펜트하우스란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 아파트 동마다 1~2개의 펜트하우스밖에 나올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희소성은 부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유혹이다. 펜트하우스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분상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됐다.최상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탁월한 조망권을 자랑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펜트하우스만의 매력이다.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조망권의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이를 증명하는 학위논문도 발표됐다. 분당신도시의 아파트 값 결정요인 분석결과 조망권 등 쾌적성 비중이 아파트 값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강장학 단국대 부동산학 박사학위 논문).특히 1994년엔 층과 향만이 아파트 값에 영향을 미쳤지만,97년엔 층 산 공원 하천 등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늘어났다. 층이 높아질수록, 즉 최상층일수록 가격이 뛴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또 아파트 소유주들의 소득이 높을수록 조망권이 아파트 구입의 주요 요소로 받아들여졌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정부가 아파트 재산세를 매길 때 조망권을 고려해 같은 단지 내에서라도 세금을 차등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희소 가치와 조망권 확보 외에 펜트하우스에선 철저한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다는 점이 또 다른 인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보통 한 층 전체를 1가구만이 사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위치여서 다른 동에서 실내를 훔쳐보기도 힘들다. 위층으로부터 층간소음의 영향을 받을 일도 없다. 사생활 보호가 부유층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란 점을 감안하면, 펜트하우스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월 임대료 4만5000달러(약 4300만 원)짜리 아파트가 최근 등장했다. 당연히 ‘펜트하우스’다. 임대료를 연간으로 계산하면 54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애틀랜타나 덴버, 피츠버그에선 이 돈으로 꽤 큰 집을 구입할 수 있다.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는 방 8개짜리 이 집은 발코니를 7개나 갖고 있다.캐나다 밴쿠버에선 1000만 캐나다달러(약 87억 원)를 호가하는 펜트하우스가 올해 초 선보였다. 캐나다에서 가장 비싼 이 아파트는 복층 구조이며, 내부 면적은 118평 정도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통유리로 된 창을 통해 인근 공원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포도주 800병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과 대규모 파티를 열 수 있는 설비도 갖춰져 있다.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펜트하우스 가격이 항상 지역 내 최고 분양가를 경신하고 있다. 작년 대구 수성구에서 분양됐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두산위브 더 제니스’도 같은 사례다. 두산산업개발은 이 아파트 1494가구를 공급하면서 유독 87~99평형 펜트하우스 13가구는 따로 분양할 수밖에 없었다. 펜트하우스 가격이 대구지역 최고가인 평당 1790만 원에 달해 동시에 분양할 경우 고분양가 논란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같은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에 나섰던 코오롱건설 역시 103평형 펜트하우스 3가구를 일반 아파트와 분리, 따로 분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대주건설은 최근 용인 공세지구에서 중대형 아파트 2000가구를 공급하면서 분양가 차별화 전략을 선택했다. 중형 아파트 가격을 평당 평균 1200만~1300만 원대로 책정했지만, 펜트하우스의 경우 평당 2000만 원의 고분양가를 내세웠다. 분양률은 가격이 비싼 펜트하우스의 압승.주택업계에선 향후 뚝섬 상업용지에서 선보일 주상복합아파트 내 펜트하우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분양가가 평당 5000만 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펜트하우스가 신규 아파트 값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펜트하우스가 큰 인기를 모으면서 향후 공급도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건설은 11월 중 성수동 옛 KT 부지에서 ‘현대 힐스테이트’ 89~92평형 펜트하우스 5가구를 선보인다. 이곳은 현대건설의 새 아파트 브랜드가 처음 적용되는 단지다.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입지적 장점을 살려 5개 동마다 최상층인 29층에 복층으로 설계한 펜트하우스를 넣었다는 게 현대건설측 설명이다. 펜트하우스 분양가는 평당 3000만~3500만 원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SK건설이 같은 달 회현동에서 공급하는 주상복합 ‘SK리더스뷰’ 30층에도 91평형 펜트하우스 12가구가 들어선다. 이 단지는 49~91평형 233가구 규모로, 남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쌍용건설도 주상복합 아파트 ‘남산 플래티넘’을 분양하면서 33층에 90평형 펜트하우스 4가구를 선보인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분양될 두 업체의 펜트하우스 분양가는 평당 2500만원 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수도권 인기 신도시에서도 펜트하우스 분양이 예정돼 있다. 송도신도시에선 포스코건설이 국제업무단지 센트럴파크 전면에 위치한 지상 47층 규모의 ‘포스코 더샵 센트럴파크1’을 내놓는다. 꼭대기 층에 114평형 펜트하우스 6가구가 나온다. 화성 동탄신도시 중심상업용지에 들어서는 메타폴리스에서도 대형 펜트하우스가 나와 실수요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전망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