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뉴비틀·BMW 미니·벤츠 스마트
어령 교수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세계적인 전자제품 회사인 소니의 정신은 ‘소형화’가 아니다. 소형화는 고성능과 연결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비단 전자제품 분야만이 아니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자동차 왕국의 자리를 가로챈 것도 소형 자동차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카메라, 시계 등 소형 휴대품에서 일본 제품들은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크기가 작다고 해서 성능까지 낮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외형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크기가 작더라도 힘세고 기능만 다양하다면 우수성을 높이 평가받는 시대다. 특히 고유가 파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소형 자동차의 매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자동차를 선택할 때 넓은 실내와 쾌적한 승차감을 원한다면 고급 대형 세단이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주말에 손수 드라이브를 즐기는 운전자에게 큰 차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고가인 데다 외형이 커 가족들에게 운전대를 맡기기도 쉽지 않다.대형 세단 중심으로 흘러갔던 한국 수입자동차 시장에 소형차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폭스바겐 뉴 비틀(New Beetle)과 BMW의 미니(Mini)다. 올드 모델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들 자동차는 재기발랄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 부담 없는 가격 때문에 상당한 구매층을 형성해가고 있다. 디자인과 장비를 조금 손보고 이름 앞머리에 ‘뉴’라고 붙이는 것은 자동차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폭스바겐 뉴비틀은 다르다. 말 그대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비틀이다. 뉴 비틀은 우리에게 ‘딱정벌레 차’로 알려진 올드 비틀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다시 디자인했다.올드 비틀은 순탄치 않은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초 독일의 히틀러는 국민 모두에게 자동차를 보급한다는 목표 아래 페르디난트 피에히 박사(포르쉐의 창업자)에게 소형차 개발을 지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카데프(KDF). 하지만 카데프는 2차대전 발발로 군용차로 개량돼 전선을 누벼야 했다. 종전 후 영국 군정에 의해 승용차 생산이 재개된 비틀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됐다. 1934년부터 생산에 들어간 비틀은 69년간 2150만 대가 팔려 단일 생산 모델로는 세계 최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비록 비틀은 단종됐지만 그 명맥이 아예 끊어진 것은 아니다. 폭스바겐은 지난 1998년 비틀을 새로이 부활시켰다. 반원 3개를 겹쳐 놓은 듯한 독특한 외관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다시 디자인하고 엔진 섀시 등은 소형차 골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동그란 지붕과 볼록 튀어나온 범퍼, 운전석 옆의 꽃병에 이르기까지 정감 어린 옛 비틀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차체는 지붕이 있는 기본형과 소프트 톱을 열어 오픈카로 만들 수 있는 카브리올레 두 가지다.115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2.0L 엔진이 장착돼 있어 가속력이 뛰어나다. 기본형이 4단 자동인 것과 달리 카브리올레에는 6단 자동 변속기가 장착돼 있어 고출력의 매력을 잘 살려준다. 뉴비틀은 운전자와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분까지도 즐겁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보디 라인을 쓰다듬고 있으면 애완견처럼 어디라도 따라올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요즘 강남권에서는 미니가 20~30대 여성 운전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미니의 매력은 단순히 외형에 그치지 않는다. 고성능 슈퍼차저 엔진으로 무장한 쿠퍼S는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맹렬한 질주로 주변을 놀라게 한다. 미니 역시 비틀 만큼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구형 미니는 수에즈 운하 봉쇄로 인한 유럽의 석유 파동 시기에 최적의 공간 활용성과 높은 연비를 앞세워 등장했다. 불세출의 자동차 디자이너 알렉 이시고니스가 만들어 낸 오스틴 세븐 미니(1959년)는 초소형 차체 속에 앞바퀴 굴림 구동계와 4인승 실내, 뒤쪽에 트렁크 공간까지 확보했다. 영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로 몇 번이나 회사가 통폐합되는 위기 속에서도 미니는 모델 교체 없이 40년이라는 세월을 꿋꿋이 유지해 왔다.잠시 유동성을 겪게 된 BMW는 로버를 매각했지만 미니만큼은 팔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신형 미니는 BMW 경영진의 기대에 부응하듯 당초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어 소위 ‘없어서 못 파는 차’가 됐다. BMW는 지난 2004년 19만 대를 생산하고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결국 옥스퍼드에 새로운 생산 라인을 증설해야 할 정도로 미니의 인기는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BMW의 설계로 다시 태어난 신형 미니는 외형이 커졌지만 미소를 자아내는 디자인만큼은 여전하다. 동그랗게 뜬 눈과 하얀 지붕, 네 구석에 몰아놓은 바퀴에서 초대 미니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실내 분위기도 위트가 넘친다.국내에는 고성능 쿠퍼와 쿠퍼S 두 가지가 판매되고 있다. 쿠퍼는 직렬 4기통 1.6L DOHC 115마력. 슈퍼 차저가 달린 쿠퍼S는 163마력의 강력한 힘을 낸다. 여기에 자동 6단 변속기까지 장착돼 있어 웬만한 중형 세단 이상의 성능을 자랑한다. 서스펜션은 움직임이 적어 승차감이 다소 떨어지지만 구불거리는 도로에서는 놀라운 코너링을 맛볼 수 있다.국내에서 아직 인지도가 낮지만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폭스바겐과 자웅을 겨루고 있는 푸조 206은 기본형 해치백 외에 전동 접이식 지붕이 달린 206CC와 고성능형 206RC 등으로 구분된다. 현재 국내 시장에는 신제품 207 출시를 앞두고 왜건형 SW와 고성능 버전 RC가 판매되고 있다. 206RC는 아기 사자를 연상시키는 유럽 순수 혈통의 핫 해치백(Hot hatch back)이다. 작은 해치백 차체에 고성능 엔진과 스포츠 서스펜션을 달아 스포츠 주행을 맛볼 수 있도록 해 유럽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랠리 챔피언 출신의 206을 바탕으로 완성된 206RC는 2.0L 180마력 엔진에 수동 변속기를 갖추고 있다. 206RC의 매력은 강원도 산악 도로처럼 구불거리는 길에서 절정에 달한다.스마트는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의 일원으로 아직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고 있다. 소형차 왕국 유럽에서조차 초소형 클래스에 드는 스마트는 깜찍한 크기와 디자인, 색상으로 자동차 마니아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원래 메르세데스 벤츠가 시계 메이커 스와치와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벤츠 자회사가 됐다. 2인승의 스마트 포투는 국내 경차와 비교해도 한결 작은 몸집. 길이 2.5m, 휠베이스(축간거리) 1.8m에 엔진도 3기통 698cc 50마력에 불과하다. 포투는 작고 싼 차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탈착식 지붕 버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조립식 보디 패널을 교환하면 차체 색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