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왜 리모델링인가

르시(Bercy). 프랑스 파리 시내에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곳이다.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파리 시민들이 주로 찾는 장소다. 최근 파리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베르시를 다녀 온 회사원 이명주씨는 “베르시는 분명 파리 안에 있지만 파리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베르시를 다시 떠올렸다.베르시에 파리지엔들이 몰리는 것은 리모델링 효과 때문이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 바로 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뛰어난 베르시는 17, 18세기에 파리 귀족들의 휴양지였다. 귀족들이 모이는 곳에 와인도 빠질 수 없었는지 베르시는 와인의 집결지로도 유명하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베르시는 과거의 영화(榮華)를 지닌 한낱 마을에 불과했을 것이다.1970년대 말 베르시는 새롭게 태어났다. 옛 건물의 골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 인테리어를 현대식으로 새단장했다. 건물 내부 모습은 달라졌지만 와인 집결지라는 베르시의 이미지는 살려 나갔다. 싼 가격에 와인을 구입하려는 파리지엔들이 베르시로 몰려들자 쇼핑몰, 레스토랑들도 생겨났다. 이제 베르시는 파리 시민들의 쇼핑 천국으로 탈바꿈했다. 굳이 베르시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리모델링은 가치를 올리는 주요한 투자 행위로 떠오르고 있다. 리모델링 투자 시대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신축으로 수익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리모델링 투자 시대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기존 자산을 활용해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기존 자산을 가꾸고 보존하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표적 국가를 꼽으라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이와 관련해 한 국제경제학자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만약 한국과 이탈리아가 동시에 외환위기에 빠졌다고 가정하자. 두 나라가 똑같이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기구에 SOS를 쳤다. 그럴 때 국제기구는 한국과 이탈리아 가운데 어느 나라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할까. 그 경제학자는 이탈리아 편에 손을 들었다. 이유는 이탈리아가 외환위기를 겪는다고 하더라도 외국 관광객은 로마에 돈을 뿌리고 다닐 게 분명해서란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유적과 건물이 한국의 제조업보다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다. 기존 자산을 가꾸고 보존하는 리모델링에 조금씩 투자해 두면 후손까지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셈이라는 것을 이탈리아나 프랑스 사례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름난 건물이나 도시 리모델링만 가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가치 투자의 중요한 포인트다. 선뜻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 가지 기준을 갖고 주택 리모델링에 나선다면 가치 있는 투자를 결정하는 셈이다.‘가족의 재발견과 자연의 재발견’을 주택 리모델링의 두 가지 기준으로 삼아보자. 먼저 내 가족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주택 리모델링의 첫 걸음이다. 아이가 둘 있는 가정에서 큰 방을 서로 차지하겠다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습관적으로 첫째에게 큰 방을 준다면 자식을 제대로 발견하지 않은 것이다. 둘 중에 장난감 등 살림살이가 많고 친구 초대가 더 많은 아이에게 큰 방을 배정하는 것이 넓은 의미의 리모델링 공간 분할이다.다른 가족 구성원보다 상대적으로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내가 싱크대 높이 부조화로 어깨가 결리지 않는지, 주방의 너저분함이 아내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비계획적인 동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등등을 눈여겨보고 개선하는 것이 리모델링의 시작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휴식 공간을 찾아보는 것도 리모델링의 한 단계다.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공간 분할이나 재배치를 머릿속에 그린 다음에는 나만의, 또는 우리 가족만의 개성을 연출할 수 있는 색상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 가족의 재발견 과정 가운데 하나다. 사실 가족에 어울리는 색상을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만족이 커질 것이다.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리모델링이 정말 가치 투자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시세 차익이라는 유형의 가치만 따지고 들면 리모델링은 당대의 투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리모델링은 분명히 미래 투자요, 가치 투자다. 예컨대 주부의 만성적인 어깨 결림이 주부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값으로 따진다면 시세 차익보다 비중이 낮은 것일까. 남편이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얻지 못해 작업 능률이 떨어지면 시세 차익으로 만회될 수 있을까. 주택을 돈의 개념으로만 접근하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돈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가족의 재발견을 통해 얻는 무형의 가치가 당장 숫자로 나타나는 액수보다는 훨씬 크리라. 그래서 가족의 재발견을 리모델링의 첫째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리모델링의 또 다른 기준으로 꼽히는 자연의 재발견은 가족 건강과도 직결된다. 자연 공간 속에 지어진 주택은 자연의 일부다. 인간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주택에는 자연 현상이 일어난다. 결로(結露)가 대표적이다. 실내외 온도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결로가 누적되면 그곳에 먼지가 쌓여 곰팡이의 자양분이 된다. 곰팡이는 각종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때로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실내외 온도 차이가 어떻게 결로로 이어지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모르고 지나쳤거나 잊고 지냈던 자연을 재발견하고 눈을 뜨는 과정이다. 집안 결로를 없애는 작업도 대단히 중요한 리모델링이다. 가족 건강을 위해 결로를 방지하는 데 돈을 쓰는 것만큼 가치 있는 투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주택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구경하는 집’과 똑같이 집을 꾸며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집과 ‘구경하는 집’의 자연환경 여건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나, 또는 가족의 개성을 살리고 자연과 조화를 맞춰가는 것이 리모델링 투자 시대의 정공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