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지선정·교통·원주민들과 조화 이뤄야

삼익건설 부회장을 지낸 황대석씨(66)는 지난 98년부터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두산리 산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20년 동안 시멘트를 만들고(쌍용양회), 나머지 20년은 시멘트로 집을 짓는 건설회사(삼익건설)에서 일하며 도시에서 살았다.그렇게 꽉 막히고 삭막한 회색 도시의 아파트에 살다가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내려온 것이 8년 전. 계곡 가에 통나무집 한 채를 짓고 자한재(自閑齋)라는 당호를 달았다. 젊었을 때부터 야생화를 좋아해 산을 자주 찾던 황씨가 이곳을 처음 왔을 때 지천으로 널려 있던 것이 칼잎용담, 나리꽃, 며느리밥풀꽃, 술패랭이 등이었다. 그래서 두말없이 7000평의 임야를 매입하고 통나무집을 한 채 지었다.그는 지금 3000여 평의 밭에 1000평짜리 비닐하우스 3동을 짓고 약 400종의 자생식물과 야생화를 키우며 산다. 취미생활이 이제는 ‘업(業)’의 경지에 올라 영월군으로부터 ‘자원화 식물 보존·육성 및 보급농가 제1호’로 지정됐다. 물론 수입도 적지 않다. 자생 야생화 붐을 타고 지방자치단체에 조경으로 많이 나간다. 경기고, 서울공대를 나와 나름대로 돈도 벌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 세속적 출세도 지금의 야생화 키우는 보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최근 황씨처럼 일부 상류층을 중심으로 은퇴 후 시골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기는 이른바 ‘웰빙형 실버세대’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자녀교육을 마친 기업대표나 고위 공직자 등이 서울과 가까운 지역이나 강원도에 조성 중인 전원주택단지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미리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전원생활을 연습하다가 은퇴 후 완전히 정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으로써 정착 실패에 따른 시간과 비용 등의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다.사실 ‘꿈과 환상’만 가지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배타적인 마을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다시 유턴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2003년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던 김도영씨가 그 같은 경우다. 부천에서 제법 규모가 큰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김씨는 건강이 크게 악화되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시골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겠다는 생각으로 기존 자연부락 초입에 집터를 잡고 목조주택을 지었다.평소 원예와 조경 등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넓은 잔디마당에 각종 조경수를 심는 등 집 가꾸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됐다. 그만그만한 농가주택들이 들어선 시골동네 초입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하얀 목조주택이 들어서니 주민들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매우 내성적이었던 김씨의 성격도 문제였다. 동네사람들을 사귀는 데 그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그것이 뒷날 화근이 됐다. 그저 막연하게 시골은 인심이 좋으니까 아무 문제없이 차츰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시골 인심을 얻는 데도 소극적이었던 것. 그러던 중 동네사람 하나가 호의를 가지고 김씨에게 음식을 나눠준 적이 있었는데, 입맛에 맞지 않아 몰래 가져다 버린 일이 알려졌다. 결국 사소한 갈등들이 쌓여 동네 경조사 등에서도 소외되는 등 관계가 서먹해지면서 견딜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때문에 미리 땅을 사놓고 주말마다 내려가 어느 정도 적응한 다음에 완전히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전원생활을 시작하는 데는 생각보다 걸림돌이 많다. 때문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은퇴 후의 정착을 위한 실버용 주택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조건이다. 시골에서는 겨울이 가장 무섭다. 특히 노년층은 환절기에 고생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일단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따뜻한 남향받이가 좋다. 풍광이 좋다고 호반이나 강변 땅을 찾는데 이런 곳은 상습적인 안개지역으로 폐질환이나 관절염이 많은 실버 세대에게는 오히려 금물이다.평생 모은 재산을 활용해 여생을 보내야 하는 만큼, 소요자금 규모도 적정선에서 잘 조절해야 한다. 부동산 투자는 일단 감행하고 나면 자금 규모를 조절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처음부터 과욕을 버리고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건축비 지출에서 무리가 많이 빚어지는데, 주말에 놀러올 자녀들을 위해 방이 더 필요하다면 차라리 따로 별채를 짓는 게 좋다.주변에 어떤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지도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항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병원과의 접근성. 1시간 20분 이내에 종합병원이 있는 도심까지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안전하다. 그러려면 긴급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119구급대나 파출소가 20분 이내 거리에 있어야 한다.텃밭 소유 가능 여부도 필수 체크 사항이다. 갑자기 낯선 곳으로 집을 옮기면 당장 소일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텃밭이라도 가꾸며 지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텃밭에 직접 무공해로 기른 야채를 주말마다 내려오는 자식들에게 듬뿍 안겨 주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다. 부부 둘이 산다면 텃밭 100평만 가꾸어도 1년 내내 한가할 겨를이 없을 정도가 된다.은퇴 후 정착을 위한 실버용 주택은 일단 출퇴근용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교통여건 등에 큰 제약이 없다. 하지만 주말에 찾아올 자녀들의 수고도 감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딴 전원주택에 이주해 살 경우 주말에라도 찾아오는 자녀들이 큰 위안이 되기 때문에 가급적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는 곳을 선택한다. 자녀 또는 손자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지역으로는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인 경기도 양평·여주·이천, 강원도 횡성·원주 등을 꼽을 수 있다.결론적으로 전원주택으로 이주하는 일은 생활기반 자체를 송두리째 도시에서 시골로 옮기는 일인 만큼 각별한 마음가짐과 치밀한 사전계획이 수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