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of Flower

아나운서 이병희. 그녀는 새벽을 깨우고 아침을 여는 방송인이다. 1998년 서울방송(SBS)에 입사한 그녀는 6년간 ‘생방송 모닝와이드’의 진행을 맡고 있고 ‘이병희의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새벽 라디오 방송의 DJ로도 활약하고 있다. 방송시간대가 그래서인가 그녀에게선 화려하기보다는 참한 여자의 향내가 묻어난다.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그녀가 요즘 플로리스트의 세계에 빠져 있다. 미모의 아나운서가 플로리스트의 세계에 빠진 사연을 들어봤다.“향기나는 세상 만들래요”방송국 퇴근하자마자 플로리스트 세계에 푹 빠져“식구 많은 집에서 내가 쓸 방이 따로 생긴 것처럼 즐겁습니다. 제 작업실 ‘더 플라워스’에 오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병희 아나운서는 영락없이 꽃을 닮았다. 화려한 방송인으로서 인생의 피크에 서 있는 요즘. 그는 플로리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흡사 화려하게 꽃 봉우리를 터뜨린 후 그 빈자리를 파란 옷으로 갈아입는 여느 봄꽃 같다. “꽃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취미로 하는 일이 크게 부각되는 것은 부담스럽네요.” 그의 사려 깊은 말투에서 신뢰감이 느껴진다. “플로리스트는 평소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꽃을 가꾼다는 것은 내 마음을 가꾸는 것이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고 시절부터 꿈꿔오던 일입니다.”그녀는 새벽방송을 하기 때문에 새벽에 회사에 출근하고, 오후 2시에 퇴근한다. 오전에는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오후에는 청담동에 자리한 ‘더 플라워스’라는 꽃집에서 플로리스트로 변신하는 것. 투잡(Two Job)의 주인공인 셈이다.정신없이 바쁜 일과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처음에는 새벽녘에 집을 나와 오후에 퇴근하자마자 꽃집에 들러 작업을 하는 일정이 조금 빡빡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적응을 했는지 한결 수월해진 느낌. 새벽에 회사에 나와 7시30분부터 시작하는 생방송 모닝와이드를 숨 가쁘게 진행한 후,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사운드 오브 뮤직과 관련한 일을 본다. 요즘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새로운 코너인 ‘뮤직 데이트’를 진행하면서 방송의 재미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녀의 꽃에 대한 열정은 상상 이상이다.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던 그녀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 마당에는 계절마다 각기 다른 꽃들이 폈다. 그 꽃들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꺾어 좋아하는 선생님 책상 위에 몰래 올려놓곤 했다고 한다. 이병희 아나운서는 그때부터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누구보다 꽃을 좋아하던 그녀는 작은 언니가 지난해 문을 연 아담한 꽃집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꽃 장식 전문가인 플로리스트까지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플로리스트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리라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와 망설임 없이 시작하게 됐어요. 좋아하는 꽃을 하루 종일 만지작거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꽃에 대한 열정은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지난 2002년,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영국으로 건너가 플라워 디자인 스쿨 과정을 이수한 것. 그녀가 공부한 곳은 평소 흠모해 오던 세계적인 플로리스트 폴라 프라이크의 플라워 디자인 스쿨. 그녀가 폴라 프라이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강렬한 컬러를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능력 때문이다. 지금도 프라이크가 펴낸 책을 가까이 두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방송과 또 다른 매력 지닌 플로리스트 세계그녀 방송 일을 하면서 꽃집에 마음껏 매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이어서인지 자꾸 욕심이 났다고 한다. 플로리스트로서 그의 활동 영역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코엑스에서 열린 홈데코 페어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또 짬짬이 크고 작은 이벤트나 파티의 꽃 장식을 만들고 있다. “행사 장식의 포인트는 꽃다발을 조그맣게 여러개 만들어 테이블 위를 장식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행사가 끝난 후에 참석한 손님들이 하나씩 들고 갈 수 있어서 좋아요. 가져가시는 분들도 선물받는 느낌이라서 기분이 좋고 저도 나중에 따로 처리할 필요가 없어 실용적이에요. 계속 이런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가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냥 꽃을 장식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겐가 선물한다고 생각하면 꽃 작업에 신바람이 납니다.”플로리스트 이병희는 방송인 이병희 못지 않게 바쁘다. 꽃집에서 매일 오후에 열리는 취미 강좌에는 벌써 팬들이 넘쳐난다. 그녀는 고급반과 원데이 클래스로 나눠 강의 중이며 수강생들의 실력이 향상될 때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날로 높아지는 꽃의 인기와 비전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갑자기 붐을 이루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직업으로서 장래성과, 사업적 측면을 봤을 때 수익성이 궁금해졌다. “대체로 전망이 밝다고 생각해요. 청담동 일대에 비슷한 컨셉트의 꽃집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것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승부한다면 좋은 사업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대 앞에 아기자기하면서도 색깔이 확실한 꽃집을 차려 동네 꽃집과 차별화하는 식으로요.”실제로 그녀가 영국 단기연수를 갔을 때만 해도 한국인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곳의 반수 이상이 한국 학생들이라고 하니 플로리스트의 주가가 올라간 것도 사실인 듯. 가끔 플로리스트 지망생이나 취미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언을 구해올 때면 높아진 인기를 실감한다고.거베라처럼 은은한 아름다움 지속하고파“1년을 꾸준히 하다보니 단골 고객도 많이 생겼어요. 한 번 왔던 손님이 다시 찾아올 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기억에 남는 고객들로는 프로포즈를 위해 꽃을 특별 주문하는 남자들을 꼽고 싶어요. 요즘 남자들은 꽃의 종류나 색상의 배열, 포장지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주문하기도 해 가끔 놀라요. 그럴 때는 ‘내가 이런 꽃을 받으면 프로포즈를 받아들여야지’라며 속으로 웃곤 합니다.”방송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했던 플로리스트가 이제 그녀 삶의 한 부분이 돼 버렸다. 욕심을 많이 낸 만큼 힘이 부칠 때도 있지만 헬스나 훌라후프 등으로 건강관리를 하면서 페이스를 조절한다고. 또 다른 취미 생활로 하고 있는 갤러리 투어도 앞으로 꾸준히 할 생각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1년 단위로 하는 프로그램이며 현재 3년째 접어들고 있다. 미술관에서 본 예쁜 그림들에서 영감을 얻어 꽃을 장식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비디오아트나 설치미술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귀엽고 발랄한 플라워 브랜드, 더 플라워스’라는 앙증맞은 문구가 벽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 그녀만의 소중한 아틀리에는 오늘도 싱싱한 꽃들로 가득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인 거베라처럼 튀지 않으면서도 생명력이 긴 플로리스트로 남길 바란다. 장소 협찬 더 플라워스(547-5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