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업계의 ‘적토마’ 오경의 서울 마주협회장

서울마주협회 오경의 회장은 마주업계에서 ‘적토마’로 통한다. 저돌적인 성격에 추진력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오 회장은 한번 정한 목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부터 3년간 한국마사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총 1700억원을 들여 4만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관람대를 증축했고, 외국 유명 씨수말들을 생산농가에 무료로 교배시켜 국산말 개량에 기여했다. 또 경마에 대한 왜곡된 사회 인식을 바꿔놓기 위해 퍼블릭 골프장으로 운영됐던 경주로 내 공원에 어린이놀이터, 운동장, 원두막, 연못 등을 만들어 대중화에 크게 앞장섰다.오 회장이 지난 3월 제5대 서울마주협회장에 취임한 배경도 이 같은 추진력과 무관치 않다. 최근 경마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사행산업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다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2년 새 매출액이 무려 30%나 급감했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 회장이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서울마주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것. 그동안 항상 경선을 거쳐 회장을 선출해온 협회의 전례를 놓고 볼 때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다. 마주들이 그를 위기의 경마산업을 살려낼 ‘구원투수’로 생각한 것이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중순 과천 경마공원 내 서울마주협회로 오 회장을 찾아갔다. 그는 “초창기부터 경마산업에 관여해온 사람으로서 경마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오 회장을 통해 경마와 경주마 투자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경마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경마산업의 씨앗을 뿌린 분으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국내 경마시장은 지난 2002년을 정점으로 매출액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개방화 압력도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세계화 국제화 바람이 부는 상황에 경마산업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지요. 한국마사회장 시절 외국 경마장을 순회하면서 마주들의 권위와 명예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대상경주가 열릴 때 영연방국가 각료급 인사들이 마주 자격으로 참가, 국가 간의 화목을 다지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한 나라의 수상이 되기보다 더비경주 우승마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마주의 사회적 위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경마를 사행산업으로 보는 인식이 아직도 많습니다. “현재 한국마사회는 레저세 교육세 등의 명목으로 연간 1조4000억원을 세금으로 내고 있으며 축산발전기금 농어촌사회복지기금 등의 특별적립금에도 매년 1000억원대의 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결코 벌어들인 돈을 모두 마사회나 마주들이 가져가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도 협회는 경마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대국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마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 중요할텐데요.“물론입니다. 그렇지만 마주단체는 서울마주협회와 과천경마클럽으로 양분돼 있습니다. 마주단체가 하나로 결집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불황을 헤쳐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인중승천(人衆勝天)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는 뜻이지요. 과천마주클럽과의 통합에 일단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경마제도도 손볼 계획입니다. 경마상금을 현실화시키고 경주마 구매 방법과 경주마 위탁관리계약 등을 개선하겠습니다. -마주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와 말사랑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말은 인류와 함께 계속해온 동물입니다. 말처럼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준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올림픽 종목 중에서 동물이 나오는 유일한 종목이 승마입니다. 말은 액운을 좇는 길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12지간에도 말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과 인연을 맺은 것은 마사회장을 마치고 난 직후부터입니다. 지금 총 3마리를 갖고 있습니다. 매주 과천경마공원에 갈 때마다 마방(경주마 숙소)에 들러 말들을 봅니다. 제 말이 뛰는 날은 온 가족이 총출동합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도 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주로서 얼마나 수익을 내고 계십니까?“지난해 5700만원 정도를 벌어 전체 마주 중 152등 하는데 그쳤습니다. 중간 정도죠. 저는 말을 갖고 돈을 버는데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다보니 이 정도나 벌었네요.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 근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성적이 더 좋네요(웃음). 알아보니 지난 5월까지만 3800만원 정도의 상금을 탔다고 합니다. 보유 중인 3마리 중 ‘트리블레이터’가 1등으로 두 번 들어와 상금이 많았습니다. 나머지 두 마리의 말 이름은 ‘굳셈’과 ‘복주’입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그냥 뛰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좋네요.” -부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돈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만 한편으로 어려운 얘기여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옛말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동에서 ‘오부잣집’ 자식으로 불렸습니다. 5대째 부를 이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제 대에 전통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해 왔는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편한 여당생활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余慶)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경주 최부잣집만큼 안동 오부잣집도 남에게 적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후손들에게 도움을 줘 이렇게 다행스럽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돈을 항상 내쪽에서 먼저 써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내가 먼저 베풀어야 남에게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 조상님들의 부에 대한 철학을 저 역시 동감합니다.”오 회장 책상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말 없는 경마 없고 마주 없는 말 없다.’인터뷰 내내 그는 경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연신 개탄했다. 이러한 인식이 굳어질수록 국내 경마산업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좌우명은 ‘공여지용전(公於之勇戰)하고 사어지겁전(私於之怯戰)하라’이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선 싸우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선 조용히 물러나라”는 뜻이다. 정치인, 공직자로 재직하면서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던 말이라고 한다. 오 회장은 “앞으로 마주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도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이 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