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맨리 크리스티 부사장의 예술품 투자 훈수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www.christies.com)는 소더비와 함께 세계 예술품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업체다. 18세기에 설립된 크리스티는 전 세계 15곳에서 매년 800회 이상의 경매를 열고 있다. 크리스티를 통해 거래되는 동산(動産)물건이 1년에 수만 건은 족히 넘는다. 경매물건은 도자기 장롱 등 고미술품은 물론 조각,유화작품,가구,와인,보석,시계 등 시공과 장르의 벽이 따로 없이 다양하다. 한마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거래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이런 크리스티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군은 과연 누구일까. 매도인과 매수인 간 거래를 촉진시키기 위해선 모든 영역이 중요하다로 할 수 있지만,해당 미술품의 현재 가치를 책정하는 것은 미술품 경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선 이 같은 직업군을 두고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부른다. 스페셜리스트는 멋진 예술품의 가치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수요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미술품 경매에서 스페셜리스트는 그 이름처럼 정말 ‘특별한’ 존재다.보고 버는 즐거움 동시에 얻어현재 뉴욕 크리스티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 중인 로버트 맨리(Robert Manley) 부사장이 최근 한국을 다녀갔다. 뉴욕크리스티에서 아시아 미술품을 담당하고 있는 맨리 부사장은 미술품 투자에 대해 “예술품 투자가 돈을 버는 최상의 방법은 아니지만 완상(玩賞)의 즐거움과 투자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그는 현대미술의 전문가다. “현대 미술품은 장르와 가격대가 다양합니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뜻이지요. 성장 가능성이 큰 신진작가의 작품을 구입해 두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맨리 부사장은 “관심있는 작품이 있으면 해당 작가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해당 작품이 작가의 장점을 잘 부각한 것이라면 구입해도 무방하다”고 조언한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블루칩을 선취매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어떤 작품이 블루칩이 될 수 있을까.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대표작을 말한다. 실제로 이런 작품을 구입하면 비록 값은 비싸지만 손해를 입지는 않는다는 게 맨리 부사장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작가 및 미술사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아두는 게 미술품 투자의 ABC라고 덧붙인다. 유명작가 ‘블루칩’ 투자 큰 손해 없어맨리 부사장은 뉴욕크리스티의 경매를 총괄 기획하는 한편 경매에 출품되는 현대미술품을 감정한 뒤 고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최근 감정한 작품을 보면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 1세대인 미국의 클리프 스틸의 회화,설치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스미스,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조각 작품 등이 그의 평론을 통해 새롭게 평가받았다. 경매에 앞서 작품의 실질 가치를 쥐락펴락하는 ‘심판장’인 셈이다. 최근 미술품 경매시장은 ‘세계화’의 격랑 속에 휩싸여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주도하던 미술시장에 아시아나 중남미,아프리카 등 제3세계권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는 것.“지난 5년 동안 현대미술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장르도 다양하고 완성도도 매우 높습니다. 경매 장소도 파리나 런던,뉴욕 일변도에서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한국이나 일본의 유명 화랑에서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작품을 구입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구매자와 판매자 간 간격이 더욱 좁혀졌다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그는 투자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미술품 경매시장만한 게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일부 국가의 경기가 불황이라도 다른 나라들에선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사례가 많아 투자기회가 늘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9·11테러 이후 미국경제가 침체를 겪었지만 유로화 강세 영향으로 유럽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경매자금이 급속히 옮겨간 적도 있다고 맨리 부사장은 설명했다.한국 색채와 보편적 주제 결합되면 걸작맨리 부사장은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 국가들의 금리가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전쟁,테러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주변 여건이 미술품 등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 붐을 만들고 있다”고 해석했다. 물론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생기는 시장 확장은 긍정적인 대목이다.“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출품되고 있고 이에 거래가 더욱 활발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시장에 대한 낙관이 지나쳐 가격 평가의 균형감각을 잃어서는 안되겠지요.” 맨리 부사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 미술시장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보였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게 평가했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로는 백남준,이불,서도호씨 정도. 특히 서도호씨에 대해서 맨리 부사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반투명의 나일론 천으로 자신의 집을 표현해낸 서도호의 작품 ‘퍼팩트 홈2(Perpact Home2)’에 대해 “일상생활에 널려 있는 소재들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승화시키는 재주를 가졌다”면서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매료됐으며 뉴욕에 있는 다른 스페셜리스트나 가까운 친구들 역시 서도호의 작품을 매우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맨리 부사장은 “한국인의 성실성과 창의성이 한국작가의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며 “한국적 색채가 삶과 죽음,성(性)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와 만난다면 더욱 멋진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766년 영국의 사업가 제임스 크리스티가 설립한 크리스티는 현재 전 세계 39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고 15개의 경매장과 84개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작품 소장자가 경매를 의뢰해 오면 스페셜리스트의 감정을 시작으로 경매절차에 들어간다.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낙찰가는 해당 작품의 제작연대나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결정된다.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가격 거품에 대해 맨리 부사장은 “가격 거품에 대한 우려의 소리는 늘 존재한다”면서 “리서치를 통해 고객들의 손해를 최소화시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맨리 부사장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국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작품들을 멋지게 선보일 수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갤러리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지요.”©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