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투자시대 ‘야전사령관’…수조원 쥐락펴락

펀드 르네상스의 주역은 뭐니뭐니 해도 펀드매니저다. 이들이 고객이 맡긴 돈을 잘 운용해 주고, 이 때문에 신규 자금이 몰려들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는 지난 99년 ‘바이코리아’ 열풍과 함께 주목받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가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30대 일류대 출신…유학파 급부상여의도 증권가에서 최고 연봉을 받으며 전문인으로 대접받고 있는 펀드매니저.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총 458명의 펀드매니저 가운데 31~35세가 210명으로 가장 많았고, 36~40세가 176명으로 대부분이 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30세 이하도 22명이나 됐고, 46세 이상은 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11%인 50명이 운용경력 10년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고, 83.7%는 10년 미만, 5년 이상 되는 펀드매니저는 40%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대(95명), 연세대(93명), 고려대(92명) 출신이 각각 20% 이상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석사 이상의 학력 소지자가 191명(43.2%)으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으로 간주되고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도 7명(2%)에 달했다. 펀드매니저 대부분은 투신운용사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 증권업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전체의 79%가 증권업계에서 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엔 미국이나 영국 등 유명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해외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시간 투자정보 모니터링펀드매니저의 출근시간은 대략 오전 7시 전후. 수조원의 자금을 쥐락펴락하는 이들에게 이 시간도 그리 이른 게 아닌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이들에게 낮과 밤은 없다. 수익률이라는 과실을 놓고 분초를 다투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은 때론 ‘전사’이며 때론 ‘야전사령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실제로 매매를 하기도 하며, 이를 위해 쉴 새 없이 전략을 짠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김상백 주식운용본부장은 매일 오전 5시20분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조간신문을 보며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경제 및 사회변화에 대해 체크하는 것이다. 2시간 남짓 신문과 TV,인터넷을 통해 미국 등 해외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한 후 회사로 향한다. 오전 7시20분께 출근하면 e메일과 증권사에서 보내온 리포트를 체크한 뒤 매매준비에 나선다. 장이 마감되는 오후 3시까지는 일진일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다. 장을 마감한 뒤에도 한가하게 쉴 시간이 없다. 장이 마감되면 매매내역을 확인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이어 기업탐방과 각계의 지인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다.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보기 위해선 밖에서 시장을 관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이때 지인들의 생각이 도움이 된다. 김 본부장이 귀가하는 시간은 밤 11시30분께. 파김치가 돼 있다.펀드매니저 대부분이 이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펀드매니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장기 투자형과 모멘텀 투자형이다. 이채원 한국투자증권 상무는 대표적인 장기 투자형으로 꼽힌다. 향후 빛을 볼 저평가 종목을 사둔 뒤 목표주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다. 김상백 한국투자신탁운용 본부장도 이런 부류다. 반면 장인환 KTB자산운용사장은 매매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모멘텀만 있으면 매매에 나서는 스타일이다. 박건영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사도 장 사장과 닮은 꼴이다. 펀드매니저들은 독서를 많이 한다. 장기 투자형과 모멘텀 투자형정치 경제 문화관련 책을 다양하게 접한다. 국경이 따로 없는 요즘 정보 사이의 벽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분야에 통달해야 한다. 매니저는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흐름을 보기 위한 안목을 독서에서 찾는 것이다.이들이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세계 최고 펀드매니저들의 투자 스타일도 다양하다. 실생활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는 피터 린치와 철저한 기업가치에서 투자 판단을 하는 워런 버핏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마젤란펀드를 운용하는 린치는 위대한 펀드매니저이자 뛰어난 저술가다. 그는 기업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판다. 항상 현장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반면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버핏은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유·무형 가치를 투자 판단의 중요한 척도로 삼는 ‘가치투자’를 신봉한다. 최근 해외펀드가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프랭클린 템플턴투자신탁운용의 템플턴경은 “돈 버는 자체보다는 다른 사람을 돕고 정신적 진보에 도움을 주는 게 투자”라고 말한다. 이 정도면 펀드매니저를 ‘자본시장의 총아’로 부를 만하다.우리나라에선 장수하는 펀드매니저가 드물다. 시장 참가자의 조급한 투자성향과 세련되지 못한 평가시스템이 이들의 수명을 단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 지나치게 단기실적에 연연해 실적이 나쁘면 거칠게 항의하는 데다 자주 환매에 나서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평가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 펀드매니저를 평가하는데 3년 이상의 성과를 보고 판단한다. 반면 국내에선 고작 6개월에서 1년 새 수익률을 보고 평가한다. 심지어는 3개월 만에 수익률이 나쁘다고 인사 이동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재직기간이 3년이 넘는 사람이 드문 편이다. 그러다보니 긴장의 순간이 잦고 스트레스는 엄청나 건강이 나빠지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로 펀드매니저 중 50대는 거의 없다. 펀드매니저 가운데 ‘큰형’인 운용본부장이 대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드매니저는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정년은 짧아지고 수명은 길어지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의 재테크를 대신 책임질 펀드매니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