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펀드 만들어 젊은 작가 키우고 해외 작품에 투자”
술품은 완상(玩賞)하는 맛도 있지만 투자대상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한마디로 양수겸장의 매력을 가진 투자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품 경매정보업체 아트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전 세계 미술품 투자수익률은 연 22.3%였으며 영국 런던의 미술품 가격은 지난 2001년 1월과 비교해 볼 때 무려 92%나 급상승해 부동산 가격(91%)보다도 상승률이 높았다.미국, 유럽 등에서는 투자펀드로 유명작가의 미술품을 구입해 5~10년이 지난 뒤 시장에 내다 팔아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게 보편화돼 있다. 물론 보유기간에 수집가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그 어떤 금액으로도 환산할 수 없다. 세계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지난해 매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도 미술품 시장의 열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이에 비해 국내 미술품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제대로 된 시장조차 형성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시장이 마련되지 않아 가격에 대한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과 같은 미술품 경매회사의 성장이 시급한 과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달 중 국내에서 미술품을 경매하는 회사가 또 하나 설립된다는 것은 미술계에서 볼 때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11월9일 첫 경매를 실시하는 K-옥션 김순응 대표는 국내 미술계의 열악한 시장 환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미술품 거래시장을 개척해 나간 경매시장의 산증인이자 개척자다. 서울옥션 사장을 역임했던 김 대표는 국내 미술 시장에 대해 “경기불황과 미술품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아 건국 이후 최대의 불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국내 미술시장의 근본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예전에 모 종합일간지에 미술과 시장에 관련된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 미술작품 가격이 너무 저평가돼 있다는 내용이었지요. 한 독자가 항의 편지를 보내 왔더군요. 물론 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죠. 그 독자는 자신이 A라는 작품을 100만원에 구입했는데 나중에 다른 데 가 보니 같은 작가의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작품이 30만원이었다고 하더군요. 가격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평가됐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김 대표는 “이 같은 이중가격제의 폐해가 수요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미술품은 950억원어치이지만 반대로 국내에서 수출된 미술품은 400억원(추정)에 불과하다. 값이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해외에 내다 팔려고 해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1, 2차 거래가 모두 화랑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시장이 점차 위축되고 있습니다. 특히 거래시장의 위축은 공급과 수요자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작품이 제대로 거래되지 않다보니 대부분의 작가들이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으며 미술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일반 수집가들은 어디서 어떻게 작품을 골라야 할지 막막한 실정입니다. 추후 미술품을 되팔려 해도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보니 그냥 폐품 처리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매각과 재 매각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경매시장의 활성화가 급선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은행과 학고재화랑, 갤러리 현대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K-옥션의 대표직을 주저 없이 맡았다고 한다. K-옥션은 외국 작품에 총 경매물건의 10~20% 정도를 할애할 방침이다. 작품의 진위 여부과 관련해 감정위원 중 한 명이라도 문제를 제기할 경우 해당 작품을 취급하지 않는 등 감정가 불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가급적 지명도가 높은 작가의 작품을 올릴 계획이며 외국 작품들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외국 유명 경매회사의 협조를 통해 작품을 경매할 방침이다.“미술품 시장에 있어서 경매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당히 높습니다. 일단 경매는 언제든지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을 재 매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투자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일일 것입니다. 또 구매자 입장에서는 해당 미술품의 진위 여부와 가격 등을 전문기관으로부터 공증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김 대표는 기회가 된다면 예술펀드도 선보일 방침이다. 예술펀드는 그가 금융사(하나은행) 재직 때부터 꿈꿔 왔던 상품이다. 업계에서도 투자분석과 미술품 가치를 모두 섭렵해야만 할 수 있는 예술펀드의 특성으로 볼 때 김 대표가 가장 적임자라고 말한다. 서울옥션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그는 잘나가는 은행 임원이었다. 경기고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미술계로 오기 전까지 주로 돈 만지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셈이 조금 빠르죠. 예술펀드는 국내 미술계 시장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관련 제도는 물론이고 관계기관의 이해가 부족한 것도 넘어야 할 숙제다. “예술펀드는 일반 금융권에서 취급하는 일반적인 펀드들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관련 기반산업을 동시에 성장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서울옥션에 있을 때도 예술펀드를 선보이려고 했는데 관련규제가 많아 포기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더 주도면밀하게 준비할 계획입니다.”그는 예술펀드야말로 잘만 활용되면 젊은 신진 작가들에게는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해 전반적인 예술 산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펀드로 자금이 모인다면 70%는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나머지 30%는 스튜디오 등 미술 산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쓸 생각입니다.”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서울옥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선의의 경쟁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경매업체가 하나 더 생겨 시장 외연이 커지는 것은 서울옥션도 크게 반길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술품이야말로 재테크 차원에서 접근할 때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에서는 미술품을 철저하게 자본논리로 해석해요. 상업적인 관점에서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만 미술품에 대한 눈이 뜨이게 되죠.”그렇다면 어떤 미술품을 구입해야 고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김 대표는 “독창적인 작품을 주목해야 하고, 해당 작품의 역사적 중요성과 소장기록, 보존상태 등을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소성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요. 저는 가급적이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할 것을 주문합니다. 미술품 투자는 100% 성공이 없습니다. 모두 다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죠. 하지만 작품의 가치를 해석하는 눈만 가지고 있다면 고수익(High Return)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김 대표가 만들어 낼 국내 미술시장 판도 변화가 벌써부터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