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뭉칫돈 펀드로 바꿔탄다

은행 강남 프라이빗뱅킹(PB)센터 Y팀장은 “주식을 전혀 모르는 중소기업체 오너의 부인이 최근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겠다며 4억원을 들고 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Y 팀장은 대부분 자산을 부동산과 은행에 투자하던 부유층들도 요즘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Y 팀장은 “30~40대의 샐러리맨들이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매달 일정액을 불입하는 적립식 펀드에도 부자들의 관심이 크다”고 전한다. 그는 부자 고객들이 적립식 펀드 1~2개 정도에는 꼭 가입하고 있다고 귀띔한다.물론 강남과 분당지역 부유층이 부동산 투자와 담을 쌓은 것은 아니다.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파크뷰지점 PB팀장은 “이 지역 부유층들이 주식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며 “주식으로 돈이 이동하는 것은 포트폴리오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서 부동산에 대한 부유층의 관심이 ‘상투’를 쳤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은행 PB팀장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건홍 한국씨티은행 압구정씨티골드로얄지점장은 “8·31 대책과 콜금리 인상 이후 압구정동 아파트의 호가가 떨어지고 매물도 나오자 부동산 투자심리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지점장은 “아파트를 대체할 투자처를 찾으려고 하는데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해 여유자금을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넣어 두는 고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10억원으로 부동산 투자를 저울질하다가 부동산 투자를 포기하고 펀드와 지수연동예금에 가입한 고객도 있다”고 소개했다.40, 50대의 신흥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도곡동 대치동 지역에선 부동산 열기가 식는 데 따라 금융자산 쪽으로 서둘러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근에 위치한 하나은행 매봉지점의 홍승범 PB팀장은 “종전 부자들의 금융자산 가운데 80% 이상이 예금과 같은 확정금리 상품에 집중됐지만 지금은 50% 이상이 펀드 등 투자상품에서 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매봉지점 PB고객은 대략 280여 명이며 1인당 평균 예수금은 10억원 정도에 이른다. 이들은 현재 정기예금에 30%, 펀드 상품에 50%, 나머지 30%를 MMF 등 단기상품 등으로 운용하고 있다. 홍승범 팀장은 “스스로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고객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부자들은 안전 자산, 확정금리만 선호한다는 인식이 빠른 속도로 깨지고 있다”고 강조했다.주식으로 체중이동부자들이 투자 스타일이 급변하고 있다. ‘8·31 부동산대책’과 금리인상 등 투자 환경이 지각변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보수적으로 유지하던 투자 스타일을 바꿔나가고 있는 셈이다. 주식 투자, 특히 간접 투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남권 부자들은 한국의 투자 문화를 이끌어 가는 ‘리더그룹’으로서 자산운용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강남의 부자들이 재테크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있으며 그동안 ‘푼돈으로 용돈 벌기’ 정도로 치부했던 주식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은행 PB센터에 수 억원씩 들고 와 배당주 펀드나 해외 투자 펀드를 고르는 VIP 고객이 잇따르고 있다. 이건홍 지점장은 “부자들이 펀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지난 수년 동안 지속된 저금리 추세가 근본 원인이지만 8·31 대책 이후 이런 흐름이 한층 빨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8·31 대책이 예고된 지난 7월 말 이후 두 달 보름여 만에 주식형 펀드 잔액이 5조원 증가했다. 해외 펀드까지 포함하면 8조원이 넘는 돈이 단시간에 투자 상품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권욱 코스모투자자문 사장은 “돈 있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예상외로 빠르다”면서 “부동산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시대가 끝났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어 앞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증시로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산층 샐러리맨들의 적립식 펀드에서 촉발된 펀드 투자 열풍이 8·31 대책 이후 부유층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사실 그동안 부자들은 목돈으로 아파트나 상가, 토지 등에 투자해 차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재산을 급속히 키워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8·31 대책’ 이후 부동산 투자를 위한 기회비용(세금)이 워낙 커져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부동산 대박 신화에 젖어 있던 강남 부유층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 팀장은 “그동안 재테크에서 가장 큰 축이었던 부동산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재산의 70%를 부동산에 묻어두고 있었다면 이 비중을 50% 밑으로 과감하게 낮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보유 부동산은 처분하지만 부유층 가운데 막상 부동산을 처분하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강우신 팀장은 “8·31 대책 이후 부동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팔려고 하는 고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3주택자 이상인 고객은 2채 이상을 팔지 않는 이상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세금을 물더라도 버티는 것이 덜 손해를 본다는 인식도 강하다고 전했다. 부동산에 대한 향수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반면 2주택자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은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매도 시기를 저울질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은행 분당PB센터 관계자는 “2주택자인 고객들이 세금 관련 문의를 많이 해오고 있다”며 “세대 분리를 통한 증여도 여의치 않다는 조언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당장 이루겠다는 쪽보다는 관망하자는 쪽이 많다”고 덧붙였다. 홍승범 팀장은 “8·31 대치와 관련된 법률안이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될 지 여부를 지켜본 뒤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는 관망세가 우세하다”고 말했다.부유층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국내 펀드로는 배당수익률(배당금÷주가)이 높은 이른바 고배당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배당주 펀드’를 꼽을 수 있다. 올 들어 세이에셋자산운용 등 투신사의 배당주 펀드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부유층이 선호하는 펀드배당주 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에 비해 리스크가 낮은 반면 금리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홍승범 팀장은 “부유층들은 기대수익 뿐만 아니라 리스크도 철저히 따지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배당주 펀드가 이런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부자들은 또 리스크 분산을 위해 국내 펀드 뿐만 아니라 해외 펀드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한국 증시보다 안정성이 높은 일본 펀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러시아 터키 등에 투자하는 동유럽 펀드, 브라질 인도 중국 등에 투자하는 브릭스 펀드 등도 부유층들이 선호하는 인기상품이다.이건홍 지점장은 “고객이 10억원의 여유자금을 들고 오면 특판예금에 20%, 지수연동예금에 30%, 나머지 50%를 펀드로 분산 투자하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승범 팀장은 투자금액의 70%는 펀드로 채우고 나머지 30%를 정기예금이나 단기상품으로 분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포트폴리오라고 조언했다.PB고객은 얼마나 되나‘돈이 가는 곳을 좇아가면 돈이 된다’는 말이 있다. 부유층이 어디로 가는지 알면 재테크는 반쯤 성공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부유층은 어느 정도 될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말 현재 국내 12개 은행(외국계 포함,지방은행 제외)의 PB 대상 고객은 70만732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 국민의 1.4%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들이 예치한 금액은 113조9974억원으로 12개 은행 전체 예금의 19.6%를 차지했다. 이중 5억원 이상 예치한 고객은 3만641명이었으며, 100억원 이상 예치한 고객은 194명이었다.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거주자가 전체 PB 고객의 67.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0억원 이상 갑부들의 거주지는 서울이 162명으로 무려 83.5%를 차지했다. PB 고객들의 예치금액 규모는 1억원 미만 35만7185명, 1억~5억원 미만 31만4101명, 5억~10억원 미만 2만5190명, 10억~20억원 미만 7589명, 20억~50억원 미만 2601명, 50억~100억원 미만 467명, 100억원 이상 194명 등으로 조사됐다.PB 고객의 연령대는 50대 이상이 34만7535명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40대 21만6717명,30대 11만7462명,20대 2만2333명,10대 3280명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