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노후연립 낙찰받아 4층 고급빌라 신축 돈방석
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서민주씨(가명·40)는 독신남이다. ‘준 재벌’ 수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외국 유학생활도 경험했다. 그런 그의 재테크 전공은 부동산이다. 고급주택을 짓고 분양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부잣집 아들이 하기에는 다소 터프해 보이지만 그의 사업관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8·31부동산 종합대책’ 이후 신 자산관리가 화두가 되고 있으나 서씨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가 이런 소신을 갖고 있는 데는 ‘바이 앤드 홀드’의 투자 철칙을 몸에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왜 그는 이런 철칙을 갖고 있을까. 경제학을 전공한 서씨는 일찌감치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처음 시도한 재테크 수단은 주식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 쓴 맛을 본 뒤 지금은 아예 주식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반면 부동산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믿음이 생겼을 정도로 신뢰가 높다. 그의 투자 일기 속으로 잠행하면서 독자들은 ‘뉴 포트폴리오’를 짜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서씨가 처음 주식을 접하게 된 시기는 대학 2학년 때였다. 부모님에게서 모 시중은행 주식 2000주를 증여받았다. 주식에 눈을 뜨게 하려는 부모님의 배려였다. 경제학을 배우던 서씨는 자연스럽게 증권사에 접촉하는 기회가 많았다. 시세 확인을 위해서다. 수차례 팔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3년 만에 증여 당시 시세의 30% 수준에서 전량 매도했다. 큰 손해를 봤다.서씨의 부동산 재테크 일지주식과는 궁합 맞지 않아 손떼이후에도 서씨와 주식은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벤처기업을 차린 친구로부터 생일선물로 벤처주식 100주를 선물받았다. 재무구조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데다 대기업의 자본투자까지 받은 회사여서 서씨는 수천 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그리고 잊었다. 외국에서 3년 간 유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3년 새 주가는 ‘휴지조각’이 돼 있었다.서씨는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수차례 주식을 사고 팔았지만, 승률은 아주 낮은 편이다. 열 번 가운데 일곱 번 손해를 봤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서씨의 친구 S씨는 달랐다. S씨는 5개 우량종목을 선정,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하루 종일 그 종목 추이만을 관망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종목이 어느 시점에 올라가고 내려가는 지 수개월 만에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것이다. S씨는 이런 식으로 일부 종목의 변동성만을 이용해 지금도 매달 20% 안팎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따라서 서씨는 두 가지 믿음을 갖게 됐다. 첫째, 주식투자를 하려면 바쁘지 않아야 한다는 것(예를 들면 주부이거나 공무원)과 둘째, 그렇지 않을 경우 차라리 간접상품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씨가 거의 유일하게 주식 재테크로 성공한 게 간접상품을 통해서였다. 실패도 자산이라고 했던가. 이런 투자경험 끝에 서씨의 재테크는 부동산에 포커스를 맞추게 됐다.대학 때 첫 경매투자…수익 100%올려대학시절 은행에 다니던 선배를 통해 서울 강북에 있는 모 여대 앞 단층건물이 경매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당수 친구들이 ‘소개팅’에 빠져있었지만 서씨는 달랐다. 실물 투자보다 나은 경제학 공부는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건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것.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시 재테크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들과 공동으로 나서기로 했다. 우선 비슷한 물건의 경매 낙찰가율을 분석, 적정 입찰가격을 산정했고 결국 비교적 싼값에 매입할 수 있었다. 막상 대학 앞의 노후건물을 사들이긴 했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냥 장기 보유한다고 해도 일정 투자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있었지만, 투자가치 극대화를 위해선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중충했던 노후빌딩을 카페 용도로 산뜻하게 바꾼 다음 임차인을 찾았다. 유동인구가 비교적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세입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매입 비용에다 리모델링 비용까지 이중으로 소요된 셈이었지만 1~2년 만에 100% 이상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주식과 달리 부동산 첫 투자에선 대성공을 거뒀다.서씨는 대학 졸업 후 아파트를 두 차례 분양받았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진 후였다. 두 번 모두 실거주가 아닌 단순 투자 목적이었다. 한 곳은 은평구 증산동의 연립주택을 재건축한 소규모 단지였는데, 44평짜리 중대형 평형을 매입했다. 당시 동시분양 미달 단지였기 때문에 청약통장이 따로 필요 없었고, 가격도 주변보다 많이 저렴했다. 하지만 서씨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아파트는 2년 후 입주 당시 가격이 더욱 급락, 결국 분양가의 10% 정도를 손해보고 되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아파트는 분양가(가격)보다 입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아파트값이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증산동 아파트의 입주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강남구 청담동의 27평짜리 아파트를 매입했다. 이 아파트 역시 미분양 상태였다. 중소형 평형인 데다 주변시세보다 싸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미분양 아파트를 하나 둘 사 모으는 모습이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분양가는 2억500만원. 서씨는 결단을 내렸고, 이 아파트는 입주 직후 4억1000만원까지 뛰었다.고급수요는 항상 존재부동산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서씨는 우선 가족이 가지고 있던 경기 용인시의 땅을 처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서씨는 고심 끝에 이곳에 최고의 전원주택을 짓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용인에 전원주택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였다. 아파트에 식상해 하던 강남권 고급 수요가 인근 전원주택으로 이동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고, 이 수요를 잡기 위해선 최고급으로 주택을 지어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섰다.당시 일반적인 건축비가 평당 250만원 이하였지만, 서씨는 이 전원주택의 건축비로 평당 300만~350만원을 책정했다. 벽지나 욕조 타일 등도 전부 수입산 만을 사용했다. 전원주택 완공 후 매수자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분양가를 다소 높게 책정했지만, 알음알음 찾아온 매수 희망자들은 전원주택을 직접 보고 난 뒤 서둘러 계약하자고 나섰다.단순히 아파트를 사고 파는 게 아닌 좀 색다른 재테크에 눈을 뜬 서씨는 이후 한남동의 고급주택 골목 인근에 있는 노후 빌라를 경매로 매입했다. ‘고급수요’를 유발하는 데 자신이 생긴 뒤였다. 그리고 이 빌라의 이웃집 3곳을 찾아 고급주택을 같이 짓자고 제안했다. 투자비는 각자 4분의 1씩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투자수익이 높을 것이라고 믿어줬다. 4가구의 노후 빌라가 허물어지고 20가구 규모의 4층짜리 고급주택이 새로 들어섰다.주택 크기는 47평형과 60평형의 두 가지 타입으로만 했다. 대형에다 고급 인테리어를 적용해야 잘 팔릴 것이란 서씨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착공과 동시에 분양을 시작했는데, 광고할 필요도 없이 현지 주민들만으로 수요는 충분했다. 하지만 모두 파는 대신 8가구를 남겨 외국 대사관이나 기업의 고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임대업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훨씬 높은 수익률을 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외국인 임대계약은 통상 2년 기준으로 선불금을 받는 형태인데, 요즘도 한 채에 한 달 1000만원 꼴로 임대료를 받고 있다.색다른 공동주택 지을 것서씨는 요즘 ‘새롭고 독특한 형태의 주거시설’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이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데다 분양시장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승부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 중 하나가 ‘독립된 공동주택’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자녀 세대 등 3세대가 공동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독립적인 세대 구성이 일반화했지만 가족끼리 같은 ‘건물’ 안에 거주하겠다는 욕구는 꾸준하다는 게 서씨의 해석이다. 서씨는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거주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휴식시간도 같이 보내지만 진·출입문이 별도로 돼 있어 독립적인 생활이 거의 완벽하게 보장되는 주거시설에 대한 수요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 역시 고급 수요일 수밖에 없다.서씨는 이 밖에 장기 해외거주자를 위한 콘도텔이나 독신자를 위한 공간 등 ‘특별한 수요층’이 있는 주거시설을 짓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어차피 서씨와 같은 개인(개인사업자)이 대형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짓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독특한 형태를 선보여야 소비자의 눈길을 잡아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재테크에 관한 한, 서씨의 투자 철칙은 간단명료하다. 바로 ‘남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을 선택하라는 것. 부동산 투자에선 일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이 당연히 투자대상 1순위라는 논리다. 뒤집으면 싼 게 비지떡이란 얘기다. 투자노트서씨가 ‘독특한’ 재테크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부모님 덕분이다. 다시 말해 부모님의 ‘경제교육’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부모가 대학 때 주식을 선물하지 않았다면, 주식(경제)에 대한 이해가 훨씬 늦어졌을 게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서씨의 가족은 그가 부동산 개발로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자 역할을 했다.하지만 부모님 등 가족의 후원이 재테크 성공의 열쇠일 수는 없다. 오히려 많은 경우 득(得)보다 실(失)이 된다. 작년 강원도 평창의 전원주택을 취재하러 갔다가 들었던 한 젊은 농사꾼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역정이 바로 그랬다. 항상 부지런하던 이 청년은 토지보상으로 하루아침에 20억원 대의 부자가 되자 흥청망청하기 시작했다. ‘돈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돈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은 ‘도적’에 다름아니었다. 한 푼 두 푼 흘러나갔다. 불과 수 년 만에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빚밖에 없었다.이와 반대되는 얘기도 있다. 수십억원 대의 재산가 이면서도 호스피스(임종 간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중년부인에 대한 스토리다. 이 주부는 고통 속에서 부를 일군 케이스. 아버지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 맨 주먹으로 부를 일굴 수밖에 없었다. 이 주부는 역설적이지만 “아버지 덕분에 일어섰다”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정신이 바짝 들었기 때문이다.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하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부자와 가난뱅이의 돈을 몰수한 다음 같은 액수의 돈을 나눠준다.10년 후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정답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부자는 여전히 부자가 됐을 것이고, 가난뱅이는 여전히 가난뱅이가 돼 있을 것이라고. 결국 문제는 ‘방법’이다. 자녀에게 재산증여를 고려하고 있는가. 실증 사례들은 ‘물고기’를 수족관째 안겨주는 것보다 ‘그물 엮는 법’을 알려주는 게 백 배 낫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