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일 케이비테크놀로지 대표
이비테크놀로지는 1000개가 넘는 국내 코스닥 업체 가운데 가장 극적인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설립 3년 만인 2001년 상장한 이 회사는 국내 교통카드 시스템 1위 업체라는 명성으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10위권까지 진입하며 화려한 비상을 꿈꿨다. 하지만 전국 대부분의 교통카드 시장을 장악한 이 업체는 최대어인 서울 사업자 입찰에서 탈락하면서 2004년부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엔지니어 출신의 창업자로 승승장구하던 조정일 대표에게는 일생일대의 최대 위기였다. 조 대표는 “창업 후 줄곧 성공 가도만 달려오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위기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며 “교통카드 사업을 접기로 결심하면서 다시는 국내 시장만을 바라보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2004년부터 교통카드 사업을 과감히 접고 인력도 줄였다. 그해 손실 규모는 140억 원에 달했다. 교통카드 사업을 완전히 떼어낸 2005년에도 2003년에 비해 절반으로 쪼그라든 매출 120억 원에 손실 42억 원을 기록했다. 자체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스마트카드용 운영체제(OS:Operation System)를 개발하겠다고 매달리는 그에게 주변에서는 “기존 교통카드 사업을 유지하면서 이것저것 새 사업을 붙이면 꾸려갈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느냐”며 핀잔을 줬다.2년 여 만에 케이비테크놀로지는 자체 개발한 신용카드용 스마트카드 OS ‘KONA’를 앞세워 2006년 처음으로 스마트카드의 본고장인 유럽 시장을 뚫었다. 첫 유럽 고객인 포르투갈은행에 납품하던 날이 조 대표에게는 지금까지 사업을 해오면서 가장 강한 성취감을 느낀 날로 남아 있다. 이 납품을 계기로 회사는 대전환점을 맞았다. 현재 케이비테크놀로지의 주요 고객군은 BC 비자카드는 물론 노르디아뱅크 에버노트 등 유럽과 북미 대륙의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다.유럽 개척 3년 만인 지난해 케이비테크놀로지는 매출 720억 원, 영업이익 95억 원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무엇보다 매출의 50%가 유럽 중동 등 해외에서 발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덕분에 달러 기근으로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난해 이 회사는 500만 달러를 포함해 200억 원의 유보 현금을 갖고 있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국내 정보기술(IT) 벤처기업으로는 드물게 지난해 2000만 달러 수출 산업훈장까지 받았다. 조 대표는 “재무제표에 드라마틱한 회사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과거의 실패가 결과적으로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마이크로소트의 윈도처럼 신용카드에 들어가는 전자 칩의 구동 OS를 자체 개발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카드 업체로 착각하는데 소프트웨어 업체다. 해외에서는 프랑스의 게말토(Gemalto)처럼 글로벌 업체들이 경쟁 상대다. 당연히 제품을 들고 처음 해외에 나갔을 때는 “스마트카드는 안정성과 보안성이 생명인데 너희처럼 작은 중소업체의 제품을 어떻게 쓰느냐’며 박대를 많이 당했다. 그래서 기술로 승부했다. 지난 한 해에 국제 인증 수수료로 20억 원을 썼다. 현재는 국제 인증을 받은 제품군이 45개에 달한다. 이제 케이비테클로놀로지는 모르더라도 OS ‘KONA’는 세계 금융권에서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 최근 중국 최대 카드 업체의 경우 해외 바이어가 KONA OS를 탑재한 카드를 제작해 달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우리에게 직접 모듈 구입을 타진해올 정도로 입지가 바뀌었다.”“3G 휴대전화 시장은 향후 핵심 성장 동력이다. 이를 위해 1∼2월께 북유럽의 유명 USIM(범용가입자식별모듈: universal subscriber identity module)카드 업체를 인수할 계획이다. 통신 시장 강화를 위해 평소 업계에서 입소문으로 알고 있던 북유럽의 해당 업체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연락해 8개월여 동안 서로 오가며 논의한 끝에 지분 투자 및 주식 스와프 형태의 인수·합병(M&A)에 합의했다. 상대 업체의 유심 카드 경쟁력과 케이비티테크의 금융 분야 경쟁력이 결합되면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예상 실적(매출 820억 원, 영업이익 121억 원)에는 반영하지 않았지만 합병이 완료될 경우 추가적으로 최소 매출 500억 원, 영업이익 50억 원이 반영된다.”“중견 업체로서 국내 시장만 바라봐서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처음부터 해외에 매달렸다. 유럽을 먼저 공략한 것은 스마트카드 본고장에서 성공하는 게 아시아 중남미 등 다른 시장 진입에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일단 제품이 평판을 얻은 뒤부터는 고객 확보에 탄력이 붙었다. 올해는 전체 매출의 70%를 해외에서 예상하고 있다. 2600만 장 규모(260억 원)의 신용카드 OS를 수주한 태국의 경우 지금까지 200억 원을 수금, 캐시 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올 1분기 중 태국에서 2800만 장 규모의 새로운 입찰이 있는데 성사 여부를 장담할 수 없어 매출에는 반영하지 않았지만 ‘기존 사업자로서 우선권이 있지 않겠나’ 기대하고 있다.”“기존 IT 업체의 진출과 방식에서 원천적으로 다르다. 먼저 유럽 등 핵심 지역에서 인정을 받은 후 시장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는 판단에서 중국법인을 통해 사업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컨설팅 업체를 통해 중국의 스마트카드 관련 업체 50여 개사의 CEO들과 만남을 가졌고 시장조사도 마쳤다. 무엇보다 스마트카드 OS 프로그램은 불법 복제 천국인 중국에서도 복제 자체가 어렵고 진입 장벽이 높다. 이미 중국 카드 제조사들이 우리 제품의 인지도를 알고 있고 제품 구매 요청을 해 오고 있어 이제 본격적으로 승부를 걸어볼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올 상반기 중 인도법인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거대 이머징 시장인 중국 인도 브라질과 미국 시장은 자체 법인을 설립해 진출할 계획이고 유럽과 아프리카는 현지의 역량 있는 업체 M&A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외부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금 수요를 고려해 헤지했다. 500만 달러 정도를 항상 유지하면서 달러가 지나치게 오르면 일부 매도하고 떨어지면 사서 500만 달러를 유지하는 식이다. 주요 달러 수요는 국제 인증 수수료인데 반해 매달 150만 달러가량 수출 대금이 유입되기 때문에 환 리스크 관리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환차익보다는 영업이익을 보호한다는 원칙으로 헤지를 하고 있다.”“전자여권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 등 스마트카드 OS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전자여권의 주요 경쟁 업체는 국내에는 없고 모두 해외 업체들이다. 현재 10억 원의 수수료를 내고 전자여권 국제 인증을 진행 중인데 올해 안에 인증이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가 시범 발행한 전자여권의 경우 국내 사업자가 없어 해외에서 기술을 사왔지만 인증 획득 후에는 국내 업체에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그동안 묵묵히 지켜봐 준 주요 주주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앞으로 계속 이익 규모에 맞춰 배당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 주가는 주가수익률(PER)이나 주당순이익(EPS)이 현저하게 낮은 수준(1월 15일 현재 4500원대)이다. 회사의 가치가 시장에 제대로 알려지고 올해 실적을 차곡차곡 실현해 간다면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본다. 연말까지 적정 주가는 1만2000원 수준을 기대하고 있다.”KEB 테크놀로지 대표성균관대 물리학과대우통신 종합연구소한국정보통신 기술연구소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