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귀재 안영석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인터뷰
크라이슬러는 현재 국내에서 수입차로는 가장 많은 브랜드와 차종을 판매 중인 메이커다. 미 대중차 대표 주자인 크라이슬러를 비롯해 정통 오프로드 브랜드 지프와 픽업트럭의 대명사 닷지가 모두 크라이슬러코리아를 통해 국내 수입되고 있다. 판매 차종만 26개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별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차종을 매장에 전시할 수도 없다. 크라이슬러코리아 안영석(41) 사장과의 인터뷰는 다품종 판매 전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다소 껄끄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차분하게 자사의 마케팅 전략을 소개했다.“임포터(병행수입업체)나 딜러 입장에서 보면 다품종 판매 전략이 분명 마이너스 요인일 수 있습니다. 3개 브랜드를 모두 소개하려면 매장도 커야 하고 그에 따른 투자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메뉴가 하나인 식당보다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 곳을 선호하지 않을까요. 수입차 매장에 왔는데 고급 세단부터 픽업트럭, 오프로드 차까지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차를 좀 더 쉽게 선택할 수 있겠죠. 원래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는 별도 판매되고 있었는데 최근 통합되는 추세입니다. 마케팅의 어려움은 회사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죠.”안 사장은 국내 수입차 업체 사장 중 최연소다. 지난 12년간 크라이슬러코리아를 이끈 웨인 첨리 사장(현 중국본사 사장)이 만 54세인데 비해 열세 살이나 젊다. 이는 크라이슬러가 안 사장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실제로 그는 지난 2004년 다임러 크라이슬러코리아에 이사로 들어와 2년 만에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했고 2006년 7월 미국 본사 이사로 발령받아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지역 마케팅을 담당했다. 지역법인 임원이 본사로 승진, 발령받은 것은 안 사장이 처음이다. 안 사장은 지독한 일벌레다. 일중독자라는 주위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 신화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부담스러워 한다.안 사장은 1992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면서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대우차에 입사해 그가 처음 맡은 임무는 대우국민차 영업기획이었다. 이후 그는 수출기획팀, 아시아 중동 영업본부, 베네룩스 판매법인 주재원을 역임했다. 지난 2001년 대우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정든 대우차를 떠났지만 당시의 혹독한 시련은 훗날 크라이슬러에서 화려하게 꽃피웠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쉬운 브랜드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대우차도 그랬고 현재 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지”라며 “오히려 이런 환경이 열정을 쏟게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안 사장은 마케팅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5월 서울모터쇼 당시 행사장 바로 옆 아파트 외벽에 크라이슬러 홍보 현수막을 달아 대히트를 쳤고 2004년 10월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주한 미 대사관저에서 대형 세단 300C 신차 발표회를 연 것도 그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주한 미 대사관저는 서울 시내에서 정부 기관 이상으로 철통같은 보안을 요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마케팅 행사를 벌인다는 것은 당시로선 파격에 가까웠다. 2004년 TV 홈쇼핑을 통해 자동차를 판매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그는 “홈쇼핑에서 차를 판매한다는 것이 당장의 판매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브랜드 홍보 차원에서는 큰 도움이 됐다”며 “최근 G마켓, 신세계쇼핑몰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차를 판매한 것도 TV홈쇼핑의 성공이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최근 수입차 시장은 고급차와 대중차로 양분되는 양상이다. 안 사장은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고급차보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대중차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수입차 점유율의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최근 혼다로 대표되는 일본차들이 대거 수입되면서 대중차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한국 수입차 시장이 조금씩 성숙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면에서 볼 때 크라이슬러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크라이슬러는 모델 라인업이 다양한 브랜드다. 가격대로 2000만 원대부터 6000만 원 대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그는 크라이슬러의 지향점은 차량 판매보다 문화 전달에 가깝다고 설명했다.“닷지는 미국 픽업트럭의 대명사입니다. 한국에서 픽업트럭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주말 나들이를 즐기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오프로드 차량의 대명사 지프도 마찬가지죠. 고객 행사인 지프 캠프를 성대하게 열어 오프로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우리가 중요시하는 부분입니다.”크라이슬러, GM(제너럴모터스),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경영 위기에 대해 안 사장은 “유가, 원자재 값 상승 여파에 미국 차 상당수가 외형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도 “크라이슬러는 다른 미국 브랜드와 달리 수요 감소를 일찍부터 예견, 생산 대수를 대폭 줄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하다”고 덧붙였다.안 사장은 본격적으로 논의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큰 기대를 걸었다. 지난해 크라이슬러코리아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8.2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안 사장은 “FTA가 체결되면 6~10% 정도 가격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15% 선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다만 최근 환율 상승과 원자재 값 상승으로 판매 원가는 높아졌지만 국내 판매가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어 적정 영업이익을 거두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생산 대수가 줄어든 가운데 생산 원가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가격 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가격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마케팅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선두 업체들이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 5% 정도 판매가가 인상돼야 적정 마진을 낼 수 있는데 지난 수년간 업체들 간 가격 인하 경쟁을 벌여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안 사장은 다른 수입차 브랜드와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현재 크라이슬러코리아는 인증, 판매, 애프터서비스를 일체를 책임지는 중고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신차 구입 1년 이내 사고 발생 때 수리비가 차 값의 20%를 초과하고 본인 과실이 49% 이하이면 신차로 바꿔주는 교환 프로그램도 전 차종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올해부터는 애프터서비스 프로그램도 대폭 개선할 방침이다. 영등포구 양평동에 국내 최대 규모의 애프터서비스 센터를 오픈했고 부산에도 대규모 애프터서비스 센터 문을 열었다. 이 밖에 모든 차량에 대해 3년, 6만km 일반 보증을 제공하고 있으며 300C 등 주요 차종에 대해선 소모성 부품 무상 교환 서비스를 2년, 4만km까지 늘렸다.올해 가장 기대하는 모델을 묻자 그는 세브링 디젤을 꼽았다. 크라이슬러의 대표적 대중차인 세브링 디젤은 1등급 연비를 획득했다. 이 밖에도 PT크루즈, 지프 컴패스, 닷지 캘리버 등 소형차의 강세도 내다봤다. 이와 동시에 크라이슬러의 고성능 튜닝 브랜드 SRT 버전도 기대 이상의 판매 실적을 기록해 앞으로 수입 판매 대수를 대폭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크라이슬러코리아 대표이사 사장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졸업 대우차 베네룩스 판매법인 세일즈 & 마케팅 디렉터 GM 대우 유럽 지역 본사 마케팅팀장 크라이슬러 LLC 한국·일본 시장 총괄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