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통신 국내 1위 시스템베이스 김명현 대표
내 시리얼 통신 1위 시스템베이스 김명현 대표 사무실 한쪽에는 클래식 기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장식용이 아니다. 그는 머릿속이 복잡하면 어김없이 기타 줄을 튕기며 잡념을 떨쳐 내곤 한다. 그의 클래식 기타 연주 실력은 연주회를 가져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는 “환율 상승, 주가 하락, 원자재 값 상승 등 요즘 들려오는 것마다 우울한 소식뿐”이라며 “기타를 치고 있으면 불안감과 잡념을 모두 한꺼번에 떨쳐버릴 수 있어 그만”이라고 ‘기타 예찬론’을 폈다.최근 경제 상황은 중소기업들엔 최악이다. 환율, 주가 등 무엇 하나 호재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단기 유동성 악화로 흑자 도산으로 이어지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는 등 중소기업들은 지금 하루하루가 사선이다.이런 가운데 시리얼 통신 전문 기업 시스템베이스는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경기 불황으로 실적 전망치는 다소 보수적으로 잡았다”며 “‘1세대 통신 기업’의 기술력을 총결집해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내겠다”고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시스템베이스는 국내 컴퓨터 부품 업계의 산증인이다. 1987년 설립된 이후 시리얼 통신 한 분야에만 집중해 지금은 해외에서 주목받는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립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시리얼 통신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해외에서 막 연구되고 있는 컴퓨터통신 체계라는 것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었던 것.김 대표는 “금성사(현 LG전자) 컴퓨터 사업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회사를 설립한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설립 당시 그의 손에는 퇴직금 500만 원이 전부였다. 너무 일렀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 생각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처음부터 시리얼 통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직 저변이 확산돼 있지 않은 터라 설립 초기 그는 전화선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등 전 직장에서 수주한 공장자동화 시스템 개발에 주력했다.직원 2명으로 시작한 시스템베이스에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89년. 주민전산망 개편 작업이 계기가 됐다. 시스템베이스는 시리얼 통신을 기반으로 한 멀티포트를 LG전자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큐닉스 등 주요 PC 업체에 납품, 전국 주민 전산 시스템 컴퓨터에 장착되는 쾌거를 올렸다. 이후 시스템베이스는 연구·개발(R&D) 부문에 집중 투자해 ‘시리얼 통신의 삼성전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시리얼 통신이란 일반 컴퓨터는 물론 은행 현금 인출기, 신용카드 승인기, 전광판, 지하철 표찰기 등 우리 생활 주변과 산업 현장 곳곳에서 쓰이는 컴퓨터 통합 언어다. 초창기 언어인 텔렉스와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근거리통신망(LAN)의 중간적인 개념이다. 전반적인 트렌드는 시리얼에서 근거리통신망으로 옮겨 가고 있지만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하다. 김 대표는 “근거리통신망이 ‘고속도로’라면 시리얼 통신은 각 지역을 잇는 ‘지방도로’와 같은 역할로 업무가 나눠질 것”이라고 향후 시장을 전망했다.시스템베이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시리얼 멀티포트와 디바이스 서버로 나눠진다. 물론 국내에선 매출액과 판매량 모두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는 대만 업체들과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리얼 멀티포트는 PC의 기본 시리얼 포트 외에 추가 포트가 필요할 때 사용되는 장비고 디바이스 서버는 시리얼 통신 장비를 근거리통신망으로 전환해 주는 장비다.지금까지 가까스로 넘긴 고비도 적지 않았다. 자금난은 어려움 축에도 끼지 않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시스템베이스엔 위기이자 기회”라고 설명한다. 국내 컴퓨터 부품 업체들의 경영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기술 집중 분야는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밀리고 있고 중국 인도 대만 업체들이 내세우는 저가 물량 공세도 버겁다. 국내 대부분의 산업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컴퓨터 부품 산업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물론 김 대표도 현 상황이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위기 때마다 정공법을 선택해 시장을 선도해 온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하는 이유도 결국 시스템베이스의 높은 기술력이 밑바탕에 있다. 2년간 연구·개발을 거친 끝에 개발해 세계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임베디드 디바이스 서버 모듈 ‘에디(Eddy)’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이 밖에도 시스템베이스는 PCI 익스프레스 코어 및 전용 칩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 개발했다. PCI 기술의 차세대 버전인 ‘PCI 익스프레스(Express)’는 고성능 직렬버스로 인텔이 제안한 차세대 통신 플랫폼, 컴퓨터용 인터페이스의 표준 규격이다. 기존 제품보다는 50~100배가량 빠른 처리 속도를 자랑한다. 세계 최초로 PCI 익스프레스 코어, 전용 칩을 탑재한 산업용 멀티포트도 시스템베이스의 작품이다. 세계에서 시스템베이스처럼 핵심 칩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은 2~3곳에 불과하다.최근 시스템베이스는 새로운 정공법을 마련했다. 김 대표는 “완성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저가 공세를 펴는 대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완성품보다는 핵심 부품을 경쟁사에 제공하는 것으로 해외 사업 전략을 수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전략 수정을 하기까지 마음고생도 만만치 않았다.그는 “대만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 기반이 튼튼해야 하는데 국내 사정은 대만과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중국이라는 잠재적 경쟁자까지 생각하면 완성품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상당히 취약하다”고 전환 이유를 밝혔다. 대신 국내 시장은 지금처럼 완성품 판매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시스템베이스는 현 국내 매출이 60%, 해외 매출은 40% 선으로 연매출은 100억 원이다. 앞으로 관련 부품 산업이 커지면 해외시장 매출은 2012년께 국내와 해외 매출 비중이 9 대 1로 바뀔 것으로 내다본다. 계획대로라면 연 매출은 400억~500억 원은 물론 해당 분야 세계 1위 등극도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는 요즘 직원들에게 “세계 최고가 되자”는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직원들의 단합 없이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장과 직원들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래프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간만 나면 그는 직원들과 함께 강원도 영월 동강을 찾는다. 그와 직원들은 힘을 합쳐 노를 저어야만 앞(목표)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래프팅에서 찾는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