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하다가 생뚱맞은 질문을 받았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중국이 한국을 조공 잘 바치고 말 잘 듣는다는 뜻으로 한 말’이냐는 것이다. 이 답변을 위해서는 한국이 언제부터 중국에 조공을 했는지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과 시기를 알아야 한다. 고구려는 왕조 705년(기원전 37년~서기 668년) 동안 중국 대륙을 지배했고 오히려 중국이 두려워한 존재였다. 중국을 대국으로 섬긴 것은 서기 648년(진덕여왕 2년)에 신라 김춘추가 당에 가서 지원군을 요청하면서부터이며 약 1300여 년 전의 일이다. 이때부터 당에 조공을 바치는 약소국으로 변모했다.김춘추가 나당연합군으로 삼국통일을 했다지만 광활한 고구려 영토를 당에 바치며 겨우 대동강 이하만을 차지하는 반쪽 통일을 하고 중국을 상전으로 섬기는 수모를 감수했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의 일이다.기원전 268년 공자의 7세손이라는 공빈의 ‘동이열전’에 의하면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동이라 한다. 지역은 조선 백두산에 접했고 훌륭한 사람 단군이 9개 부족 구이가 받들어 임금이 되니 요임금과 한때의 일이다. (중략) 그 나라는 풍속이 순후해서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하고,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니 이르기를 동방의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라고 했다. 그래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동이에 살고 싶어 하셨다”는 기록이 있다.공빈은 전국시대 말기 사람이며 위(魏)나라의 재상으로 약 2300년 전의 인물이다. 따라서 김춘추가 당을 대국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한 때보다 약 1000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한국은 군자의 나라이고 문화 선진국으로 추앙된 나라다. 학자들은 전통과 예의바른 민족일수록 문화민족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외국을 선진국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는 비록 경제 발전이 되었다고 해도 개발도상국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 수준을 뜻한다. 선진국도 경제 선진국, 기술 선진국, 문화 선진국 등 다양하며, 그중 문화 선진국이 으뜸이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한국 문제 전문가인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맥도널드 박사는 ‘한반도중립화방안’으로 유명한 학자다. 그가 1989년 국내 모 일간지에 쓴 특별 기고문 중 한국에 관한 기술 내용을 보면 ‘오늘날 첨단 문명을 꽃피우고 있는 유럽인들이 반라로 숲속을 누비며 살고 있을 때 한국은 이미 고도의 생활 문화를 누렸다’고 한다. 또 ‘경제 대국 일본이 자랑스럽게 내놓는 문화 치고 그 뿌리가 한국 것이 아닌 게 없다’고도 했다. ‘그것쯤은 나도 안다’고 할지 모른다. 한국의 국보 1호가 숭례문임을 안다. 일본의 국보 1호도 아는가. 뜻밖에도 삼국시대에 우리가 만든 ‘반가사유상(생각하는 목각 반가부좌상)’이다.또한 ‘중국이 이론의 여지없이 최고의 문화를 누릴 때도 한국을 가리켜 문화 선진국’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나 저명한 석학의 말이고, 이미 2300년 전에 공빈이 ‘공자께서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으니 한국이 예절의 나라 문화 선진국이었음이 분명하다. 옛것은 오래돼 쓸모가 없는 것이지만 전통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필요한 것이다. 자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이지만 자존은 있는 것을 당당히 지키는 것이니 찬란한 전통문화와 우리 뿌리를 살려 이미 존재했던 문화 선진국 예절의 나라를 복원하고 지켜나가야 한다.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http://cafe.daum.net/yejeol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