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9월 1일 정부와 청와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개인의 미술품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 계획이 포함됐다. 기획재정부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점당 금액이 4000만 원 이상인 미술품과 제작 연도가 100년 이상인 골동품 등에 대해 기타소득으로 분리 과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2010년 1월 1일 이후 거래부터 적용할 계획이라지만 벌써부터 말이 많다. 미술 시장의 반응 역시 민감하다. 마침 정부의 미술품 양도세 부과 방침 발표 이후 열린 첫 경매였던 지난 8월 8일 K옥션의 가을경매의 낙찰률은 61%였으며, 이는 지난 5월 경매보다 무려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불경기 속에서도 미술 시장의 활기를 이끌었던 30~50대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줄줄이 유찰됐다. 그만큼 미술 투자자들의 관망세 심리를 부채질했다는 평가다. 미술 시장 관련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속사정은 무엇일까.이번 재정부 발표의 골자는 ‘서화·골동품을 소장한 부유층이 매매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다. 양도가액에서 필요 경비를 제외한 금액에 20%의 원천징수세율의 세액이 책정되며 장기 보유자에게는 혜택을 주어 양도 차익에 대한 필요 경비(구입 가격+세금)를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만 과세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외국의 개인 미술품 과세제도 역시 근거로 삼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종합소득세, 영국은 자본이득세, 프랑스는 거래세 명목으로 13~17%씩 미술품 거래에 과세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최근 2년간 국내 미술 시장이 때 아닌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판단에서 근거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우리 실상은 아쉽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미술품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 근거는 1990년에 이미 마련됐으나 미술계의 실질적인 현황 파악 이후 2004년엔 완전 폐기된 바 있다. 물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원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실상에선 융통성의 예외가 적지 않다. 가령 주식시장의 육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주식을 사고팔 때의 시세 차익에는 세금이 없다든가 하는 점은 이미 상식적인 사례다.미국의 경우 한때 요트에 중과세를 부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요트야말로 부유층의 사치스러운 취미라는 이유에서다. 과연 이 과세 제도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누구였을까. 결과는 엉뚱했다. 정작 피해를 본 것은 부자들이 아니라 요트 생산 기업의 노동자와 부품 생산업자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자들이야 또 다른 취미로 발길을 돌리면 그만이었지만 그 소비에 의존했던 대다수의 생산직과 유통직은 얼떨결에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비록 미술품 수집 행위에선 고가의 기호품이지만 감상에 있어선 대다수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미술품 양도세는 소득세 측면 이외에도 많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한편에선 국내 미술 시장을 큰 호황으로 본다지만 직접적인 수혜자는 극히 드물다. 현재 우리나라 미술협회에 등록된 작가는 2만5000~3만 명이지만 미등록 일반 작가까지 합친다면 수만에서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작가들 중 시장에서 왕성하게 거래되는 작가는 100명 미만이다. 아마도 작고 작가까지 포함해야 이 수치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작년에 반짝 국내 미술 시장을 뜨겁게 달군 인기 작가는 불과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살펴보기 위해 흥미로운 조사를 해봤다. 바로 국내 미술 시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도 미술품 거래 현황을 토대로 미술품 양도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만한 작가와 작품을 살펴봤다.한국미술경영연구소(www.kamin.kr) 조사 결과, 2007년 한 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점당 4000만 원 이상의 고가에 거래된 국내외 작가와 작품은 총 161명 822점인 것으로 나타났다.이 중 생존 작가는 36명, 작고 작가는 85명, 외국 작가는 40명 순이었다. 이 조사 결과는 서울옥션과 K옥션, D옥션, 옥션M, A옥션 등 국내 5개 주요 경매사에 지난해 출품됐던 5189점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경매 총 출품작 가운데 낙찰가 4000만 원 이상 작품 수는 전체 20.8%인 반면 그 작품의 낙찰액 비중은 낙찰 총액 1887억 원의 81.5%인 1500억 원을 넘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술 시장에서 흔히 ‘블루칩 작가’로 주목받아 온 작고 및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극소수의 젊은 작가도 눈에 띄었다.작가별로 낙찰 총액과 작품 수를 비교해 볼 때 이우환 작가가 점당 4000만 원 이상 112점에 284억5580만 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무려 79점(209억 원)이 4000만~16억 원대에 낙찰됐다. 이는 국민 화가 박수근 화백의 16점(낙찰액 188억 원)보다 5배나 많은 것이다. 다음으로 김종학 65점,이대원 56점,김환기 35점,김창열 26점,김형근 23점,도상봉 18점, 장욱진 16점, 천경자 15점, 백남준 13점 등의 순이었다. 중견 작가 중에는 오치균이 두드러졌다. 오 작가의 경우 4000만 원 이상 작품이 무려 41점이나 팔려 나가 낙찰액만도 59억 원을 기록했다. 작품 크기와 관계없이 점당 1억4300만 원에 거래된 셈이다. 다음으로 전광영(17점) 사석원(16점) 고영훈(11점) 이왈종(5점) 권순철(5점) 강요배(2점) 박항률(2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외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김동유(3점)와 도성욱(2점) 홍경택(1점) 최소영(1점) 등이 4000만 원 이상 낙찰군에 가세해 해외 주요 경매와의 연계성을 보여줬다. 외국 작가로는 앤디 워홀(20점), 게르하르트 리히터(5점), 쩡판즈(4점), 베르나르 뷔페(4점), 장샤오강(3점), 야오이 구사마 등 40명의 작품 114점이 4000만~27억 원의 고가에 낙찰됐다.국내 미술 시장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금의 인기 작가 몇 명의 작품 매매 현상에 고무돼 전체 미술 시장과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세는 적절하지 못한 판단이다. 자칫 미술품 고유의 무형적 가치나 역할을 외면한 채 일반 부동산이나 사치품과 같은 투기 혹은 상품 취급으로만 몰아가는 우를 범할 수 있다.궁극적으로 미술품 양도 차익에 대해서는 과세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미술품에 대한 안정적인 과세를 위한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 현재의 미술 시장은 불안정한 인프라와 시스템으로 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엔 큰 무리다. 오히려 보다 안정시킬 수 있는 부양책을 내놓음으로써 차후 정상적인 세금 납부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더 현명한 조치가 아닐까.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