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아 우리투자증권 압구정 PB센터 부장

음 가 본 여행지나 낯선 도시에서 식당을 고를 때 통상 사람들은 길게 줄 서 있는 식당을 찾는 경향이 있다. 리스크(맛이 없을 가능성)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다 막상 맛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먹었다는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떼 이론(Herding Theory)이다. 투자에서 양떼 현상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시장의 방향성이 불투명할수록 사람들은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라며 두리번거리게 된다. 일반인들이 부자들이 몰려 있는 PB센터 고객들의 투자 패턴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강남 압구정 PB 고객들의 투자 행태는 평소 보수적인 그들의 투자 패턴과 전문직 부유층이 대다수인 투자자들의 균질성 면에서 최근과 같은 변동성 장세에서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류정아 우리투자증권 압구정 PB센터 부장은 “압구정 PB 고객은 부동산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전통적 부유층이지만 평소에는 무척 검소한 편”이라며 “호텔 헬스장보다는 정보 교류를 위해 오래된 동네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을 선호하는 등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보수적 투자를 견지해 온 만큼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펀드보다 확정 금리를 보장해 주는 금융 상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펀드 비중이 낮아 최근의 주가 폭락장에서 상대적으로 손실이 덜하다. 하지만 때론 보수적 투자가 화를 키우기도 한다. 예금을 막판까지 고수하다가 중국 펀드 바람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해 하반기에야 펀드에 가입했다가 반 토막이 난 펀드를 부둥켜안은 채 망연자실한 투자자도 적지 않다.올 들어 사실상 투자에 손을 놓고 있던 압구정 PB센터 고객 사이에 최근 미세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류 부장은 “최근 수도권 일대 골프 회원권 가격이 하락한데서 알 수 있듯이 회원권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오랜 투자로 쌓은 직감을 토대로 최근처럼 경제가 어려워질 때가 오히려 기회라고 여기고 팔만한 자산은 웬만큼 정리해 기회를 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리스크 자산 최소화, 주식은 마이너스 10%, 펀드는 마이너스 15% 내에서 손절매 내지 환매를 통해 현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류 부장은 “미국 경기가 저점을 지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를 기점으로 경제가 호전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며 “주식, 부동산 등 주요 시장이 약세일 때는 기대 수익률을 낮게, 투자 기간을 짧게 잡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전략으로 접근하는 게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우리투자증권 압구정 PB 고객 가운데 60억 원 안팎의 자산이면 상위 10%권에 포함된다. 타 지역과 달리 부동산 비중이 높다. 실제 최근 한 60대 고객의 자산 상속 과정에서 나타난 부의 구성이 전형적이다. 총 60억 원 규모의 자산 가운데 165㎡(옛 50평)짜리 아파트와 상가 1채가 50억 원을 차지하고 나머지 10억 원이 금융자산이었다. 류 부장은 “금융자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현금을 모두 펀드에 넣은 일부 고객은 50%에 달하는 손실 규모로 인해 환매도 못하고 현금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체 자산의 10∼20%는 현금성으로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 및 상속세 완화에 대한 반응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확신이 설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강해서인지 환영하면서도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의 경우 관련 정부 정책이 일관되게 3번은 나와야 움직인다는 묘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특히 부동산은 대출 규제 완화가 따르지 않으면 당분간 살아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아요.”최근 글로벌 금융사의 연이은 파산과 피인수 합병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주요 PB센터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최근 2개월 동안 고객에게 펀드 물 타기조차 권하기 어려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습니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금융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일부는 대안 투자처로 달러 등 외환 투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워낙 변동성이 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보수적이지만 아직도 상당수 고객들은 투자를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단기 수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여전해요. 물론 일부 발 빠른 고객은 스스로 현금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과 펀드 등에 물려 있어 현금 10억 원을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고객이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중국 펀드에 이어 최근 러·브 펀드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도 크게 악화되면서 PB들이 겪는 고충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펀드를 원금 보장형 예금 상품과 동일하게 여겼던 보수적 투자자들에게 50%를 넘나드는 손실률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인 게 분명하다. 류 부장은 “다행히 증권사 PB 고객은 에쿼티(증권) 투자에 대한 사전 인식이 있어 항의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마음 고생하기는 은행 PB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글로벌 증시 약세로 인한 펀드 손실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금융권의 PB 재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00년대 초반의 바이 코리아 사태와 이후 LG카드 사태, 투신권 부실화 등 대표적인 금융 위기 때마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벌어졌듯 대규모 펀드 손실 역시 PB 인력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금사 증권사 은행 PB들을 두루 거쳐본 결과 증권 PB가 펀드 등 금융 상품에서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시황을 체크하면서 시장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투자자에게도 이를 적극 설명하거든요. 반면 은행은 펀드 상품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가입을 권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없어 손실이 난 경우 더 큰 항의를 받는 것 같아요.”류 부장은 동양종금과 증권, HSBC은행 등에서 PB 업무를 맡았다. 이전에는 국내 한 언론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동양종금 시절에는 항상 현금을 고집하는 명동의 사채 부자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직접 돈다발이 든 가방까지 나르며 경쟁사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압구정 PB로 옮긴 후에도 당시 확보한 큰손들이 그에게 자금 운용을 맡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순수 은행 출신인 PB와 달리 정부 공무원과 대기업 임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본 경험이 PB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PB에게는 전문성 못지않게 고객과 문화나 사회 이슈에 대해 공유하는 동질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류 부장은 “현 시장에 대한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우세하지만 과거 사례에서도 보듯 항상 투자의 최종 승자는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의 몫이었다”며 “부동산보다는 가격 메리트가 커진 에쿼티 중심으로 투자 전략을 마련해 볼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