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환율과 금리를 보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단 하루 만에 원·달러 환율이 30~50원 이상 출렁이는가 하면 채권 금리도 평소보다 변동 폭이 훨씬 커졌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조차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 좀 더 길게 보면 환율과 금리의 커다란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목돈을 굴리려면 이 같은 트렌드를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요즘 외환시장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저환율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과 외환시장의 수급 여건을 고려할 때 환율 상승 압력이 하락 압력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 ‘900원대 환율을 다시 보기는 힘들 것’이란 게 대다수 외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우선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자. 한국은 올해 100억 달러 안팎의 경상수지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에도 경상수지는 적자 행진이 지속될 전망이다. 외환 위기 후 10여 년간 이어 온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무너진 것이다. 이는 외환시장에 유입되는 달러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의미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들이 한국 같은 신흥시장 통화에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변수가 경상수지”라며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환율 상승을 예상하고 달러 매수를 늘리는 외국인이 많아진다”고 말했다.반면 달러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글로벌 신용 경색으로 외국인들은 올해 내내 국내 주식을 대규모로 처분하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매도해 본국에 송금하려면 달러를 사야 하고, 이는 결국 환율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된다. 최근 국제 유가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정유사의 달러 결제 대금이 예년보다 크게 늘어난 것도 달러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또 중국 등 해외 증시가 폭락하면서 과거 환 헤지를 위해 달러를 팔아 놓은 해외 펀드들이 최근 달러를 되사들이고 있는 점도 수급 측면에서 부담이다. 올해 초 9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이던 환율이 최근 1100원대까지 튀어 오른 데는 기본적으로 이 같은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정부가 지난 6월 이후 외환 보유액을 풀어 대규모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달러 부족을 채우기 위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환율은 정부 개입이 나올 때만 잠시 하락했다가 개입이 사라지면 다시 튀어 오르는 패턴을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만 커졌을 뿐 상승 추세 자체는 꺾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외환시장의 펀더멘털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환율 상승 압력이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환율이 달러당 1200 원대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민간 경제연구소들도 최근 잇따라 환율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부적으로 연평균 환율 전망을 985원에서 1010원으로 높였고 삼성경제연구소도 현재 983원인 전망치를 조만간 1000원 이상으로 올릴 계획이다. 기업은행 산하 기은경제연구소도 연평균 환율을 933원에서 1013원으로 높였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에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잡아야 한다”며 기준금리를 연 5.00%에서 연 5.25%로 인상했지만 9월에는 “향후 경제 정책은 성장 모멘텀 약화 방지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완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선 한은의 금리 정책이 ‘긴축’에서 ‘중립’으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내렸다. 국내 경제가 경기 하강과 물가 불안이란 이중고에 빠져 있어 당분간 금리를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실제로 국내 경제성장률은 지난 2분기 4%대(전년 동기 대비)로 떨어진데 이어 하반기에는 3%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국내 경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 소비는 지난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0.2% 감소,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소비만 놓고 보면 이미 경기 침체 상황(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물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5.9%에서 8월에는 5.6%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은의 물가 관리 목표 상한선(3.5%)을 한참 웃돌고 있다. 또 유류 채소 등 가격 변동성이 높은 품목을 제외하고 산출한 근원인플레이션은 7월(4.6%)에 이어 8월(4.7%)에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다.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갈수록 물가는 상승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큰 반면 경기 하강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점에서 결국 한은이 금리 인하 타이밍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때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던 국제 유가가 최근 80달러대로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통화 정책의 무게중심을 장기적으로 물가에서 경기로 옮기는데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채권 애널리스트는 “큰 맥락에서 보면 2005년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채권시장도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한은이 9월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난 9월 11일 채권금리(3년 만기 국고채 금리 기준)가 0.04%포인트 하락한 게 단적인 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추가 금리 인상이 힘들다면 남은 것은 동결이나 인하인데 지금 상황에선 결국 인하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시장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향후 환율과 금리 전망을 고려해 전문가들이 꼽는 재테크 포인트는 크게 5가지다. 우선 해외에 자녀를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와 같은 실수요자라면 환율이 내릴 때마다 조금씩 달러를 분할 매수하는 것이 좋다. 어느 날 갑자기 은행에 가서 한꺼번에 환전하지 말고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달러를 사서 외화 예금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송금하면 환율 급변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를 할 때 한번에 ‘몰빵’하지 않고 ‘적립식 투자’를 하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송금 등 실수요 목적이 아닌 상황에서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매집하는 것은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장에선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목돈을 굴릴 때는 향후 금리 하락 가능성에 대비해 은행 등이 판매하는 고금리 특판 예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장기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고 가정하면 지금이 가장 높은 예금금리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현재 과도한 빚을 지고 있다면 당장 빚부터 줄여야 한다. 2005년 이후 누적된 한은의 금리 인상 효과로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상당히 많이 오른 데다 당장은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적은만큼 대출 이자를 견디기 힘들다면 과감히 빚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 대출 갈아타기는 신중해야 한다. 주택 담보대출을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타게 되면 통상 1%포인트 이상의 가산 금리를 물어야 하는데 한은이 향후 금리를 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굳이 높은 가산 금리를 감수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