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코스닥, 코스피지수가 춤추면 투자자들의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게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 사는 이치다. 투자자들에게 주가 차트는 전쟁 상황도와 같다. 그러나 화가 조상에게 주가 차트는 미학의 표현 수단이다. 일반인들이 주가 그래프에서 희로애락을 찾을 때 그는 그 너머에 있는 미학의 세계를 바라본다.‘주가 화가’ 조상에게 주가 차트란 커다란 에너지다. 지난 수년간 그는 물리학과 기호학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런 그가 주가 차트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대(NYU) 유학 시절 타임스퀘어 앞 나스닥 전광판을 보면서 그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창 기호학과 물리학 등 추상화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주가 그래프는 ‘미학’과 ‘세상’을 아우르는 새로운 도구였다.이번에 선보인 작품에서 작가는 주가를 평범한 그래프로 한정하지 않고 세상 만물을 그 속에 투영했다. 그가 그린 주가 그래프는 때론 험준한 태백산맥이 되고 때론 만물상으로 뒤덮인 금강산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래프가 등락을 거듭할수록 희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럴수록 산맥과 바다는 더욱 솟구치고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그가 주가 그래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순전히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전통적인 추상화를 그려 온 그에게 가슴 한구석 아쉬웠던 것은 소통의 부재였다. 작가 자신의 마음을 관객에게 표현하려고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그림이 무겁다’ ‘주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내용뿐이었던 것.“세상이 뭐라 해도 모름지기 작가라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현해 내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 들어선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결국 미술은 세상을 표현하는 도구이거든요. 전 시대 흐름을 인간 군상들의 삶이 녹아 있는 증시 그래프로 표현한 것뿐입니다.”그는 원래 국내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수묵화에 심취해 있던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차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예술가적 고뇌와 갈등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기호학과 물리학에서 해법을 찾았다. 그리고 추상적인 언어로 세상을 표현해 냈다.그러나 이번 그림에서 조상은 예전 동양화 화풍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주가 그래프 뒤에 그려진 금강산, 독도, 백두산 천지의 모습은 유화로 표현했다는 것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우리 전통미가 화폭에 담겨 있다.“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해외 작가들이 물질 자체를 표현하는 데는 아시아 작가들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그림을 통해 동양화를 조형 언어로 바꿀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구적인 어법에 의존하지 않고 저만의 새로운 표현법을 찾아냈다는데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산수화 요소만 가미된 것은 아니다. 완만한 곡선미를 강조할 때 그는 여체를 함께 그려 넣었다. 주식 그래프와 여체가 과연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캔버스 위 두 오브제는 멋지고 화려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그림 속 주가 변곡점은 폭포수의 시작, 태산의 최정상, 여체의 유두로 표현된다. 대신 배경색은 지금까지 고수해 온 디프 블루, 레드 계열을 많이 사용했다. 이 역시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직관에 의해 재탄생됐다. 블루 계열은 참선을 통해 심적 평온함을 나타내고 레드 계열은 따사롭고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장미 꽃 한 다발을 받았을 때의 황홀함과 같다고 할까.“주가 그래프를 그린다고 해서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주식 투자는 18년 전 딱 한 번 해봤습니다. 공기업 관련 주식이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그의 그림을 보면서 노자와 아인슈타인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조상 개인전 ‘Living-The Stock Market’전시 기간 : 8월 21일~9월 12일장소 : 삼청동 금호미술관(02-720-5114)서울 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부 교수홍익대 미대 동양학과 졸업뉴욕대(NYU) 페인팅·미디어아트 전공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