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至尊 로마네 콩티
벳, 고혹, 미스터리로 요약될 로마네 콩티는 ‘물 위를 걷는 와인’이다. 와인 세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평가다. 숙련된 시음을 통한 그의 간결한 후기는 와인의 생사를 쥐락펴락한다. 하지만 파커의 육중한 영향력도 부르고뉴에서는 먹혀들지 않는다. 부르고뉴 와인은 점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부르고뉴 와인 중에서도 압권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로마네 콩티(Romanee-Conti)다.루이 15세의 애첩으로 베르사유를 휘저었던 마담 퐁파두르는 콩티 왕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절대 권력을 탐한 그녀에게 왕의 장조카는 항상 걸림돌이었을지 모른다. 왕자는 이 포도밭을 구매한 것을 퐁파두르에게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사사건건 트집 잡는 그녀가 무슨 떼를 쓸지 모를 일이었다. 1760년 비싼 값(9만2400리브르, 당시 주변 포도밭의 11배에 해당하는 액수)을 치른 후 포도밭 문서는 왕자 소유가 된다. 포도밭 구매의 정황은 미국 음식 평론가 리처드 올네의 저서 ‘로마네 콩티’에 상세히 기술돼 있다. 결국 콩티 왕자는 마담 퐁파두르의 모함으로 베르사유를 떠나지만 길이 남을 최고의 와인에 그의 이름이 붙는 영광을 누린다.콩티 왕자가 포도밭을 사고 1584년에 피노누아를 심었다. 이 포도나무는 1945년 빈티지까지 유지됐다. 16세기의 포도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져 왔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뿌리도 프랑스산, 줄기도 프랑스산으로 360년 동안 순수 프랑스 토종 피노누아가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왕자 식탁에 오른 로마네 콩티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피노누아에 피노 블랑을 혼합해 만들었다고 한다.188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기승을 부린 필록세라의 영향으로 프랑스 포도밭 생태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 포도나무 뿌리가 다 시들어 죽었다. 손톱의 때보다 작은 질기디질긴 진드기에 유서 깊은 포도밭은 맥을 추지 못했다. 필록세라를 이겨내는 방법은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산 대목에 프랑스산 줄기를 접붙이는 것. 그것이 유일한 타개책이었다. 그러나 로마네 콩티는 미국산 대목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신 포도나무 번식의 방법을 달리해 상당 기간 피노누아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 로마네 콩티는 지겹고 독성 강한 진드기를 박멸하려고 매년 이산화황을 밭에 뿌렸다. 이것은 1945년까지 지속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조금씩 뿌리가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양조장은 백기를 들었다. 1946년 나무를 모조리 뽑아버리고 말았다. 1946년부터 1951년까지 로마네 콩티는 와인을 만들지 못했다. 땅을 갈아엎고 이듬해인 1947년에 다시 포도를 심었으니, 2008년 현재를 기준으로 로마네 콩티의 나이는 환갑 정도가 됐다. 콩티 왕자가 마신 와인을 마시고 싶은가. 그렇다면 1760년부터 1945년까지의 빈티지를 물색해 보라. 이 기간 동안의 로마네 콩티는 왕자가 마신 와인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곳에 심었던 같은 포도나무로, 밭 면적조차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단, 18세기에는 수확량이 훨씬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로마네 콩티는 1.8헥타르(사방 135m 내외의 면적)의 작은 밭에서 매년 약 500상자(6200병)를 생산한다. ‘거라지 와인’, ‘컬트 와인’이란 말은 1990년대의 프랑스와 미국에서 생긴 신조어이지만 따지고 보면 로마네 콩티가 이들의 원조다. 로마네 콩티의 생산량은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쉴드의 5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연평균 3000상자를 병입하는 보르도의 최고가 와인 샤토 페트뤼스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마네 콩티를 최초의 거라지 와인, 최상의 컬트 와인이라고도 한다. 생테밀리옹의 발란드로(약 1000상자), 라몽도트(약 800상자) 혹은 나파 밸리의 스크리밍 이글(약 600상자)보다 적다.로마네 콩티는 품질 향상을 위해 수작업을 통해 포도를 수확하고, 극심한 가지치기를 하며, 여름철 열매솎기를 한다. 2007년 6월 로마네 콩티를 찾았을 때 포도밭에서 일하는 한 젊은 일꾼을 보았다. 그는 꽃망울이 터진 꽃송이의 개수를 일일이 세고 있었다. 계절이 가면 그중의 상당 부분은 열매가 익기도 전에 잘려나간다. 남은 송이에 당분이 집중되도록 희생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포도가 좋아야 와인이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로마네 콩티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포도를 밟아 즙을 냈다. 그러나 1989년 이후로는 기계가 맡고 있다. 혹자는 이런 전통적 실행으로 이 와인의 신비성이 유지됐다고 하지만 사실 양조장의 비밀은 없는 편이다. 로마네 콩티 양조장의 특징을 살펴보자.첫째, 포도송이에서 포도 알을 골라 내지 않고 전체를 양조 통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가지에서도 타닌이 나와 더 많은 타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포도 알의 타닌이 충분할 때는 가지를 제거하고 알만 골라 발효하기도 한다.둘째, 로마네 콩티는 품질이 떨어지는 포도를 골라내기 위해 일찌감치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한 양조장이기도 하다. 포도의 질이 바로 와인의 질을 결정한다.셋째, 로마네 콩티는 발효 후 통 바닥에 침전된 효모 찌꺼기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 한 번 정도만 빼내고 그대로 둔다. 그러면 효모 찌꺼기에서 비롯되는 아로마를 얻을 수 있다. 여과하지 않고 단지 달걀흰자로 정제한다.넷째, 오크통을 제작할 때 오크 널빤지를 3년 동안 건조해 사용한다. 와인에 과도한 오크 향취를 묻히지 않기 위해서다. 요즘 로마네 콩티 포도밭의 일부는 쉬고 있다. 10% 좀 못 미치는 구역이 안식 휴가 중이다. 리슈부르 포도밭 바로 옆으로 여러 줄이 비어 있다. 지력을 회복하면 그 공터에 다시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포도밭의 구분이 그리 분명하지 않은 부르고뉴에서 로마네 콩티 포도밭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본-로마네 마을 뒷산으로 이어지는 경사 길을 조금만 걸으면 십자가를 만난다. 높이 솟아올라 멀리서도 쉽게 보인다. 십자가 주변에 서서 포도밭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은 자유 복장으로 길을 떠난 순례자 같다.조정용 (주)비노킴즈( www.vinokims.com) 대표이사©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