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inawa
곳은 어디입니까.”“여기는 옛 류큐(琉球)왕국, 일본 오키나와입니다.”오키나와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순간 정겹고 아늑함이 느껴졌다. 왜일까. 마치 데자부처럼 오키나와는 푸근함이 먼저 다가왔다. 안내 멘트 뒤에 흘러나오는 오키나와 민요는 가락의 마디마디, 풍월의 노랫가락에 그들만의 잃어버린 언어가 담겨 있는 듯하다. 역사의 상처가 민요에 담겨 있다고 할까.이것이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라는 나라가 내게 처음으로 안겨준 기억이자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선물이 됐다. 언젠가 이곳에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오키나와는 여행에 앞서 반드시 역사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비록 일본 영토지만 오키나와는 고유의 독자적인 문명을 간직한 나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 전혀 다른 느낌이 도시 곳곳에 배어 있다. 오키나와는 독립된 하나의 왕조 문화를 지니고 있던 나라로 ‘류큐왕조’라는 별도의 국명이 있던 섬나라였다. 오키나와는 조선과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 왕조의 번영은 부산물이다. 류큐왕조는 조선과 중국, 소류큐(대만), 일본 등을 잇는 중개 무역지의 허브로서 그들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1800년대 말,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 현으로 강제 편입되면서 류큐왕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슬픔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일본으로 편입될 쯤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일본 공략의 시발점으로 오키나와를 선택한다. 일본군과 미군 간 치열한 전투로 오키나와 인구 3분의 1인 20여만 명이 사망했다. 이후 일본의 패망으로 오키나와는 미국 점령지로 넘어가고 여기에 미군 기지를 세우면서 화려한 류큐왕조의 발자취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다행히 1970년 오키나와는 다시 일본에 반환됐지만 아직까지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되찾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어쨌든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 사람들과 인종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류큐왕조의 후예들은 지금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오키나와 현은 159개의 섬 중 100개의 섬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무인도다. 전 세계 3대 청정 아일랜드로 불릴 정도로 바닷물이 깨끗한 오키나와를 바라보면서 역사의 아픈 상처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영롱한 비취빛 바다 뒤의 슬픔을 보면서 가슴이 순간 저며 왔다. 화려한 문명을 되찾기 위한 류큐왕조의 한이 서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오키나와는 지리상으로 보자면 북회귀선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일본 본토보다 오히려 대만에 더 가깝고 아열대성 기후로 연평균 섭씨 25도의 초여름 날씨가 연중 계속되는 곳이다. 오키나와는 크게 나하 시내가 있는 ‘본섬’과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미야코(宮古) 제도, 이리오모테(西表) 제도, 이시가키(石垣) 제도로 분류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고 여행하는 섬은 본섬에 속하고 크기는 제주도의 약 2.5배 정도다.오키나와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말할 때는 미야코, 이리오모테, 이시가키 섬 제도를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이곳이 수만 년을 이어온 형형색색 산호와 선명한 코발트 블루의 향연이 한데 어우러져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 아닐까싶다.일본이란 나라를 수없이 다녀봤지만 오키나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가끔 골프 여행으로 지인들에게 오키나와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어도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내게 심도 있게 전해준 이는 아마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필자 역시 오키나와는 그저 ‘골프 하기 적당한 곳’이라는 선입견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때마침 따사로운 햇살이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일본인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은 터라 주저 없이 오키나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지금에 와서 회상하는 것이지만 오키나와의 매력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필자가 생각하는 오키나와의 숨은 매력은 비경을 무대로 만들어진 소박한 카페와 전통 맛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밀월여행을 테마로 여생을 보낸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오키나와는 아름답고 멋지다. 오키나와 구석구석에는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을 정도의 밀월여행 소재가 많다.일본인 친구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은 한적한 외딴 마을 구석진 곳에 자리한 대가의 집 ‘우후야(大家)’. 오키나와 방언으로 읽혀서 더 정감이 가는데 실제로 100여 년을 이어온 정통 ‘소바집’이다. 곱게 가꾼 정원과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폭포를 이용한 실내 연못, 언뜻 봐도 골동품의 정취가 묻어나는 전통문양의 기와 장식, 한국의 툇마루와 너무나 흡사한 마루. 실내에 다다미가 깔려 있다는 것만 빼고는 영락없는 우리 시골이다. 오키나와 전통 민요를 들으며 냉방 시설 없이도 시원한 툇마루에 반쯤 걸터앉아 면발 굵은 오키나와식 소바 맛을 보았다.늦은 오후. 현지인이 아니라면 알기 힘들다는 곳으로 다시 안내를 받은 곳은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비경 위에 전통 가옥을 만들어 석쇠로 구운 피자를 팔고 있는 바다 위의 피자집 ‘카진호우’. 이런 곳에 피자집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늘의 시원함이 가득한 6월의 오후, 산꼭대기 전통 가옥의 툇마루에 앉아 하늘 아래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그 피자의 색다름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렇듯 오키나와는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조그마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곳곳에 있다. 누군가 밀월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손짓하는 곳, 그것이 바로 오키나와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다음날 오전, 우리는 오키나와 북부 지방의 열대 우림의 드라이브 코스를 계획했으나 오전 내내 퍼붓는 국지성 호우로 인해 머무르는 리조트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처음 와 본 오키나와의 여정을 망칠 수는 없는 법. 대안으로 친구는 ‘추라우미 수족관’을 제시했다. 사실 친구가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수족관이라고 해봤자 한국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앉아서 비만 그치기를 기다리며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추라우미 수족관은 만약 가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정도로 뇌리에 강한 충격과 함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곳이었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자연을 지배하고 싶은 인간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상상력의 결실이 어우러져 탄생했다. 추라우미를 감상하는 포인트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째는 심해 잠수정을 통해 건져 올린 심해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와, 해저 5000m 이상의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심층수를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 그리고 추라우미의 상징인 바로 세계 최대의 대형 수족관으로 요약된다. 필자는 한동안 수족관에 갇혀 있는 대형 고래의 유영을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우리는 그렇게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 어둠이 깔리는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오키나와의 명물, 1만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바위라고 하는 만좌모(万座毛)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 걸 보니 단순한 관광지라는 생각에 그냥 그렇게 잊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어렵게 온 여행지인 만큼 무엇 하나 빼먹고 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석양이 어렴풋이 저물어가는 시간대에 급히 만좌모로 발길을 돌렸다.만좌모는 오키나와 본섬 중부 해안 비치를 따라 기이하게 형성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지형에 자연이 만든 거대 바위다. 옆에서 보면 코끼리의 두상과 닮아 있고 그 두상 위로는 1만 명이 앉아도 남을 듯한 대지가 바다를 향한 채 놓여 있다. 만좌모는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갖게 하는 곳이다. 만좌모에 스산한 어둠이 깔리는 밤이 돼서야 도착한 우리는 낮에 이곳에 왔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이 쏟아지는 밤 만좌모가 이렇게 환상적인 자태를 뽐낼 줄 생각조차 못했다.이런 곳을 낮에 왔었다면 어린 코끼리가 들려주는 적막한 태평양의 쓸쓸한 아름다움을 모른 채, 그렇게 그냥 오키나와를 떠났어야 했을 것이다. 바다를 향해 축 늘어져 있는 어린 코끼리의 슬픈 울부짖음은 가라앉아버린 석양이 마치 제 어미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되는 양 장단에 맞춘 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돼 귓가를 적셨다. 우리는 만좌모의 텅 빈 절벽에 걸터앉아 그렇게 몇 시간을 있었고 다시는 잊히지 않을 만큼의 완벽한 정적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자유로움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희미한 불빛조차 허락되지 않던 만좌모의 야경은 별빛만으로 이루어진 실루엣만이 어린 코끼리의 형상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기 전 나는, 잠시 일본인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 앉아 태평양을 응시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단순히 오키나와를 일본의 작은 남쪽 섬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역사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을 터다. 잠시 스치듯 인연을 만들었던 내게 있어서 오키나와는 한순간의 추억일지도 모르지만 잠시나마 오키나와의 현주소를 공감했기에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네게서는 일본인 특유의 정취를 찾을 수 없다고. 그러자 친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오키나와인으로 봐달라고 말한다. 아물지 않은 역사의 잔흔 때문인지 자주적인 모습의 오키나와를 바라는 것인지, 그 내면의 깊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오키나와는 동전의 양면성을 지닌 듯해 보였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인기를 거부하는 마음은 잃어버린 류큐왕국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과연 다음 세대의 오키나와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갈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내 귓가에는 아직도 만좌모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태평양 파도 소리가 돼 울려 퍼졌다.글·사진 전광용 여행 칼럼니스트·이오스 여행사(www.ios.co.kr) 대표©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