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 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

장님, 계약 체결됐습니다.” 종합 증권사 허가를 받아 첫 거래를 시작한 지난 8월 1일. SC제일은행 본사 2층에 자리한 스탠다드차타드증권 트레이딩룸에서 첫 거래를 알리는 보고가 정유신 대표 방으로 전해졌다.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법인에서 소개받은 현지인의 SK텔레콤 매수 주문을 시작으로 스탠다드차타드증권의 본격적인 증권 영업이 시작됐다. 정 대표는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이머징 국가에 주로 진출해 있는데 본격적인 증권업은 사실상 한국이 최초”라며 “한국에서 증권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되면 향후 이들 시장에서 증권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모델로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스탠다드차타드증권의 첫 사령탑을 맡은 정 대표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로는 보기 드물게 리서치 출신이면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은 쌓았다.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원에서 출발, 대우증권 채권영업부장 ABS 파생상품부장, IB본부장을 지낸 뒤 2004년부터는 굿모닝신한증권으로 옮겨 IB본부장, 상품운용 개발운용 홀세일 부사장 등을 지냈다. 책상물림이나 다름없는 연구원에서 1999년 처음 영업직으로 옮긴 직후부터 상품 운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대우증권은 당시 경영 위기로 자산유동화증권(ABS) 인수전에서 번번이 물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9명이던 ABS 파생상품팀은 대리 한 명을 남기고 전원이 회사를 옮겨간 상황에 정 사장이 긴급 소방수로 투입된 것.“아무도 파생상품팀을 맡으려 하지 않자 백면서생인 제가 가게 됐는데 대리 한 명이 달랑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인력을 충원해 가면서 앞으로 나올 채권형 파생상품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 연구하는 와중에도 영업을 위해 하루에 3∼4개씩 저녁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네트워크를 쌓아갔죠. 결국 6개월 만에 다시 업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스탠다드차타드가 그를 첫 CEO로 낙점한 것도 이 같은 풍부한 현업 경험이 제한된 자원과 인력으로 단기간에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신생 증권사의 최고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정 대표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하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저녁 하루에 2회씩 냉·온욕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생활을 30년째 해오고 있다. 학창 시절 척추경직증을 심하고 앓은 후부터 터득한 건강 관리법이다. 미국 와튼MBA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 이어 올해부터는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최근처럼 격변하는 금융 환경이야말로 몸집이 가벼운 중소형 증권사에 기회라고 강조하는 정 대표를 만나 스탠다드차타드의 향후 계획과 전략을 들어봤다.“과거 사라진 제일투자증권을 떠올릴 수 있어 이름에서 제일을 빼고 스탠다드차타드로 막판에 변경했습니다. SC 이니셜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고객에게 주는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니셜을 썼던 증권사가 크게 잘 된 적이 없었던 점도 작용했죠. 차타드에는 ‘왕실’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스탠다드를 표방하는 증권사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집니다.”“크게 3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계획입니다. 첫째, 모회사인 은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스탠다드차타드를 백본으로 적극 활용할 방안입니다. 둘째, 초기 자본금이 3000억 원이라는 점과 인력들의 잠재성을 고려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향후 3년간의 자본시장 변화에 대응한다는 복안입니다. 신생 증권사가 기존의 대형사처럼 모든 좌판(상품)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한된 인력과 자본의 적재적소 배치가 승패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변곡점 하에서 선순환의 방아쇠를 찾아내 선택과 집중을 하면 한정된 자원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그동안 현업에서 배운 교훈입니다. 끝으로 이른 시간 내 시장의 신뢰를 쌓는 레코드를 만들어 이를 발판으로 상품군을 늘려가고 다시 시장 평판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의 고리를 찾는 것이죠.”“채권과 채권 구조화 분야를 SC그룹의 기업 여신 분야와 접목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입니다. SC는 은행 내 글로벌 투자은행(IB)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IB가 발행 시장이라면 증권의 트레이딩은 유통 시장인 셈인데 이전까지는 증권업 인·허가가 없어 역외 거래 방식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증권사를 통해 기업 채권을 비롯해 자산유동화증권(ABS) 원화 외화채권 분야를 대폭 강화할 생각입니다. SC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원화와 외화채권 분야에서 기존 증권사보다 한층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나의 반찬만을 강요받던 국내 고객들에게 두 개의 반찬을 마련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국내 채권시장은 글로벌 수준까지 커진 주식시장에 비해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채권 거래 규모는 아시아 3위 수준이나 시장 구조는 초기의 플레인 바닐라(plain vanilla)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스트럭처링(구조화) 채권이 발달하려면 수익이 커져야 하는데 국내 시장은 발행 시장에 비해 수익이 작아 관련 인력이나 기관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다양한 상품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현시점이야말로 채권시장 확대 기회라고 봅니다. 정책 측면에서도 자본시장의 양대 축인 주식과 채권의 불균형 아래서는 도약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점도 향후 채권시장 성장 전망을 밝게 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자본시장의 경쟁의 룰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기존의 국내 중심의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성장도 생존도 불가능합니다. 특히 금융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체결될 경우 국내에 존재하는 않는 상품이더라도 상대국에서 거래되면 당장 들여올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큽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이색 옵션(exotic option)을 한국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국내 증권사들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데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최소한 아시아 지역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지역 플레이어로서의 위상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자본금이 2조 원이 넘는 대형 증권사라도 집중화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룡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도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시장 변화가 클 때는 몸집이 가벼운 신생 증권사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SC가 기존 증권사 인수·합병을 고려하다 신설로 선회한 것도 생존력이 강한 자체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리서치는 증권업의 핵심 인프라입니다. 리서치센터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증권사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하지만 현재처럼 주식 유통 분석에 치중하는 국내 리서치는 방향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도 유통 시장 분석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탁 매매가 여전히 증권사 수익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문제는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가 철저하게 법인 고객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법인이 증권사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그치고 있는데 회사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받는 애널리스트들은 그 10%를 위한 리포트만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들어 증권사마다 앞 다퉈 IB를 외치고 있지만 증권사의 핵심 축인 리서치와의 시너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개별 종목 등 주식담당보다는 채권 중심으로 리서치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리서치 분야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채권담당을 해 볼 것을 권합니다. 이전까지는 야근하며 고생해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나 선임 애널리스트가 되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커리어 관리 방식이었으나 이제는 주식시장에서 경험과 통찰력을 쌓은 유능한 애널리스트가 도전해 볼 때라고 봅니다. 능력을 인정받은 채권 애널리스트는 기업 닥터(corporate doctor)라고 불릴 정도로 개별 기업의 재무적 조언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 정책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특히 자통법 시행으로 사모 펀드(PEF)와 헤지 펀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이러한 채권 애널리스트가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미국 달러의 강세 시대가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중국 올림픽과 연말 미 대선 때문에 논의가 늦어지고 있으나 올해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께 선진 G5나 G7을 중심으로 중심 화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러한 중심 통화와 환율 변화의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투자처가 채권입니다. 특히 아시아 통화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한국 등 주요 이머징 국가에 대한 채권 수요도 비례해 늘어날 것입니다.”“레버리지 규모에 대해 누구도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당연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은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죠. 경제 순환 구조상 시장 쇼크나 충격이 발생할 경우 소비 투자 수출에 이어 최종 소비 주체들이 영향을 받는 동적 과정이 진행되는데 아직 소비 주체들이 영향을 받는 단계는 본격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서브프라임 사태 대처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과거 1980년대 주택대부조합 부실 당시에는 과감한 메스를 가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미국 정부가 핵심 금융권까지 영향권에 들어간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는 긴급 자금 지원 방식으로 진화에 나섰다는 점은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서브프라임은 사실상 과거 한국이 겪었던 외환위기 수준의 충격입니다. 결국 사태가 진정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형 IB에 대해서는 향후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지금까지 국내 부동산 시장은 마치 1970년 후반 1980년대 초반의 국내 주식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시장이 시스템화돼 있지 않아 정보의 비대칭을 통한 차익이 가능한 시기였죠. 국내 부동산 시장은 오피스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정보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전망하지만 사실 전문가가 없는 시장이죠. 오피스 시장은 제도 정비 과정을 거쳐 시장이 투명해진 1990년 전후의 주식시장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노출된 국내 변수 정도라면 정책적 대응으로도 연착륙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동안 부동산 억제 정책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버블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해외 변수인데 서브프라임 추가 파장이 외자 투자 비중이 높은 자원 관련국을 강타할 경우 이들 지역에 집중적으로 진출한 2위권 건설사들의 도산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국내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연쇄 파장을 낳을 수 있습니다.”서울대 경제학과서강대 경제대학원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대우경제연구소대우증권 IB본부장굿모닝신한증권 IB본부장,상품운용 홀세일 부사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