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베트남 정부가 통화 유동성 긴축에 나서자 베트남 부동산 시장의 자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는 등 그 여파가 부동산 시장에서도 본격화할 조짐이 보입니다.”주가가 폭락하는 등 자산 거품이 꺾이고 있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만난 우리 정부 관계자는 우려감을 털어놓았다. 2006년부터 이곳 호찌민에서 상황을 파악하며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쓰고 있다는 그는 “올해 초 정점을 찍었던 아파트 매매 가격도 최근에는 하락세로 돌아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베트남 중앙은행은 지난 6월 11일 기준금리를 연 12%에서 14%로 다시 2%포인트 인상했다. 잇따른 유동성 긴축책으로 올 1월 연 8.25%이던 금리가 5개월 만에 5.75%포인트나 오른 셈이다. 연 18%로 묶여 있던 시중은행 대출금리 상한선도 21%까지 높아졌고 수신 금리는 각 은행의 사정에 따라 대출 금리에서 은행 수수료를 뺀 연 18% 내외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강문경 미래에셋증권 호찌민 본부장은 “지난해 12.6%에 달했던 물가 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베트남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및 지급준비율을 인상하고 통화안정채권을 매각하는 등 시중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부동산 담보대출에 적용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기존 70~80%선에서 40%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지적했다.중앙은행이 계속해서 돈줄을 조이면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눈에 띄게 꺼지고 있다. 2006년 분양 당시 서울의 강남 부자들까지 관심을 가졌던 베트남 호찌민 도심 내 빙탄 디스트릭트 사이공 강변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 ‘사이공 펄’은 불과 3개월 전 약 4000달러까지 치솟았던 매매가가 최근 3300달러로 20% 가까이 떨어졌다. 2년 전 분양가가 ㎡당 3000여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은행 대출을 받아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금융비용도 건지기 힘든 형편이 됐다.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은 가격이 30~40%가량 떨어진 곳도 있다. 호찌민 남동부의 대표적 택지개발지구인 푸미흥 지역 내 ‘미칸 아파트’는 최근 급매물 가격이 올 초 최고 가격과 비교해 40%나 떨어졌다. 현지 부동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 약 2200달러에 거래되던 중대형 150㎡형은 최근 가격을 1330여 달러까지 낮췄지만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03년 분양 당시 ㎡당 650달러 기준으로 시세가 한때 4배 가까이 뛰었던 올 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다만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거품론’이 불거졌던 호찌민 등 남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직 부동산 경기 냉각을 실감하지 못하는 지역들도 많다. 수도인 하노이 등 북부 지역은 부동산 시장의 영향이 아직 덜한 편이다. 하노이는 신시가지의 고급 아파트 가격이 최근 10%가량 하락하는 등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적인 편이다.그러나 투자 수요가 주를 이루는 매매 시장과 달리 대부분 실수요로 형성되는 임대 시장은 여전히 강세다. 베트남 현지에서 아파트 분양 사업을 추진 중인 벽산건설 이상엽 호찌민 지사 과장은 “특히 최근 1년간 도심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왔던 오피스 및 아파트 임대료는 최근 급격한 경제 변동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곳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많고 관련 비즈니스가 계속되는 한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호찌민 내 대표적 5성급 호텔 ‘뉴월드’ 숙박료는 180달러(스탠더드 객실, 1박 기준)로 1년 전 95달러에서 껑충 뛰었다. 호찌민의 간판 오피스 건물로 꼽히는 ‘트레이드센터’도 임차하려면 ㎡당 70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 1년 전에는 35달러 수준이면 임차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시내 오피스 빌딩들도 입지별로 차이가 있지만 ㎡당 20~50달러 수준으로 1년 동안 최소 50% 이상 올랐다는 게 현지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원 건설이 2005년 호찌민 동부 외곽 안푸(An-Phu) 지역에 분양한 ‘대원칸타빌’ 100㎡형은 월 1500달러는 줘야 임차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임대 수요가 많다 보니 추가로 치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업체 관계자는 “넘치는 임대 수요를 믿고 집주인들은 3년 치의 월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2년 치의 월 임대료를 선납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기준 금리 인상에 따른 현지 진출 국내 건설사들의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인섭 벽산건설 해외담당 상무는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환율이 고정된 달러로 차입해 마련한 사업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베트남 동화 금리 변동에 따른 금융비용 영향은 거의 없는 편”이라며 “그러나 5월 16일 이후 베트남 정부가 유동성 긴축책의 일환으로 외화 차입을 금지해 향후 추가 사업에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진행 중인 사업에는 영향이 없지만 향후 베트남에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더 이상 달러 차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다.현재 국내 건설사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무리 없이 소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효은 GS건설 호찌민 경영관리팀 팀장은 “금리 인상으로 현지 수요자들의 투자 비용은 치솟지만 국내 건설사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구매층이 상위 1% 내로 한정된 최고급 아파트로 경기에 따른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부동산 가격 하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유성룡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국토해양부 주재관은 “현지 한계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정부 지분 매각에 따른 신규 기업 인수·합병(M&A), 거품이 빠진 부동산 자산 등 투자를 위한 선택의 폭이 오히려 넓어질 것”이라며 “현재의 경제 상황도 한 단계 성장을 위한 일시적인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호찌민에서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공사를 진행 중인 GS건설의 이상기 베트남사업부문 상무도 “베트남은 단기 외채가 20억 달러에 불과하고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이 많아 중국을 대체할 생산 기지로서의 이점이 여전한 만큼 장기 투자처로서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외국인의 베트남 부동산 투자 여건이 좋아지는 매력도 있다. 호찌민에서 베트남 현지 부동산 투자 자문을 맡고 있는 이홍배 법무법인 정평 변호사는 “그동안 현지인 이름을 빌려 부동산을 사오던 외국인들도 법률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 베트남 내 아파트를 50년 장기 임차 형식으로 보다 쉽게 살 수 있다”며 “최근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나 민간 투자자들의 투자 문의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베트남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면서 물가 인상과 무역수지 적자 확대로 현재 성장통을 앓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나면 베트남 경제는 한 단계 도약할 것입니다.”김인상(61) 벽산건설 사장은 최근 베트남 경제 위기와 관련, “베트남은 전체 인구의 70%가 30대 이하로 구성돼 있는 등 젊고 가능성이 큰 나라”라며 “위기는 있겠지만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상황과 비슷해 외국 투자 기업에는 위기보다 기회 요인이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벽산건설은 최근 베트남 최대의 경제 도시 호찌민에서 최고급 아파트(블루밍파크), 중부의 다낭에서 주상복합단지(블루밍시티) 등 부동산 개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김 사장은 베트남 아파트 분양 시장에 대해 “우리나라와 달리 총가구수 전체를 일시적으로 분양하는 게 아니라 부분부분 나눠 분양가를 달리 공급할 수 있는 만큼 위험 관리도 상대적으로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호찌민에서 6월 말 분양 예정인 ‘블루밍파크(총 700가구)’는 이번에 250여 가구만 1차로 분양해 시장 상황을 주시해 가며 사업 계획을 짜기로 했다는 후문이다.베트남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국내 업체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국내 업체들은 고급 아파트 등 수요층이 고정된 상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수요에 비해 여전히 공급이 달려 틈새시장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벽산건설은 외환위기 이전엔 해외 사업을 많이 진행해 왔지만 이후 사업 환경이 불리해져 모두 중단했다가 올해부터 베트남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을 재개할 태세다.김 사장은 “국내에서 상위 20위권 이내에 들어야 한다는 욕심도 있지만 해외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만큼 해외 사업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오는 2011년 이후엔 해외사업의 매출액 비중을 10∼15%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호찌민(베트남)=정호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hjjung@hankyung.com